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제는 사회 양극화 해소와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안정을 위해 지난 1988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노동계, 시민사회단체쪽에서 최저임금 수준이 너무 낮아 도입 취지에 걸맞지 못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내년 2007년에 적용되는 최저임금 결정을 위해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4월28일부터 제1차 전원회의를 시작으로 닻을 올렸다. 5월 한달간 생계비와 전체 노동자 임금수준 검토 및 노사단체의 최저임금 요구안 검토, 최저임금 사업장 방문조사 등을 마쳤고 6월 16일 제2차 전원회의부터 최저임금 교섭이 파고를 올려 6월말까지 노사관계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에 최저임금제의 중요성, 지금까지 진행된 올해 최저임금 교섭 현황과 쟁점을 나누어 실기로 한다. (글쓴이 주)

<b>■왜 최저임금 투쟁이 중요한가</b>

다시 6월이다. 몇 년 전부터 6월은 수백만 비정규,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인상을 위해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의 최저임금 투쟁이 절정에 달한다. 지난 해 6월말에는 최저임금위원회에 참가하는 노동자위원들이 삭발, 회의장 점거투쟁에 들어가고 서울 강남구 논현동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2천여명의 노동자들이 밤샘농성을 벌였다. 올해는 5월 지자체 선거와 6월 월드컵에 가려져 사회쟁점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인상 기준인 최저임금제의 중요성까지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최대 문제는 빈곤의 확산이다. 이제 ‘20대 80의 사회’라는 수사가 누구에게도 낯설지 않다. 단순히 정치적 표현이라고 하기에 한국사회는 해가 바뀌기 무섭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경제적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다.

일을 못하더라도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마당에 한국 노동자들은 일을 하는데도 가난하다. 우리나라가 1995년 가입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인 상용직 풀타임 노동자의 233 이하를 저임금으로 봤을 때, 2004년 8월 현재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 1,458만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723만명(48.3%)이 저임금 노동자다.

유럽연합 기준인 중위임금의 2/3 미만으로 계산할 경우 398만명(26.6%)이 저임금 노동자다. 우리 나라의 경우 비정규 노동자 수도 비정상적으로 많지만 저임금 노동자 규모도 유럽연합이나 북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2000년 전후 유럽연합 국가들을 대상으로 OECD 기준으로 저임금 노동자 규모를 파악했을 때, 서독이 35.5%로 가장 높고 이어 아일랜드(22.0%), 에스파냐(22.0%), 이탈리아(18.3%), 영국(17.3%) 순으로 나타난다(최저임금위원회(2003), 『저임금근로자들과 노동빈민층에 대한 비교분석』, 9-12쪽).

한국에서 저임금 노동자가 늘어난 까닭은 IMF 이후 폭력적으로 진행된 구조조정, 정리해고, 아웃소싱으로 인해 비정규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선 데서 찾을 수 있다. 이는 IMF이후 한국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특징이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고, 정규직보다 훨씬 더 일하고도 임금은 절반밖에 못 받는 노동자들이 이렇게나 많은 것이다. 쉽게 말해 주변에 있는 일하는 가족과 친척, 친구들 중 절반 이상이 아르바이트나, 임시&#8228;계약직, 하청노동자 등 불안정한 고용관계 속에서 연명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그야말로 한국사회의 신빈민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노동빈곤층이 늘어나는데 한국 경제가 정상적으로 발전할 리 만무한 일이다.

빈곤이 확대되는 사회에서는 ‘분배의 정치’가 치열해지기 마련이다. 필연적이다. 특히 최저임금제도(Minimum wage)는 일찍이 국가가 노사간의 임금결정 과정에 개입해 '임금의 하한선'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대표적인 사회정책이다. 최저임금제는 일반적으로 저임금 일소, 임금격차 해소, 노동소득불평등 완화, 소득분배구조 개선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갖는다. 한국의 사회운동진영은 IMF 이후 비정규직 급증과 노동자간 임금격차가 확연해지며 저임금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최저임금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국에서 최근 저임금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최저임금제가 부각된 이유는 앞서 밝힌 것처럼 IMF 이후 비정규, 저임금 노동자의 수가 늘어났는데 이들의 임금인상방안은 오로지 법정 최저임금 인상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한국은 사회보장제도가 1980년대 후반부터 형성돼 OECD 국가 중 저임금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보호가 매우 낮은 수준이다.

노조에 가입된 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 대비 10.6% 수준이어서 90%의 노동자들은 임금교섭을 통해 저임금을 극복할 조건조차 없다. 게다가 산별 협약을 통해 산업별 수준에서라도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는 방안이 있으면 모를까 이마저도 기업별노조, 기업별 교섭, 낮은 협약 적용률로 난망하다. 결국 현실적 규정력을 갖는 저임금 해소방안은 법으로 보장된 최저임금제가 거의 유일한 실정이다. 최저임금 투쟁이 노동조합 운동으로서도 기업별 노조운동이 아니라 계급적인 운동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1988년 처음 시행된 이래 그 수준이 너무 낮아 ‘있으나 마나 한 제도’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OECD 국가의 대부분이 전체 노동자 임금의 절반 수준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해 왔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에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이 30% 수준에서 맴돌았다.

IMF 이후 저임금 노동자의 확산에 따라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최저임금제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며 2005년 현재 겨우 원년수준인 평균임금 대비 39% 수준을 회복한 상태다. 그러나 국제기준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은 여전히 너무 낮다. 최근 OECD가 30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구조개혁지수(2003년 기준)을 발표했는데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은 중위임금(전체노동자의 중간임금)의 25% 수준으로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 수준이 낮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저임금 노동자의 확산뿐만 아니라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진다. 한달 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최저임금 수준으로 한 가족이 연명하려면 장시간 노동을 통해 생계비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OECD 최장 노동시간이란 불명예를 안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2004년 기준 연간 2,380시간으로 최단 노동시간인 노르웨이(1,360시간)와 연간 1,020시간이나 차이난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저임금 인상에 관한 논의가 대통령 선거에서 쟁점으로 떠오르기까지는 아직 시일이 더 걸릴 것 같다. 노동조합 및 사회운동 진영에서조차 최저임금제에 관한 인식은 더 확대돼야 한다. 6월 최저임금 투쟁 때 적극 참가하는 이들은 실제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과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등 산별최저임금협약 쟁취에 나선 노동자들, 일부 노동&#8228;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제에 대한 논의는 단지 최저임금 수준을 얼마나 올릴 것인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한 달에 30만원만 줘도 일할 사람은 널려있다”는 시장의 천국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노동을 통해 생활임금이 보장되는 사회연대와 노동시민권의 확립으로 나아갈 것인가”의 문제다. 필자는 후자가 전자보다 우월한 사회라고 본다. (△글=정경은/민주노총 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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