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민주노총에서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 주관 증언대회 열려

4일 오전 민주노총 15층 교육장에서 노동자의 죽음을 부르는 현장 증언대회가 열렸다. ⓒ 노동과세계 송승현

"본인들이 문중원 열사 죽음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하루빨리 유족에게 사과하고 현대판 노예가 아닌,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

"내 몸이 기억하는 진실이 부정되는 재판과정이 고인에게 어떤 절망이었을까. 자살을 이슈로 몰아가는 게 걱정이다. 죽어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상황인 것 같다."

한국마사회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가 4일 오전 10시 민주노총에서 연 증언대회에는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현장을 증언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고 문중원 한국마사회 경마기수, 고 이재학 청주방송 PD, 고 설요한 중증장애인 동료지원활동가, 고 서지윤, 박선욱 간호사, 고 한광호 유성기업 노동자의 이야기를 통해 개별적으로만 존재했던 노동자의 죽음에서 죽음의 원인을 읽어내고 돌파할 문제를 찾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누군가의 자살이 낭떠러지에 몰려서 떨어진 것만 같은 사건이 아닌, 우울증과 같은 질병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만도 아니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날 사회를 맡은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활동가는 "자살은 주위에 남은 사람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목숨을 던진 당사자에게는 유일한 의사소통 방법이자 창구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라며 "억울하고 부당한 것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 아니었을까"라는 말로 증언대회를 시작했다. 

고광용 부산경남경마공원 지부장은 "밖에서 보는 마사회와 달리 내부에서 살아가는 기수와 마필관리사의 삶은 현대판 노예와 다름없다"라며 마사회를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땀 흘리는 일 대신 마사회와 조교사에게 충성을 다 해야만 살아남는 사회"라고 설명했다.

고 지부장은 "기수들은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파도 경기를 뛰어야 하고 부당한 지시도 거부할 수 없는 구조에서 좌절 끝에 목숨을 던지는 사람이 생긴다. 고 지부장은 "많은 기수들이 지금도 유서를 품에 안고 다닌다고 들었다"라며 "문중원 열사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수들에게 권한을 돌려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면허권과 징계권, 면허갱신권을 비롯해 마사대부심사권마저 마사회가 갖고 있어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고 이재학 청주방송 PD를 대신해 소송을 맡아 진행 중인 이용우 변호사는 "CJB 청주방송은 진실을 왜곡하고 법원은 이에 편승하고 있다"라는 말로 고 이재학 PD의 죽음을 설명했다.

고 이재학 PD는 2018년 4월 동료 프리랜서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다 해고된 후 청주지법에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하던 중 지난 2월 4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변호사는 "1심 판결은 고인이 청주방송 노동자라 보기 부족하다고 판결했다"라며 "고인은 14년 이상 청주방송에서만 많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조연출, 연출, 보조금 관련 업무 수행 등 청주방송 소속 노동자라는 다양한 징표가 있음에도 사측과 법원은 진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증언을 내놨다. 

이 변호사는 "법원의 행태도 신랄하게 밝혀져야 한다"며 "고인은 물론 관계자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진상이 드러나는 족족 징계조치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중증장애인 동료 지원활동가였던 고 설요한 동지의 이야기에서 "공공의 책임을 지지 않고 저질 일자리로 둔갑시켰다"는 비판을 내놨다. 

2019년 고용노동부의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 동료지원가로 취업했던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는 지난해 12월 실적을 채우지 못해 임금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투신 자살했다. 

당시 월 4명의 중증장애인을 월 5회 만나야 하는 실적을 채워야만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사업 구조는 중증장애인의 노동력으로는 도저히 채우기 어려운 조건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문 대표는 "노동자 이야기를 하는 데 많은 사람들이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꺼낸다"라며 "비경제활동인구에 속하는 중증장애인은 대한민국에서 일할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문 대표는 "고 설요한 동지의 죽음은 현실 불가능한 업무를 부과한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동료지원가에게 책정된 수당이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노동의 대가에 미치지 못했으며 고용노동부에서 중증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도 큰 문제로 짚었다. 

문 대표는 "고용노동부가 의미있게 시작한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은 권리 중심의 공공일자리로 만들어 중앙 정부는 물론 지자체에서도 함께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예산을 반영해 그 예산 안에서 일할 수 있는 직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민화 건강권실현을위한행동하는간호사회 간사는 연이은 간호사들의 죽음이 말하는 현실에 대해 증언했다. 

이 간사는 "간호학생 시절은 개인의 행복보다 '우리'라는 이름의 폭력에 대해 학습하는 기간"이라며 "이 기간을 통해 간호학생들은 침묵을 강요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웨이팅제도를 거쳐 어렵게 병원에 취업해도 부당한 일을 겪어 퇴사율이 매우 높다"고 전했다. 

이 간사는 "간호사 문제 근본원인의 대부분은 인력문제"라고 전했다. 이어 "1년 내 첫 병원을 떠나는 간호사가 42%"라며 이 통계로 간호사들이 병원 현장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민 유성기업 영동지회 교육부장은 "아직까지도 산업현장 등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억울해하는 사례가 있다는 사실이 답답하다"라며 유성기업 노조파괴 공작 끝에 목숨을 달리한 고 한광호 열사 사례를 들었다. 

김 부장은 "2011년 현대자동차와 유성기업은 직장폐쇄를 단행해 노동조합원들을 탄압했다"라며 "창조컨설팅과 현대자동차가 공모해 집요하게 금속노조 조합원을 탈퇴시키는 과정에서 간부들이 떨어져 나가거나 우울증이나 심각한 트라우마에 걸린 사례가 많았다. 고 한광호 열사 또한 마찬가지였다"고 회상했다. 

고 한광호 열사 이야기 중 잠시 눈물을 꾹 참기도 했던 김 부장은 "창조컨설팅은 야간노동 폐지 단체협약과 직장폐쇄 단행, 어용노조 설립, 금속노조 탈퇴 종용, 직장 내 괴롭힘 등 치밀하게 계획된 노조파괴 공작을 저질렀다"라며 "정부가 강력하게 제재하지 않아 아직도 유성기업 조합원들은 괴로운 상황을 10년째 맞고 있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란 걸 유성기업 노조파괴를 통해 분명하게 깨달았다"라는 말로 증언을 마무리했다. 

이날 증언대회 사회를 맡은 최민 활동가는 "다섯 분의 발언에서 비슷하게 나온 이야기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노동자들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는지, 또 그런 일이 비단 개별 기업만의 문제나 한 명 한 명의 싸움이 아니란 걸 함께 나눈 시간이었길 바란다"고 증언대회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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