[특별기획-⑤] 지하철 인력충원,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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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 참사 후 1년 6개월. 중앙로역에는 화재발생시 연기확산을 막는 수막 차단벽이 설치됐다. 야광 타일을 깔고 피난구 유도등, 소화기, 방독면도 비치했다. CCTV를 디지털(DVR)로 바꿔 16개 채널을 동시에 녹화한다.

그러나 이는 대구 중앙로역 뿐이다. 유독가스를 마구 내뿜는 가연성 내장재도 바뀌지 않고 있다. 참사를 경험한 대구에서마저 예산 핑계로 교체를 미루며 의자에 방염제를 뿌리고 있다.

"1인 승무원제는 '대구지하철 참사 시민사회단체 대책위'의 진상조사 보고서 등에서 드러났듯이 대형 참사를 초래할 수 있는 주요 위험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럼에도 지하철 안전운행을 위해 필수적인 2인 승무제의 도입은 지하철 건설부채의 과다와 만년적자 운영을 거론하는 자본의 논리에 철저히 묵살되고 있다."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이 냈을 법한 위의 내용은 한나라당이 낸 성명서의 일부다. 대구지하철참사가 던진 경각심 때문인지, 지하철 1인 승무제 폐지 등 인력충원은 전 국민의 일치된 요구였다.

그러나 현재 승무원 숫자는 단 한 명도 늘지 않았고, 2인 승무를 하고 있는 서울의 1~4호선마저 점차 1인승무로 바꿔갈 계획이다. 모니터 감시를 하는 역무원은 여전히 동전을 세고 있다. 안전요원은 전문성이 없는 공익요원들을 승강장에 배치했다. 대중교통이며 공공재인 지하철에서 경영효율성과 예산절감의 논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형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시설보다 인원충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부터 10시 17분까지 긴박했던 상황을 되돌아보며,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들을 짚어보자.

<b>상황보고냐 초기진압이냐</b>

<font color="blue">-오전 9시 53분 대구지하철 1호선 1079호 전동차가 중앙로역에 진입한다. 출입문이 열리고 승객들이 타고내리는 가운데 자살을 결심한 김대한(57)씨의 가방에 불이 붙는다. 중앙로역에 도착한지 약 10초가 지난 후 '불이야'라는 비명소리를 들은 전동차 기관사 최모씨는 CCTV로 승객들이 나오는 걸 확인한 후 소화기를 들고 달려온다. 그러나 폴리우레탄폼, 폴리에틸렌폼, 염화비닐 등 가연성 소재로 가득한 차량 안에서 불길은 순식간에 번진다. 기관사는 다시 승객들과 소화전 호스를 이용, 진화를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기관사는 승객들에게 대피하라고 소리친다.- </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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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당시 1079호 기관사가 종합사령실에 먼저 보고하지 않고, 소화기로 진화를 시도한 것은 근무수칙을 어긴 것이었다. 그러나 소화기를 통한 초기진압시도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기관사가 아닌 일반 승객들이 소화기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전문가들은 일반 승객이 소화기를 사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소방안전 협회 박재홍 교수에 따르면 "전동차 내부에 비치된 소화기를 식별하기가 곤란"하고 "소화기를 사용하는 것도 평소 반복된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므로 "일반 승객 입장에서는 소화기 자체는 아예 생각할 수도 없었다"는 것. 때문에 전문가들은 맨 뒤 칸에 또 한명의 기관사(차장)가 있었다면 초기진화와 상황보고가 동시에 가능했을 거라고 지적한다. 더구나 화재가 시작된 곳은 맨 뒤에서 두 번째 칸이었으므로 기관사가 화재사실을 더 빨리 인지했을 거라고.

<b>종합사령실·역무실에 눈이 없다</b>

<font color="blue">-대구지하철 종합사령실 모니터는 김대한씨가 몸에 불이 붙은채 밖으로 뛰어나오는 모습과 승객들이 빠져나오는 장면을 잠시 내보내다가 작동을 멈춘다. 종합사령실은 이 화면을 놓친다. 같은시간 종합사령실 기계설비사령실에는 화재 경보음이 울리고 모니터 화면에는 '화재경보' 메시지가 뜬다. 그러나 평소 오작동이 많았던 이유로 근무자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여긴다. 종합사령실은 전동차 출발을 하지 않자 '1079호, 1079호'라며 무전을 친다. 이때는 기관사가 화재진압을 시도하고 있을 때였다. 승강장을 비추는 모니터를 감시하는 역무원은 없었다. 역무원은 승차권 판매대금 입금을 위해 다른 장소에서 동전을 세고 있었다.-</font>

사고 당시 대구지하철공사 종합사령실장은 “30개 역 상·하행 60개 열차의 진출입 상황을 20개의 모니터로 감시하지만 직원 3명이 이를 다 볼 수가 없다”고 진술한 바 있다. 대구지하철 공사의 '자동화장치'나 '설비'는 결국 사람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사실, 인원감축의 문제점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역무실 역시 경영효율성을 이유로, 한 사람이 근무한다. 시설관리에서 동전 세는 일, 승강장을 보거나 수입보고서 뽑는 일까지 한 사람이 이 하고 있는 것. '동전을 세느라 모니터를 감시하지 못했다'는 말이 이같은 현실을 잘 설명한다. 이 시점에서 종합사령실에 또는 역무실에 안전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이 있었으면 상황파악이 미리 이루어지고, 1080호의 진입을 막을 수 있었다는 가정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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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인승무, 후진이 불가능하다</b>

<font color="blue">-종합사령실은 9시55분 역무원으로부터 화재가 났다는 연락을 받는다. 모니터 화면이 나가서 상황이 확인되지 않는 상태에서 사령실은 일단 '올콜(all call, 모든 기관차에 대한 긴급통지)'을 한다. '중앙로역에 진입시 조심해 운전하여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지금 화재 발생하였습니다.' 1080호 기관사는 잡음과 함께 '...하니까 주의운전하세요'라는 말만 듣게 된다. 종합사령실은 대구소방본부에 화재신고를 한다. 9시56분 1080호 열차가 중앙로역에 진입한다.-

-1080호 기관사는 진입 시 승강장의 불빛이 꺼지는 것을 발견하고 종합사령실에 무전을 시도하지만 사령실은 통화중이었다. 종합사령실은 '올콜'이 가능하지만 기관사는 종합사령실이 통화 중인 경우 교신할 수 없다. 진입 후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연기가 들어오자 기관사는 바로 출입문을 닫고 출발한다는 안내방송을 내보낸다. 그때, 전동차에 전기 공급이 끊어진다.- </font>

종합사령실은 안이한 태도와 상황파악 부족으로 '대구역 정차'나 '무정차 운전'이 아니라 '주의운전'만을 명령했다. '주의운전'은 <열차운행에 특별한 지장은 없으니 운행은 하되 일정구간 동안 조심하라>는 의미다. 중앙로 승강장으로 들어오는 선로는 곡선형으로 시야범위가 제한되어 기관사가 비상사태를 인식했을 때는 이미 무정차 운전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한가지 방법이 남는데 그것은 후진이다.

후진은 종합사령실의 승인이 필요하다. 위급시에 만일 종합사령실의 승인도 받지 않고 기관사가 후진을 하려고 해도, 1인 승무는 기관사가 맨 앞에서 맨 끝의 운전실로 옮겨가야 한다. 아니면 뒤에 열차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막무가내로 가는 방법이 있겠지만, 전기가 끊어지기까지의 짧은 순간에 화재가 얼마만큼 심각한 지를 다 파악하고 그런 위험한 선택을 하는 것은 역시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당시와 같은 돌발상황에서의 후진운전은 2인승무제 하에서만 가능했던 것이다.

<b>교신하는 사이에 승객이 죽어간다</b>

<font color="blue">-57분 전체 플랫폼이 정전되면서 암흑상태가 된다. 이때 승객들과 함께 1079호 기관사도 탈출을 한다. 1080호 기관사와 종합사령실은 아직 상황파악에 이르지 못한다. 1080호 기관사가 '예, 1080입니다. 지금 단전입니까?'라고 묻자 종합사령실에서는 '단전이니까 방송 좀 하시고'라고 답한다. 이때는 이미 승강장에 연기가 가득차 쉽게 빠져나오기 힘든 상황. 다음은 58분 경 교신내용의 일부.

-1080호 '예, 중앙로역입니다. 대피시킵니까? 어떡합니까?'
-종합사령실 '단전돼서 차 못 움직인다, 지금' (중략)

-1080호 '예, 지금 바로 출발합니다. 급전(전기공급)되었습니다'
-종합사령실 '급전됐어?' (중략)

-1080호 '아~, 미치겠네'
-종합사령실 '예, 사령 이상'
-1080호 '지금 급전됐다 왔다 갔다 하는데. 차 죽여 다시 살릴게요. 지금 급전됐다 살았다가 죽었다 엉망입니다'</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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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font color="blue">59분, 전동차내에는 숨쉬기가 불편할 정도로 연기가 차고 있었다. 이때 대구소방본부에 걸려오는 구조요청은 비명소리들이었고 59분 이후엔 구조요청이 들어오지 않는다. 10시 2분 상황파악이 되지 않는 종합사령실은 다른 열차들과 교신을 하며 아직도 열차 간격조정을 하고 있었다. - </font>

1080호 기관사는 종합사령실과의 교신하면서 동시에 연기로 가득찬 객실과 승강장의 상황을 혼자서 판단해야 했다. 뒤쪽에서 차장이 상황판단을 하고, 기관사가 사령실과 교신할 수 있었다면 더 짧은 시간안에 탈출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b>예산절감 위한 무전설비는 '통화중'</b>

<font color="blue">-1080호 기관사는 이 때 무선교신이 끊어져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다가 두명의 어린아이 등 승객 6명과 함께 탈출한다. (이후 기관사가 전동차를 다시 움직여보기 위해 돌아왔었는지는 주장이 엇갈린다) 10시 11분까지 종합사령실은 1079, 1080호와 교신을 시도한다. 10시 17분이 되어서야 대구지하철 전체 전동차에 운행중지 지시가 내려진다. 대구지하철 공사측은 이후 책임회피를 위해 녹취록의 특정부분을 조작한다.- </font>

종합사령실과의 무선교신이 안 되어 휴대폰을 이용한 것은 화재 때문이 아니다. 지하철에서 사용하는 무전설비는 개방형과 폐쇄형이 있다. 개방형은 열차간·사령과 열차간 통화가 실시간 개방되는데 비해, 폐쇄형은 열차끼리는 통신도 할 수 없고 사령이 통화하고 있으면 '통화중'이 된다. 그래서 종합사령실이 일방적으로 전체 열차에 전달하는 올콜 역시도 통상 한 두대에는 전달이 안된다고.

노조의 승무지부에서는 폐쇄형 시스템의 위험성을 여러차례 지적해왔지만 공사는 경영효율성과 예산절감을 꾀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만일 1079호와 1080호간에 교신이 되었고, 종합사령실과도 계속 통화가 가능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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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 "수익성이 승객안전보다 우선이냐"</b>

희생자대책위의 황순오 대책위원과 짧은 전화인터뷰를 가졌다.

황순오 위원은 "작년 2월 18일 참사당시에, 차장이 한 분만 있었으면 초기에 화재 진압방법이 있지 않았겠냐고 생각한다"며 "한 기관사는 운전을 한다면 다른 한 명은 화재진압을 하거나 승객을 신속히 대피 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설사 사령실과 통화가 안됐다고 쳐도 2인 승무였다면 기관사가 유사시에 대비를 할 수 있어서, 대형참사를 막을 수 있었거나 최소화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대책위)는 1인 승무의 폐해를 여러차례 주장해 왔지만 공사에서는 지하철의 공공성·안전성보다 수익성을 앞세워 왔다"고 지적하며 "수익성이 승객의 안전보다 우선할 수 있는 가치인 것이냐"고 개탄했다.

공사측의 논리에 대해서는 "적자 운행에 대한 부담 때문에 1인 승무를 할 수 밖에 없고, 전동차 시스템이 1인승무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하는데 대구참사의 직·간접적 피해가 7천억원이었다"며 "50억 줄이자고 1인 승무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황순오 위원은 지하철운영에 "시민의 입장은 반영이 안 되고, 승객의 안전은 소외되고, 경영상 운영의 부분만 고려되고 있다"며 "질높은 서비스로 승객을 많이 확보해서 재정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황순오 위원은 "전국의 5개 지하철노조가 인력충원을 주장하며 파업에 들어간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공감을 표시하며 "지금도 대구 시민들은 불안하지만 할 수 없이 지하철을 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사의 주장은 지금도 만성적인 적자로 운영한다고 하지만 단순히 인원감축이나 충원을 최소화하는 것은 너무 승객의 안전을 도외시하는 것"이라며 "우선 눈앞의 경영만 생각한다면 누가 지하철을 믿고 타겠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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