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자리에서 어렵게 말을 꺼냈어요.

업무를 좀 더 배우고 싶고, 승진의 기회도 열렸으면 좋겠다고.

상사는 심드렁하게 대꾸하더라고요.

 

나는 꼬추가 좋아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는 3.8 여성의날을 맞아 여성노동자들의 사연을 받았습니다. 일터에서, 집에서, 또 어느 곳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모든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보려고요. 사연 공모를 기획한 여성위원회도 실은 이렇게 많은 사연이 쏟아질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재밌고 또 속상하고, 화나는 일들이 여성 노동자들에게 이렇게나 많이 벌어지고 있을 줄도 사실 몰랐죠.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앞으로 쏟아진 수없이 많은 사연들 중 몇가지를 노동과세계가 먼저 소개해드립니다.

 

 

이어지는 여성들의 연대

올해 특성화고를 졸업한 아들에게는 여친이 있어요. 몇 주 전에 취업을 했다고 하더군요. 아들과 고등학교 내내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하고 같이 기능대회를 준비하는 모습을 다 지켜봐서인지 마음이 많이 가는 친구입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의 어려움이 많이 생각나서 그 친구가 걱정됩니다. 회식자리의 성추행, 출퇴근길의 성추행의 기억들이 떠올랐거든요. 다행히 그 친구의 상사도 여성이고 코로나 때문에 여럿이 모이는 회식도 없다고 하니 일단은 안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성평등하고 안전한 사회에서 커리어를 쌓고 성장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처음 소개해드린 사연은 아들의 여친을 걱정하는 엄마의 사연이었습니다. 아들의 여친보다는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 여성 노동자를 걱정하는 여성 노동자의 사연에 더 가깝겠네요. 여성 노동자는 여전히 퇴근길을, 회식자리를, 직장상사를 걱정해야 합니다. 단지 안전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이렇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안전을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연대가 우리 사회를 조금씩 더 안전하고 평등하게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회사는 남성들의 것?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입사 당시 사내 규정은 남자직원 초봉은 2600만 원, 여자직원 초봉은 2400만 원이었습니다.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서 그렇다고 합니다. 면접을 볼 땐 여성들에게만 애인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갑자기 임신을 할까봐 그랬다고 합니다. 입사 이후,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 화장을 하고 왔더니 ‘평소에도 좀 그렇게 꾸미고 다니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업무와 외모는 상관없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예쁘다고 칭찬한 건데 뭐가 문제냐고’ 하더군요. 여자는 출근할 대도, 야근할 때도, 외부 미팅을 할 때도 예뻐야 하지만 월급은 남자보다 적게 받는 게 당연한 회사입니다. 요즘은 회사에서 노총각 과장 하나와 자꾸 엮이는데, 기분이 나쁘지만 그냥 웃으면서 참고 있습니다. 시국이 시국이니까요.”

“인턴사원을 뽑는 면접을 진행한 적 있어요. 회사에선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니 무조건 남자를 뽑으라고 하더라고요. ‘여자도 운전할 수 있는데요’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어쩔 수 없이 남자분만 합격시켰죠. 그 일이 계속 기억에 남아요.”

회사는 여전히 남성들의 것입니다. 추레한 옷차림은 남자에겐 ‘소탈한 매력’이지만 여자에겐 ‘자기관리 부족’입니다. 고정된 성역할은 여와 남 모두를 괴롭게 합니다. (하지만 고정된 성역할을 부여하는 건 주로 남성 쪽이죠.) 직장 내에 스며든 잘못된 문화는 사실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들은 외출에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냐 묻는 남자들에게, ‘당신은 화장을 안해도 손가락질 받지 않는 세계에 살고 있으니까요’라고 말해줘야겠어요.

 

여자라서 안되는 일은 없다

“안녕하세요. 저는 곧 훈련소에 들어가 군인이 될 미래의 군인입니다. 여자가 군대를? 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나라를 지키는 일이 자랑스러워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남성들이 많은 군대엔 성차별이 너무 많네요. 여군에게 요구되는 체력 기준은 남성들과 큰 차이가 없어요. 더구나 여군은 선발 경쟁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기준보다 더 높은 체력을 갖출 수밖에 없죠. 그래도 여군을 필요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아요. 특히 SNS에는 여군을 비하하고 혐오하는 글이 넘치죠. 여군들이 군복을 입고 찍은 셀카를 SNS에 올리면 ‘셀카찍으려고 군대갔냐’는 댓글이 수없이 달리죠. 하지만 SNS에서 #육군부사관을 검색하면 99%는 남자들이거든요.

여군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과 차별은 ‘누구는 지원하고 누구는 강제로 군대간다’는 말에서 많이 드러나죠. 여군은 군생활 편하게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본격적으로 군인이 되면 이런 성차별이 더 심해질텐데 차별이 없는 직장에서 근무를 하고 싶습니다. 직장에서도 일상에서도 성차별이 없는 세상이 빨리 오면 좋겠습니다.”

여성은 OO이 될 수 없다는 사람들이 있죠. 물론 어떤 직업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은 있을 거에요. 하지만 그건 능력이나 특성의 문제일 겁니다. 적어도 ‘여성이라서’ 안되는 일은 세상에 없습니다.

 

독박은 없다

“건강문제로 전업주부가 됐습니다. 남편은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고요. 제가 돈을 벌지 않으니 정말 ‘겨우’ 먹고만 삽니다. 사는게 너무 빡빡해서 저는 허둥지둥입니다. 요즘 세상에 맞벌이는 이제 필수인 거 같은데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단기계약, 그것도 최저임금 수준의 일자리 뿐이더라고요. 건강을 회복하는대로 다시 구직을 해야 할텐데 하루 중, 한숨이 절반 걱정이 절반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맞벌이 부부에게 코로나 19는 타격이 커요. 특히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가 있는 집은 육아에 대책이 없어요. 학교 등교 시간도 학년별로 다르고, 어린이집 등원과는 또 많이 다르고요. 어떻게 할 방법을 모르겠어요. 신랑과 많이 고민을 나누고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돌봄과 육아는 오직 엄마의 몫인 것 같아요. 어렵네요.”

일터에선 노동자로, 또 집에선 아이의 엄마로, 누군가의 아내로, 가정경제의 한 축으로. 여성에겐 역할이 많습니다. 여성의 사회진출 같은 말은 멋있어 보이지만 실은 맞벌이도 해서 돈도 벌어야 하고 육아와 살림은 그대로 전담해야 하는 ‘독박’을 감춰두는 말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은 아닐 겁니다. 마을과 사회가 함께 아이를 키우고 돌보는 것, 여성과 남성이 공평하게 역할을 분담하는 것. 우리는 더디지만 분명히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과 연대의 힘으로 말이죠.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일

“육아를 시작하게 되고 나를 잃어버리며 '살아진지' 10년만에 다시 취업했습니다. 그동안 부던히 나를 찾으려고 노력하며 지내온 순간들을 떠올리니 많은 눈물이 났습니다. 첫출근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누군가 그건 그냥 간밤에 꾼 꿈이었다고 할까봐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매일 ‘꿈이 아니라, 현실이구나’ 느끼며 출근하고 있습니다. 저의 취업을 축하해 주세요!”

"다큐멘터리 영상을 제작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관련된 대학에 합격했어요! 여성, 동물권,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거예요. 내가 변화시킬 세상의 모습이 기다려져요."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같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나를 나로서 확인하는 일, 존재의 역능을 깨닫는 일. 그걸 노동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취업을 축하드립니다. 모든 여성노동자가 같은 마음일 겁니다. 그리고 이제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세상을 바꿀 여성의 꿈을 응원합니다.  우리가 바꾸고 우리가 만들어 갈 세상을 민주노총도 함께 기다리겠습니다. 

이 밖에도 많은 사연들이 민주노총으로 도착했습니다. 코로나가 바꾼 여성노동자의 삶의 이야기들, 직장에서 당하는 온갖 성폭력들, 일상에서 겪는 차별들. 실은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사연 몇 개로 이해하긴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종종 이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전하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여성들의 연대를 만들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 민주노총은 언제나 여성 노동자들의 편이 되겠습니다. 모든 여성들에게 3.8 세계 여성의날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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