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로 부친 잃고 홀로 기업 책임 묻는 정석채 씨

곧 두 번째 재판…기업처벌법 미비, 솜방망이 처벌 우려

“벌금 몇 백, 집행유예 나올까 조마조마”

산재로 사망한 고 정순규의 아들 정석채 씨. ⓒ KBS 방송 화면 캡처

저희 아버지와 같은 죽음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이런 죽음이 무의미한 통계 숫자처럼 일상화돼 아무런 충격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본래부터 이래서, 이 사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여기는 지경이 됐습니다. 경동건설도 단순 벌금형에 처할 게 뻔하니 국민이 알 수 있을까요? 사람이 죽어도 진짜 책임져야 할 최종 책임자들은 처벌받지도 않습니다.

(고 정순규의 아들 정석채 씨)

지난해 10월, 부산 경동건설 현장에서 정순규 씨가 추락 사망했다. 안전망 미설치, 안전난간대 누락, 발끝막이판 미설치 등 수많은 문제가 있었다. 유족인 정석채 씨는 경동건설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경동건설은 유족에게 사과는커녕 사고 현장을 조작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정부도 정 씨에게 등을 돌렸다. 고용노동부는 유족에게 산재 조사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유족이 직접 대검찰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한 끝에 조사 내용을 알 수 있었다.

“높이 2.15m 외부 비계 2단 작업발판 위에서 발판과 난간대 사이로 나와 비계외측 단부에 설치된 수직사다리로 내려오는 도중 몸의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

사망한 지 1년, 정 씨는 지금도 경동건설과 책임을 묻는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정 씨는 지난해 고인의 빈소에서 '우리가 죽였느냐'라고 말한 하청업체 관리자의 말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당시 이 말을 듣고 분노한 유족은 관리자들과 충돌했는데, 하청업체는 이를 빌미로 유족에게 감금 폭행으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달 이 사건은 무혐의 처분이 났다. 정 씨는 이런 모습을 보인 회사의 보상은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경동건설의 사과, 엄중한 처벌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는 10월 16일 사고와 관련된 두 번째 재판이 열린다. 전망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중대재해를 발생시킨 기업과 책임자를 처벌하는 법률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산재 사고로 기소된 이들도 원하청 현장소장, 안전관리자 총 3명에 그쳤다. 최고경영 책임자는 빠졌다. 산재 사망 사고와 관련된 재판에서 기업 책임자들이 받은 평균 벌금은 400만 원에 불과하다. 정 씨도 기업과 책임자들이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받지 않을까 조마조마한다. 그새 경동건설 측은 지평 변호인단을 꾸렸다. 지평은 유성기업, 현대차 불법파견 사건에서 사측을 대리했던 ‘기업 변호 전문’ 로펌이다. 자본을 앞세운 변호인단으로 책임자들은 과연 제대로 처벌받을 수 있을까.

그래서 정 씨는 지금이라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따르면 사업주 또는 경영 책임자가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법인은 1억 원 이상, 20억 원 이하 벌금을 내야 한다. 법이 제정된다면 경동건설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가능하다.

경동건설 측은 산재 사고 발생 이틀 만에 폴리스라인을 지키지 않고 난간에 추락방지망을 설치했다. ⓒ 유족 제공
경동건설 측은 산재 사고 발생 이틀 만에 폴리스라인을 지키지 않고 난간에 추락방지망을 설치했다. ⓒ 유족 제공

최근 전태일3법 중 하나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국민동의청원도 주목받고 있다. 10일 오후 1시 44분 현재 68,705명의 국민이 청원했다. 청원에 나선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반복되는 노동자, 시민의 죽음은 명백한 기업 범죄”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으로 기업과 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죽지 않고 일할 권리라는 당연한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한 바 있다.

사고 직전 고인이 경동건설 측에 보고한 건설 현장. 안전망이 설치돼 있지 않다. 출처 : 유족 제공
사고 직전 고인이 경동건설 측에 보고한 건설 현장. 안전망이 설치돼 있지 않다. 출처 : 유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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