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노동 현실을 풀어가려면 문제의 원인을 알고 해독할 방법도 찾아야 합니다. 노동법률 디톡스가 해독제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이번 호외판은 지난 2. 19. 기습 야합한 경사노위 탄력근로시간제 합의문의 문제점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자주]

탄력근로시간제, 경사노위 야합안의 사악한 민낯

[합의문] 1.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최대 6개월로 한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최대 6개월로 확대

탄력근로시간제란 일정한 단위기간내 근로시간이 1주 평균 법정 40시간을 넘지 않으면 특정주의 근로시간을 법정 40시간을 초과하더라도 시간외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근로시간 유연화제도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탄력근로시간제는 단위기간이 길어질수록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여 장시간 노동, 불안정한 생활패턴으로 일하게 되는 기간이 길어지므로 노동자의 삶과 건강, 임금수준의 보장에 있어 해로운 제도입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탄력근로시간제는 2주와 3개월 단위기간의 제한을 두고 있는데, 이번 합의안은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한 명백한 개악입니다.

[합의문] 2.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으로 우려되는 노동자의 과로를 방지하고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의무화함을 원칙으로 하되, 불가피한 경우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이에 따른다.

아울러 노사정은 노동자의 과로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

근로일 사이의 11시간 연속휴식시간 보장?

합의안은 근로일간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의무화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하면서도, 불가피한 경우 근로자대표와의 서면 합의로 예외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결국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만 하면 근로일과 근로일 사이의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근로자대표의 민주적 선출과 자주적 운영이 쉽지 않은 무노조사업장, 기업별노조, 조직력이 약한 소수노조들이 대부분인 현실을 생각하면 사용자의 입맛에 따라 악용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특히 이는 최저근로조건을 정하여 강행적 효력을 갖도록 한 근로기준법의 체계와 매우 이질적인 제도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근로기준법의 원칙과 강행적 효력을 흔드는 개악은 노동법 해석 전반에서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노사간 오랜 관행, 근로자대표의 동의, 단체협약상 형식적인 합의를 핑계로 강행법규인 근로기준법을 배제하려는 해석론이 활개를 칠 수 있습니다.

[합의문] 3.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를 통해 도입한다. 이 경우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대해서는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사전에 확정하는데 애로가 있음을 고려하여 주별로 근로시간을 정하고, 최소 2주 전에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노동자에 통보하여야 한다.

다만, 서면합의시 사용자가 예측하지 못한 천재지변, 기계고장, 업무량 급증 등 불가피한 사정이 발생한 경우, 정해진 단위기간 내 1주 평균 근로시간을 유지하면서, 근로자 대표와의 협의를 거쳐 주별 근로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사전에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노동자에게 통보하여야 한다.


근로일별 근로시간이 불안정한 탄력적 근로시간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할 때에는 근로시간의 불안정성을 제한하기 위해, 단위기간 내 각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사전에 정하여 합의를 해야 합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3개월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도를 도입할 경우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로 ‘단위기간의 근로일과 그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정’(근로기준법 제51조 제2항 제3호)하도록 한 것은 탄력적 근로시간제로 인하여 특정주의 근로시간이 법정 40시간을 초과하게 되더라도 근로시간을 사전에 확정하여 불안정성을 줄이기 위한 근로기준법의 최소한의 한계규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합의안은 단위기간을 6개월로 이미 근로시간의 불안정성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사전에 확정해야 하는‘근로일별 근로시간’을 ‘주별 총근로시간’만 정하는 것만으로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의 불안정성을 더욱 확대하였습니다.

사용자는 오직 2주전에만 해당주의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통보하면 족하고, 심지어 근로자대표와 ‘협의’(합의 아님)만으로도 주별 근로시간을 변경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받는 노동자는 바로 다음주의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불안정 노동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단위기간 연장하고 주별로 근로시간을 정하고 주별 근로시간도 사용자가 마음대로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야합안은 결국 ‘사용자 마음대로 법’, ‘고무줄 근로시간법’을 만드는 개악안입니다.

[합의문] 4.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자는 임금저하 방지를 위한 보전수당, 할등 등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하여 이를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신고하고, 신고하지 않은 경우에는 과태료를 부과한다.

다만,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로 임금보전방안을 마련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임금보전 방안은 쓸모가 있는가

합의안은 탄력근로제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해서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고 하였으나 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과태료 부과에 그칠 뿐이고,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로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한 경우에는 신고의무조차 면제되므로 사용자에게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로 인한 임금감소를 막기 위해서는 법령에 임금보전의 방법, 기준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하지만 합의안 어디에도 임금보전 방안의 구체적 내용과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법에 임금보전의 기준과 내용을 구체화되지 않은 한 실질적인 임금보전을 강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사용자가 임의로 임금보전방안이라고 신고하면 그 내용을 규제할 방법도 없습니다.

주 52시간제 시행에 맞춰 단계적으로 장시간 무상 노동 확대

합의안은 사업장 규모에 따른 주 52시간제 적용시기에 맞춰 단계적으로 개악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하겠다고 합니다. 이는 대놓고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법시행시기와 연동하겠다는 것입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몰고 올 노동자의 미래

이번 합의문이 그대로 입법화된다면 단위기간 6개월의 1주 평균근로시간이 주 40시간을 넘지만 않으면 일일 8시간, 주 40시간을 넘게 일을 시켜도 시간외근무수당을 지급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결국 노동자에게는 ‘공짜노동’, ‘보상없는 심야노동’을 강요하고, 사용자에는 ‘수당없는 초과노동 명령권’을 발급해준 것입니다.

사용자 마음대로 근로시간을 줄였다, 늘였다 한다면, 노동자의 과로사 위험, 산재사고 발생은 높아지고, 생체리듬이 깨져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누구든 쉽게 예상하는 일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합의안이 개악하려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감축하고 인적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제 사용자는 인력확충이 필요한 경우에도 노동자를 신규채용하지 않고, 노동자 1인당 근로시간을 늘리는 방식(심지어 초과노동수당도 발생하지 않음)으로 일자리 정책과는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민주노총 법률원 법무법인 여는 02-2670-9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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