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 시행 10년 노동3권 침해사례조사집 발간
“창구단일화제도, 고쳐서 쓸 수 있는 수준 아냐 폐지가 정답”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고쳐서 쓸 수 있는, 개정이 필요한 수준이 아닙니다. 조합원 수가 한 명이라도 많으면 사실상 교섭권의 100%를 가져갈 수 있는 상황에서, 철저하게 사측에 유리하도록 악용되고 있어요.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에 대해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부원장은 이같이 요약했다. 

민주노총이 기업단위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제도 시행 10년을 맞아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 10년 노동3권 침해사례조사집’을 발간했다. 23일 오전 민주노총 12층 대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 10년 노동3권 침해사례조사집 발간 기자간담회 ⓒ 조연주 기자 
민주노총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 10년 노동3권 침해사례조사집 발간 기자간담회 ⓒ 조연주 기자 

이날 발간된 조사집은 민주노총 가맹조직을 중심으로 모은 노동3권 침해 사례 80개를 정리한 것이다. 발간물에 따르면, 창구단일화 제도가 근본적으로 노동3권을 침해하는 문제는 지난 10년간 전혀 해소되거나 완화되지 않았으며, 노동조합의 외피를 이용한 사용자의 노동 탄압사례는 훨씬 더 은밀하고 교묘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정부는 복수노조 제도로 인한 부당노동행위와 노동3권 침해를 단지 제도시행 초기 교섭 대표노조 결정절차상의 시행착오로 치부하거나 복수노조를 악용하려는 부당노동행위를 일부 사용자의 일탈행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시행 10년간 제도가 안정적인 노사관계에 잘 안착됐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노조파괴행위가 드러난 소수 기업이 처벌받은 것일 뿐, 제도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 고쳐지지는 않았다고 반박했다. 

박주영 부원장은 “정부는 창구단일화 10년간 제도가 안정됐다고 자평하나, 현장 노조활동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수준으로 심각해져 있었다. 정부는 교섭의 대등성을 보장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장을 들여다보면 노-노갈등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노동자 간의 불화와 괴롭힘이 지속됐다. 사용자는 ‘승자독식’이라는 제도를 통해, 제2노조(어용노조)를 이용해 직접 나서지 않고도 소수노조 및 민주노조를 통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 10년 노동3권 침해사례조사집 발간 기자간담회. 박주영 부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조연주 기자 
민주노총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 10년 노동3권 침해사례조사집 발간 기자간담회. 박주영 부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조연주 기자 

박 부원장이 사례를 통해 핵심적으로 지적한 창구단일화제도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창구단일화제도는 사측이 교섭을 지연하는데 효과적인 수단으로 쓰인다
- 교섭을 늦추기 위해 교섭단위분리신청을 통해 최대한 공고를 지연하는 하는 사례. (건설연맹 건설노조 토목분과, 전차선전지부)
- 건설노조 등 전체 사업장 교섭의 경우, 일부러 특정 사업장에 공고를 누락해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며 교섭을 해태하는 사례. (건설연맹 건설노조 토목분과)

2. 객관적인 조합원 수 집계체계 없는 창구단일화제도는 손쉽게 조작될 수 있다
- A노조가 노조의 조합원 수를 ‘다수’라고 기재해 공고한 뒤, B노조의 공고를 보고 B노조 조합원보다 조합원 숫자를 높여 확정공고한 사례. (건설연맹 플랜트건설노조)
- 사용자가 구체적인 직원 명부를 제출하지 않았음에도, 노동위원회가 별다른 확인없이 제출된 조합원 명수만으로 과반수 노조를 결정한 사례. (건설연맹 건설노조 토목분과)

3. 제도의 창구단일화 절차 자체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 교섭대표노조를 결정한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에게 상당히 복잡한 절차적 제한을 두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교섭권 제한’이라는 큰 부담을 지우는 한편, 사용자에게는 의무공고나 개별교섭 등의 절차에는 아무런 제재를 두지 않고 있다.
- A노조가 창구단일화를 준비하는 기간(자율교섭기간) 동안 어떠한 통지도 받지 못했지만, 그 사이 사측은 B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유효한 개별교섭이 이뤄졌다고 주장한 사례. 이를 두고 노동위원회는 사측이 특정 노조의 개별교섭 사실을 다른 노조에 통지할 의무가 제도에 명시돼있지 않다는 이유로 B노조 단협의 효력을 인정했다. (사무금융연맹 사무연대노조 ***신협지부)
- 사측은 민주노조를 약화시키기 위해 어용노조를 설립했으나, 어용노조 조합원 수가 충분하지 않은 초창기에는 개별교섭을 진행한 다음, 어용노조가 다수노조가 된 다음에는 창구단일화절차를 거친 사례. 그 후 민주노조가 또다시 다수노조가 되자, 사측은 개별교섭을 실시했다. (금속노조 대충지부 **지회)

4. 창구단일화제도가 보장하는 것은 동등한 교섭권이 아닌 사용자의 (우회적) 부당노동행위다
-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단협을 체결하는 대표노조에 반발하는 소수노조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는 등 대표노조가 대표권 행사를 남용함에도 사측은 어떠한 제지 없이 방기한 사례. 해당 사례의 대표노조는 근로시간면제한도, 노조사무실 등을 제공받으면서도 소수노조에게는 이를 배분하지 않는 등 사측 대신 부당노동행위를 행사했다. (공공운수노조 ***지부)
- 사측에 반하는 민주노조 조합원을 대상으로 투표할 수 없도록 유도하거나, 민주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불리한 인사조치를 받을 수 있다며 탈퇴를 종용한 사례.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발전)

5. 창구단일화제도는 소수노조 쟁의권을 침해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 A노조가 사용자의 교섭해태로 노동쟁의 조정신청을 하던 도중, 새로 설립된 B노조의 교섭요구로 노동쟁의 조정신청이 각하된 사례. A노조가 교섭대표권을 빼앗기자, 그간 진행해 온 단체교섭은 무위로 돌아갔다.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조 ***지부)
- A노조가 임금교섭 결렬로 파업하던 중, 새로 생긴 B노조가 교섭요구를 한 것을 이유로 사용자가 A노조에게 쟁의행위를 중단하라고 위협한 사례. (민주일반연맹 경남일반노조 *******고객센터지회)

6. 창구단일화제도는 사용자의 노조파괴를 보장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 사용자가 어용노조를 설립한 뒤,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민주노조 조합원에게 탈퇴를 압박하거나, 어용노조 가입을 종용한 사례. 사측은 어용노조의 총회 회의록을 허위로 만드는등 직접 노조설립주도한 사실이 드러났다.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 등)
- 불법 하도급업자를 원청의 현장노동자로 둔갑시켜 노동계약을 맺고, 이들을 어용노조에 가입시켜 민주노조의 노조활동을 방해한 사례. (건설연맹 건설노조 전차선지부 등)

7. 창구단일화제도는 소수노조 조합원에 대한 괴롭힘을 가중시킨다

- 인권침해가 만연한 사업장. 사업주의 친인척이 위원장으로 있는 A노조에서 탈퇴한 이들이 B노조를 만들자, 돌연 사측이 B노조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경고장을 남발하며 지속적으로 괴롭힌 사례.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전주지부 **분회)
- 비민주적 기존 노조경영에 반발한 조합원들이 새로운 소수노조를 만들자, 사측이 기존 노조에 관리자를 대거 가입시키고 신규노조 조합원을 집중적으로 압박한 사례. (화섬식품노조 ***지회)

8. 창구단일화제도는 조합원 수를 통제해 소수노조를 공고화한다
- 사측이 지역주민우선고용 법령을 악용해 어용노조에 가입하면 아들 딸 등 가족채용을 해주겠다고 회유한 사례.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세종충남지역일반노조 **발전서비스지회)

9. 창구단일화제도는 초기업별 교섭을 무력화한다
- 조직형태와 상관없이 기업단위에서 교섭창구를 단일화해야 하는 제도는 사실상 기업단위 교섭을 강제하고 초기업별 교섭을 무력화시킨다.
- 금속노조 중앙교섭의 경우, 창구단일화제도 시행 직후부터 금속노조 지회 조직형태를 기업노조로 변경시키려하는 등 금속노조를 소수화하기 위해 기업별노조 설립을 지원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 초기업단위 교섭을 할 수 없는 건설현장 특성상, 기업단위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는 노동조합의 교섭권을 침해하고 무력화한다.

10. 창구단일화제도는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자의 노동권 침해를 가중시킨다
- 노조 조직 대상이 타 사업장에 파견된 하청노동자인 경우, 하청업체 본사 정규직노조보다 수가 월등히 적어 대표노조가 될 수 없는 사례. 이들은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했으나, 노동위원회는 전국 수많은 위탁사업장이 있어 노조가 생길 때마다 단위분리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신청을 기각했다.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제천지부 *****)
- 원청이 한 택배노동자의 교섭을 거부해 부당노동행위 판결을 받았음에도, 교섭창구단일화를 근거로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교섭 상대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사례. (서비스연맹 택배노조 ******)

민주노총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 10년 노동3권 침해사례조사집 발간 기자간담회 ⓒ 조연주 기자 
민주노총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제도 10년 노동3권 침해사례조사집 발간 기자간담회 ⓒ 조연주 기자 

이어 창구단일화제도로 피해를 입은 노조 조합원의 발언이 이어졌다.

김학진 화섬식품노조 정책국장은 “파리바게뜨는 복수노조제도를 악용해 민주노조를 탄압하는 아주 전형적인 기업이다. 사측의 민주노조 탄압은 모두 대표노조(어용노조)의 뒤에 숨어서 이뤄지고 있다. 파리바게뜨에는 매달 200~300명의 신규 제빵기사가 들어오는데, 이들은 노동계약서 작성과 동시에 어용노조 가입서를 작성해야 한다. 계약서를 들이미는 관리자가 어용노조 조합원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승진에서도 배제되며, 사측은 어용노조를 통해 민주노총에서 조합원 한 명을 탈퇴시킬때마다 관리자에게 5만 원의 수당을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제용순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오랜시간 민주노조였던 발전노조가 파괴되기 시작한 첫 과정이 바로 창구단일화제도의 시행이었다. 사측은 단일화제도 시행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기업노조로 만들기 위해 추진위원회까지 만들었다. 결국 우리는 (기업이 노조파괴를 했다는) 수많은 증거를 찾아 인사담당자 증 경영진으로부터 손해배상 승소 판결을 받아냈지만, 이 모든 과정을 노동자 스스로가 입증해야만 했다. 민주노조 간부들은 소수노조가 된 지금도 평상시 모든 행동에 대해 감시를 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소연 전국민주우체국본부 교육선전국장은 “우리 노조는 집배원 과로사를 막기 위해 민주노조인 대표 노조와 함께 파업을 가결했었다. 그러나 파업 직전 대표 노조가 노조의 요구에 한참 못미치는 사측의 요구안을 받아들였고, 파업을 뒤집었다. 그 이후 2020년에만 집배원 19명이 과로로 숨졌다. 사용자 편의적으로 구성되는 창구단일화제도의 피해는 결국 소수노조 뿐만 아니라 노동자 전체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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