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투쟁 위해"...대신 임원진이 릴레이 단식

이수호 위원장이 7월30일 열린 민주노총 임원회의의 권유에 따라 31일 단식을 중단했다. 임원진은 이날 "앞으로 직권중재 철폐와 이라크 파병철회 등을 위해서는 좀더 폭넓은 대중적 힘을 모으는 일에 힘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데 뜻을 모았으며, 이 위원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민주노총은 그러나 임원진이 릴레이 단식농성을 통해 광화문 농성을 지속하며 투쟁해나가기로 했다.
민주노총은 또한 8월2일부터 평화통일대행진 행사를 대중적으로 치루면서 임원진이 각 지역에 직접 결합해 투쟁을 지원해나갈 방침이다.
한편 이 위원장은 31일 밤 생방송으로 진행된 'KBS대토론, 한국경제 무엇이 대안인가' 프로그램에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과 함께 노동계 대표로 참석했으며, 8월1일 병원에 입원해 건강진단 등 회복조치를 받을 예정이다.
노동과 세계 kctuedit@nodong.org


<b>[르뽀] 이수호 위원장 폭염 속 삭발단식 현장
광화문은 식지 않는다</b>

[사진1]
한낮의 폭염이 마지막 땀방울마저 빨아들일 기세로 달려든다. 서울의 심장부 광화문. 미대사관, 정보통신부, 서울지방경찰청 등이 자리잡은 세종로 모퉁이에 작은 휴식공간 '열린시민공원'이 있다. 농성천막 다섯 동에서 열기가 뿜어 나온다.
삭발단식 4일째. 영양공급이 끊긴 가운데 신진대사는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수호 위원장이 천막 안에서 고온다습한 공기와 맞서느라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서럽게 울어대는 매미소리에 '직권중재 철폐, 이라크파병철회, 주5일제 쟁취'가 쓰인 현수막이 파르르 떨린다. 농성천막에서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곳에 시민들의 물물교환장터인 '광화문 벼룩시장'이 섰다. 진열된 물건을 기웃대는 사람들의 표정이 다소 들떠있다.

열린시민공원 속 농성천막 다섯동
환경미화원들로 구성된 경기도노조 '늙은 노동자' 20여명이 찾아왔다. '직권중재 철폐' 구호를 함께 외치며 '늙은 단식자'를 위로한다.
이 위원장은 단식 중인 상황에서도 투쟁하는 곳에 발길을 옮기길 마다하지 않았다. 종묘공원 공무원노조 집회에 이어 광화문 네거리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참가했다. 군중 속에서 지친 몸을 낮은 돌기둥에 기댄 채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대회사를 듣고 있다. 본대회인 파병철회 집회가 열리는 도중 결국 몸을 가누지 못하고 천막으로 돌아가야 했다.
단식농성 6일째. 이 위원장을 비롯해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 통일연대 한상열 상임대표, 민중연대 박석운 집행위원장 등 10명이 단식자 명단에 올라 있다. '10만 릴레이 단식농성' 일정표도 나와 있다. 6시 기상, 시민선전전, 집회, 다양한 행동, 저녁 8시 정리집회까지 꽉 짜여 있다. 이 위원장의 발걸음이 뭔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억지로 걷고 있는 것이다. 이제 걷는 것도 투쟁이다.
"괜찮습니다, 체질인걸요. 사무금융연맹은 이사하고 있나요?" 금속산업연맹 백순환 위원장의 안부인사에 여유로운 엷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세상 돌아가는 게 만만치 않네요."
기댈 것이라곤 휘어질 듯한 등받이 의자와 북 하나가 전부다. 그 한켠에 책 한 권이 놓여 있다. <아버지 노릇>. 곡기를 끊은 결단이 가족에게 미칠 영향을 내색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떨까.
햇빛이 잠깐 숨을 죽였다. 농성자들 역시 잠시나마 열오른 몸을 식히고 있다. 투명한 생수와 효소 한 모금이 거구를 지탱하는 유일한 식량이다. 방송사에서 취재를 나왔다. 카메라에 비친 민둥머리는 더욱 하얘 보인다. 손등과 두피에 드문드문 핀 검버섯이 늙은 노동자의 단식을 더욱 애처롭게 한다.

걷는 일조차 투쟁이다
혈압 120/50, 혈당 85. 연세의원 담당자는 체액이 많이 부족하다며 물을 계속 마실 것을 권했다.
단식농성 8일째. 교섭을 타결한 뒤 하룻밤을 같이 한 경기도노조 늙은 노동자들이 곤한 잠에 빠진 새벽에 목욕을 다녀온 이 위원장은 흰색 재래식 한복 차림을 하고 있다. 다시 하루 해가 떠오르고, 더운 공기는 차츰 몸을 압박하며 땀구멍을 강제로 열어젖힌다. 오늘 하루는 유달리 길 것만 같다.
강상철 prdeer@nodong.org



<b>이수호 위원장 '삭발단식' 돌입
직권중재·공권력투입·파병강행에 강력 항의</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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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이 직권중재와 공권력 투입, 이라크 파병강행에 강력히 항의하는 한편 노무현 정부의 반노동자·반인권적 작태를 규탄하는 뜻으로 21일부터 삭발 단식투쟁에 들어간다. 삭발은 오후 3시 종묘공원에서 열리는 민주노총 3차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이루어지며, 이 위원장은 단식과 함께 무기한 천막농성을 벌일 예정이다.
이 위원장은 이에 앞서 전국에 시달한 '긴급 투쟁지침'을 발표했다.
이 위원장은 이 지침을 통해 엘지정유에 대한 직권중재와 경찰투입, 지하철에 대한 직권중재 회부를 "정당한 노동기본권을 박탈하는 책동"으로 규정한 뒤 "민주노총은 중대한 결단을 내린다"고 선언했다.
이 위원장은 투쟁지침으로 △21일부터 강력한 3차 총력투쟁 돌입 △정부·자본 탄압에 맞서 21~24일 집중투쟁주간으로 설정 △파업대오 엄호·지지 위한 조직적 실천 △21일 결의대회 적극 참가, 22~23일 정부당국·사용자 규탄투쟁 △24일 전국에서 결의대회, 파병철회 집회 적극 참가 등을 호소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삭발 단식투쟁 돌입 결의를 밝힌 뒤 "조합원 여러분의 단결과 투쟁을 믿고, 위원장은 광화문 네거리 한 가운데에서 여러분의 힘찬 투쟁대열을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노동과 세계 kctuedit@nodong.org


<삭발단식에 들어가며>


존경하는 조합원동지 여러분!

오늘 저는 비통한 심정으로 동지들 앞에 서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새해들어 많은 일들을 겪었고 적지않는 성과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탄핵정국을 투쟁으로 돌파하고 4.15 총선에서 민주노총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을 이루어내는 쾌거를 이룩했습니다. 보건의료노조투쟁과 최저임금투쟁 등 크고작은 투쟁 속에서 새로운 노동운동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동지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대단히 엄중합니다. 노무현정부는 이라크 파병을 강행함으로써 미국의 부도덕한 전쟁에 우리 국민을 밀어넣었습니다. 각종 사회정책은 여전히 신자유주의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오히려 반노동자적 정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지금 정부는 직권중재라는 악법으로 우리를 위협하며 사용자를 일방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지하철노조의 파업에 대해 직권중재라는 덫을 씌움으로서 수천명의 조합원들을 일거에 범법자로 만들며 정당한 요구를 압살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간부들은 항상적인 구속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가고있습니다. 정부는 노조의 정상적인 활동에 대해 공권력으로 위협하면서 굴복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노정, 노사관계의 수립은 불가능합니다. 위협받으면서 하는 대화는 굴종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민주노총은 결코 권력의 탄압에 굴복할 수 없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깊은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직권중재, 공권력위협이라는 정부의 반노동정책과 이라크파병 강행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삭발단식농성에 들어갑니다.

지금 처해있는 문제는 단결된 투쟁의 힘으로만 돌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단결된 투쟁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도부의 굳센 의지만이 단결을 만들어내고 투쟁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의 갈길은 멀고 험난합니다. 하루 아침에 전 조합원의 단결된 투쟁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첫 촛불을 들어야한다면 그것은 지도부의 책임이자 몫입니다.

동지들! 흔들리지말고 굳세게 현장을 조직해주십시오. 조합원을 하나로 묶어세우고 단결된 투쟁을 만들어 갑시다. 오늘 이 암담한 상황을 모두 함께 단결된 힘으로 헤쳐나갑시다.


2004.7.21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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