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추정의 원칙 확대 등 산재 처리 지연 근본대책 마련 촉구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가 2020년 심의한 산업재해 건수는 14,442건에 달한다. 6개 소위원회가 각 2,400여 건을 심의했고, 하루 평균 6.5 건을 다뤄야 하는 양이다. 이처럼 막대한 양의 심의가 이뤄지다보니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고 심의 기간이 길어져 정작 산재 보상을 통해 치료와 업무에 복귀해야 하는 피해자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실제로 2019년 산재를 심의하는 데 걸린 시간은 근골격계질환 137일, 뇌심혈관계질환 156일, 직업성암 341일(2018년 기준)로 7일 이내에 요양급여 지급 결정을 알리고 20일 이내 업무상질병판정을 내려야 하는 현행 법기준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민주노총은 산업재해 판정이 지연되는 것은 산업재해 적용대상을 극히 한정하고 있어 적용대상을 심사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추정의 원칙’을 법제화하고 범위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16일 오전 서울 근로복지공단 남부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정의원칙을 법제화하고 산재 처리 지연의 근본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추정의 원칙은 특정 직업군에서 자주 발생하는 질병은 신속한 산재보상을 위해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면 반증이 없는 한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하는 원칙이다. 현재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질환과 직업군이 있지만 그 범위가 좁고 기준이 엄격해 실제 적용사례가 많지 않다. 민주노총은 “질병을 포함한 산재신청이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인만큼 질판위에서 심의 장기화가 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추정의 원칙 확대와 적용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산업재해 적용 대상의 범위가 협소하고 판정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면 비정규직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등 고용과 복지의 취약계층에 놓인 노동자들에게 그 피해가 가중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동성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몸이 아픈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를 신청하면 승인여부를 결정하는데만 4달, 5달 걸려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특히 비정규직은 회사로부터의 회유와 협박, 심한 경우 해고를 각오하면서 산업재해를 신청해야 하기 때문에 몸이 아파도 참고 일하다 더이상은 참을 수 없을 때 산업재해를 신청한다”며 산재 승인이 지연되면 비정규직을 비롯한 불안정 노동자들이 더 큰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산재보험의 적용대상 범위 자체가 너무 좁아 산재를 신청조차 하지 못하거나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김규우 건설노조 사무처장은 “특례형태의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건설기계노동자와 같은 일을 함에도 스카이, 살수차, 카고크레인 등의 장비를 운용하는 노동자들은 산재보험의 적용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장비들은 건설기계관리법이 규정하는 ‘화물차량’이기 때문이다. 김규우 사무처장은 “건설현장은 점점 대형화-기계화 되고 있고 그만큼 장비의 종류와 대수가 증가하고 있는만큼 건설현장에서 산재보험에서 소외되는 노동자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봉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은 “전체 40만 화물노동자 중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화물노동자는 20%에 불과하다”는 현실으 알리며 대다수의 화물노동자가 산재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의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최근 산업안전과 생명의 문제가 주요한 사회적 의제로 부각됐고, 정부 역시 이에 대한 법제도와 정책 의지를 표명했지만 정작 실질적 대책이 나오지 않아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추정의 원칙 법제화’, ‘산재처리 지연 근본대책 수립’, ‘모든 노동자에게 산재보험 적용’ 등을 촉구했다. 이 부위원장은 이어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노총이 적극적인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 부위원장은 “오늘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전국의 근로복지공단 지사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4월 한 달간 근로복지공단의 책임을 촉구하는 투쟁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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