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 정문 앞 기자회견 “공개사과하고 사장 사퇴하라”
“비장애인 시민들, 다시 한번 ‘불편해도 괜찮아’ 연대로 함께해야”

서울교통공사(사장 김상범)가 장애인단체를 대상으로 혐오를 부추기는 여론전을 펼치려 한 정황이 드러나 시민들의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민주노총도 이를 두고 이명박 집권 당시 노조파괴 시나리오와 다를 바 없는 범죄라며 분노를 보탰다.

노동시민사회단체와 장애인단체가 함께 ‘사회적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언론 공작 서울교통공사 규탄 기자회견’을 18일 오전 10시 서울교통공사 정문 앞에서 열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주관했다.

‘사회적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언론 공작 서울교통공사 규탄 기자회견’이 18일 오전 10시 서울교통공사 정문 앞에서 진행됐다. (제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회적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언론 공작 서울교통공사 규탄 기자회견’이 18일 오전 10시 서울교통공사 정문 앞에서 진행됐다. (제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교통약자를 적으로 규정하는 서울교통공사 내부 문건 파문
‘직원 일탈’이라며 사과했지만···“개인 아닌 조직적 문제”

이들의 회견은 지난 17일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작성한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 시위를 사례로’라는 제목의 문건이 드러남에 따른 것이다.

전장연 등 장애인 단체가 지난해부터 진행해 온 출근길 투쟁(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과 관련해 작성된 25쪽 분량의 PPT 문건을 살펴보면, 서울교통공사는 ‘지피지기 백전불태(상대를 알고 나를 알며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상대방도 실점은 언제든 할 수 있다! 꼼꼼히 Catch(캐치), ‘휴전 상태지만 디테일한 약점은 계속 찾아야’ 등의 표현을 통해 사실상 장애인 단체를 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서울교통공사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문건 갈무리.
서울교통공사 문건 갈무리.
서울교통공사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문건 갈무리.
서울교통공사 문건 갈무리.

구체적인 대응 예시로 ‘(휠체어) 바퀴를 열차와 승강장 틈 사이로 끼워 넣기+휠체어로 문 가로막기 사진 확보 후 자연스럽게 알리면 고의적 열차 운행 방해 증빙하는 것이 됨’을 제시하거나,  ‘지난달 9일 한 시민이 출근길 5호선 전동차 안에서 '할머니 임종을 보러 가야 하는데 전장연 측이 열차를 막아 갈 수 없었다'고 항의한 건을 성공적인 여론전 예시로 제시하기도 했다.

파문이 일자 서울교통공사는 “문건은 개인 의견이며, 직원 미숙에 사과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개인 일탈이 아닌 조직(=서울교통공사)의 잘못이며, 교통공사는 꼬리자르기로 사태수습을 꾀하고 있다는 비판이 계속되는 상태다.

‘사회적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언론 공작 서울교통공사 규탄 기자회견’이 18일 오전 10시 서울교통공사 정문 앞에서 진행됐다. (제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서울교통공사, 혐오 부추긴 범죄행위 저지른 것”
“비장애인 시민들, ‘불편해도 괜찮아’연대 다시 한번”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어제 기자회견에 참석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문건을 봤다. 참담했다. 이명박 정권 시절 작성된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떠올랐다”고 운을 뗀 뒤 “당시 정권은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를 부추겨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고,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어용노조 만들어 노동자들 이간질 했고, 그 피해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울교통공사가 내부적으로 작성한 문건은 범죄행위다. 장애인들의 정당한 투쟁에 대해 혐오와 폭력을 양산한 범죄이며, 실제로 시민들이 장애인단체를 찾아 폭언·폭행하는 일들이 벌어지게 만드는 범죄”라고 한 뒤 “이 문건에 동조하는 교통공사 직원은 없어야 한다. 범죄에 가담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부당한 업무지시는 거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장애인 시민들을 향해 박 부위원장은 2016년 철도·지하철 노동자들이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파업(성과연봉제 도입 반대 파업)을 벌일 때를 기억하고, 지지와 응원을 장애인 활동가들에게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철도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에 시민들이 ‘불편해도 괜찮다’며 함께 투쟁했던 것을 기억해달라”며 “장애인들이 이동권 투쟁을 할 때 비장애인들이 해야 하는 것은 모두에게 동등한 이동권을 함께 요구하며, 지금 당장 잠깐 불편해도 괜찮다고 말하기다”라고 한 뒤 “모든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일에 민주노총이 함께할 것”이라고 전했다.

‘사회적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언론 공작 서울교통공사 규탄 기자회견’이 18일 오전 10시 서울교통공사 정문 앞에서 진행됐다. (제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회적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언론 공작 서울교통공사 규탄 기자회견’이 18일 오전 10시 서울교통공사 정문 앞에서 진행됐다. (제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차별금지법이 제정이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차별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의 역할은 공공기관으로서 예산을 보장하고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지, 시민과 장애인을 갈라치는 것이 아니”라고 짚으며 “이는 사회적 소수자가 배제된 사회 구조 자체에 대한 문제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국회 앞에서 계속 싸우고 있다. 하루빨리 차별금지법도 지금 당장 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교통공사의 그간의 행간을 잘 정리한 결과물로 보인다. 공사의 악의적인 보도자료 배포와 행동들이 이야기하기 쉽게 잘 정리된 것”이라고 한 “직원 개인의 입장에 불과하다는 공사의 사과문이 더 화가 났다. 공사가 앞서 보인 행위들은 문건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노했다.

‘사회적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언론 공작 서울교통공사 규탄 기자회견’이 18일 오전 10시 서울교통공사 정문 앞에서 진행됐다. (제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회적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언론 공작 서울교통공사 규탄 기자회견’이 18일 오전 10시 서울교통공사 정문 앞에서 진행됐다. (제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단체의 발언도 이어졌다. 황인준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서울교통공사 홈페이지를 보면 이런 문구가 있다. '안전을 최우선가치로, 시민 그 누구나 행복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장애인도 시민이다. 행복한 일상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지하철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사는 엘레베이터 설치 약속을 지켜라”고 했다.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의 진은선 활동가는 “문건을 통해 공사가 장애인을 어떻게 조롱하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드러났다. (공사는)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만 인정하지, 권리보장을 위해 투쟁하고 목소리내는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공사가 내놓은 문건은 이기는 전략이 아니라 차별하는 전략이었다. 조직적인 입장이 아니라는 공사의 변명은 지금까지 공사가 주도했던 행동들을 보면 말이 안된다. 공사는 꼬리자르지 말고 책임을 다하라”고 분노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서울교통공사에 ▲사장의 공개사과 및 책임있는 사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철회 ▲서울교통공사 오이도역, 발산역 등 리프트 추락참사공간 추모비 설치를 요구했다. 서울시에는 ▲2차례 장애인이동권보장과 2차례약속 미이행을 공개사과 ▲장애인이동권을 완전보장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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