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벽돌처럼 건설노동자들의 투쟁은 차곡차곡 쌓여간다

건설노조에 대한 공안탄압과 ILO권고안을 이행하지 않는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올림픽대교 88m상공 주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견뎌오던 김호중 토목건축협의회 의장, 임차진 경기건설노조 조합원, 허근영 경기건설노조 남양주지회장이 농성 44일째인 10월 13일 내려왔다.
전국건설연맹 조합원 등 노동자 100여명의 환영을 받으며 내려 온 3명의 농성동지들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뚜렷한 성과없이 내려와서 착잡하다”고 밝히며, “이후 힘찬 현장투쟁으로 채워나가겠다”라고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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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일 오전 10시 100여명의 노동자들은 올림픽대교 주탑 고공농성을 끝내고 내려오는 동지들을 맞이하기에 앞서 한강시민공원 광나루지구에 있는 고공농성 지원천막 앞에서 약식집회를 열었다.
투쟁사에서 남궁현 전국건설산업연맹 위원장은 고공농성의 고통을 전하며 “많은 것을 바꿔내지 못했지만 새로운 싸움을 준비하기 위해 내려온다”고 밝히고 “오늘은 내려오는 동지들과 함께 투쟁을 결의하는 자리가 돼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진영옥 민주노총부위원장은 “책임 지도단위로서 그다지 많은 일을 해내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다”며 심경을 토로하고, “참여정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불끈 쥔 주먹, 찬바람과 뜨거운 햇살을 견뎌내는 몸뿐이다. 이 몸들을 서로 부둥켜안고 다같이 싸워나가자”며 주먹을 치켜들었다.
또한 연대에 나선 이해삼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은 “오늘 건설노동자의 투쟁을 엄호하고 지지하는 것이 이 나라 노동운동을 지키는 일이다”라고 규정하고 “올해 구속된 노동자들을 봐라, 태반이 건설노동자들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다. 이들과 함께하지 않고서야 민주노동당, 민주노총의 미래가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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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분간의 집회를 마치고 참가 노동자들은 300m가량 떨어진 올림픽대교 주탑까지 행진에 나섰다.
그러나 한 개 차로를 이용한 평화행진과 안정된 기자회견을 보장하겠다던 광진경찰서는 애초의 약속과 달리 다리 입구에서 행진을 막아섰다. 실랑이 끝에 인도로 행진(?)하고 전체대오가 농성동지들과 섞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길은 열렸다. 그러나 결국 안정된 기자회견 공간은 보장받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환영대오와 경찰간의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12시 30분경 마침내 내려온 3인의 건설동지들은 경찰의 방해로 먼발치에서 환영대오를 바라보며 기자회견을 가져야 했다. 인고의 고공농성이었음에도 김호중 토목건축협의회 의장은 힘차고 결의에 찬 목소리로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조연맹은 기자회견문에서 “‘건설노조탄압중단’과 ‘ILO권고안이행’ 어느 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 그러나 고공농성 44일차에 농성을 철회하는 것은 포항에서 하중근 열사를 백주대낮에 때려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노무현 정권은 올림픽대교 고공농성장의 동지들이 죽어나간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사실과 일반대중들에게 건설노조활동이 알려졌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실질적으로 건설노조탄압이 중단되려면 현장의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해야 하기에 지금부터 본격적인 현장투쟁과 대중투쟁을 만들어가기 위한 것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내려 온 심경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허근영 경기건설노조 남양주지회장은 “현기증이 나지만 땅을 밟을 수 있어서 좋다. 더욱이 21개월 된 딸을 품에 안고 향긋한 아기의 냄새를 맡으니 행복하다”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기도 했고, 또 “공안탄압이 계속되고 있지만 어차피 넘을 시련고개라면 웃으며 후회없이 넘자”라며 의연해 했다. 이어서 임차진 경기건설노조 조합원은 “저 높은 상공에서 밤마다 거센 바람소리를 들으며 잠들어야 했다. 마치 이 거대한 다리를 놓다가 죽어간 건설노동자들의 한 맺힌 절규로 들렸다”고 회상했고, 김호중 토목건축협의회 의장은 “구체적인 해결점이 없이 내려와서 가슴이 아프다.”며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고 이후 “힘찬 현장투쟁으로 채워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농성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뭡니까?”라며 기자들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이에 농성동지들은 “저 많은 한강물을 보면서도 제대로 씻지 못한 것"이 작은 어려움이었다면 무엇보다 “건설노동자들과 현장에서 함께 싸우지 못한 점”이 가장 힘들었다고 전하고, “하루하루가 인상적이었지만 육체적으로는 처음 열흘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농성동지들은 기자들을 향해 “보수언론사는 각성하라”고 덧붙이며 “제대로 된 언론보도가 있었다면 올라오지 않았다”고 꼬집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대답에 나선 이기원(허근영 동지의 부인) 동지는 “걱정했는데 건강한 모습의 남편을 볼 수 있어서 기쁘다”며 안도했고, “남편이 기죽지 않고 투쟁할 수 있다면 더욱 기쁘겠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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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 10분경 고공농성을 푼 김호중 토목건축협의회 의장 등 3명의 노동자들은 기자회견 후 자진출두 형식으로 경찰차에 올랐다. 노동자들의 요구로 경찰차는 농성동지들의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3명의 동지들은 검진 후 공공시설물 불법점거 혐의로 광진경찰서에 연행됐으나, 수배 중이던 임차진 경기건설노조 조합원을 제외한 김호중 토목건축협의회 의장, 허근영 경기건설노조 남양주지회장은 18시경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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