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 ‘잊지 말아주세요’, ‘기억하겠습니다’
경찰차와 경찰벽 대동해 행진 막아선 경찰···“그날은 뭐했는데” 유족 오열

16일 이태원 역 앞 도로에서 개최된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 ⓒ 변백선 기자
16일 이태원 역 앞 도로에서 개최된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 ⓒ 변백선 기자

“우리가 사랑했던 이들을 대신하여 말씀드립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이상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이태원참사 49재, 희생자들은 유족과 지인들의 입을 통해 ‘우리를 기억해 달라’고 했다. 시민들은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희생자를 기억하겠다고 약속했다.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가 16일 오후 6시부터 이태원역 인근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제에는 300여 명의 유족을 포함한 80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다(주최측 추산). 200여개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구성한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와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오후 6시 시작된 집회는 행진을 포함해 약 4시간 동안 계속됐다. 체감온도 영하 10도의 날씨속에서도 많은 참가자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유족과 함께 아픔을 나눴다. 빨간 목소리를 두른 유족들은 중간중간 흐느끼고, 슬픔에 겨운 신음소리를 내거나 오열했다. 이날은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의 유족들도 함께했다. 시민대책위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구급차와 의료장비를 준비해놓은 상태였다.

16일 이태원 역 앞 도로에서 개최된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 ⓒ 김준 기자
16일 이태원 역 앞 도로에서 개최된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 ⓒ 김준 기자
16일 이태원 역 앞 도로에서 개최된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 ⓒ 김준 기자
16일 이태원 역 앞 도로에서 개최된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 ⓒ 김준 기자

이번 추모제는 이태원참사와 관련한 첫 번째 대규모 집회이자, 유족들의 동의를 얻은 희생자의 이름과 사연이 대거 무대에 오르는 최초의 자리였다. 각 종교계의 추모 의식이 마무리 된 뒤,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함께 유족들의 편지가 영상으로 공개됐다. 중고등학교 졸업사진이, 젊은 세대에서 유행하는 유명 증명사진 브랜드에서 찍은 사진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캡쳐본이, 인스타그램 스토리 캡쳐본이, 친구들과 함께한 파티에서 찍은 사진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희생자의 영정으로 쓰였다.

사회자는 영상 공개에 앞서 희생자의 이름을 꼭 불러 달라고 참가자들에게 당부했고,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참가 시민들도 조금씩 희생자의 이름을 또박또박 호명하기 했다. 유족들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칫 결례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며 어색해 하던 시민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박수치기도 했고 응원의 말을 크게 외치기도 했다.

‘너에게 못다한 이야기’를 전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12명의 희생자 가족과 지인이 고인을 향해 편지를 낭독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유족과 지인의 입을 통해 희생자의 삶과 사연을 전해들었다. 희생자들은 할로윈을 기념하기 위해 놀러왔다가, 밥 먹으러 갔다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나오다가, 친척 집에 왔다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됐다. 그 골목을 그냥 지나갔을 뿐인데, 왜 죽음으로 돌아왔는지 국가는 아직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생전 그들의 꿈과 소중하고도 사소한 추억들이 공유됐다. 희생자들의 삶과 꿈들은, 그날 살아남은 이들과의 그것과 하나 다를 바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의 말처럼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은 모두의 각자의 찬란한 미래를 가졌고, 모두 하나같이 아름다웠다.’

16일 이태원 역 앞 도로에서 개최된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 ⓒ 김준 기자
16일 이태원 역 앞 도로에서 개최된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 ⓒ 김준 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의 편지가 끝날 때마다 눈물짓던 시민들은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함께하겠습니다’를 외쳤다. 얼굴을 감싸쥐고 울던 유족들은, 끝에 가선 시민들을 향해 ‘기운내겠다’, ‘자리를 끝까지 지켜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참사 당일 오후 6시 34분 사고 위험을 감지해 경찰에 최초로 신고한 시민의 편지가 시민대책위 대독으로 낭독됐다. 최초신고자는 편지를 통해 ‘정부는 시민의 안전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세 번이나 강조했다.

무대 행사가 끝나고는 행진을 시작했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 유족들의 6가지 요구사항들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참가자들이 녹사평역을 지나자, 경찰 벽과 경찰차 10여 대가 행진대오를 막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약간의 충돌이 있은 뒤, 유족대표단과 대리인이 서한을 전달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해산했다. 한 유족은 “오늘 요청한 사항들이 관철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한 뒤 “오늘은 왜 이렇게 많이 나왔냐 경찰들, 그날은 뭐 했는데”하며 가슴을 쳤다. 주최 측은 어제(15일)까지는 경찰과 대통령 집무실 앞으로 500명이 행진해 서한을 전달하는 것으로 합의했지만, 돌연 경찰이 길을 막아 섰다고 밝혔다.

16일 이태원 역 앞 도로에서 개최된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 ⓒ 김준 기자
16일 이태원 역 앞 도로에서 개최된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 ⓒ 김준 기자

유족의 6가지 요구사항은 ▲진정한 사과 ▲성역 없는, 엄격한, 철저한 책임규명 ▲피해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 및 책임규명 ▲참사 피해자의 소통 보장, 인도적 조치 등 적극적인 지원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한 입장 표명과 구체적 대책의 마련이다.

사회자의 말처럼, 이제 진정으로 추모하고 애도할 수 있는 자리가 사고 이후 49일만에 마련됐다. 우리의 애도는 함께 아파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자에 대한 온전한 지원, 그리고 안전한 사회를 이룰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사회자는 전했다.

한편, 49재 이틀 전인 14일에는 이태원거리가 시작되는 입구 근처에 합동 분향소가 마련됐다. 참사 발생 한 달을 훌쩍 넘긴 시점, 드디어 유족들의 동의를 얻은 희생자 76명의 명단과 사진, 생년월일 등이 적힌 영정과 추모 공간이 생긴 것이다. 해당 장소는 보수우파 유튜버가 한 달 동안 집회 신고를 해놓은 곳이기도 하다.

16일 이태원 역 앞 도로에서 개최된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 ⓒ 김준 기자
16일 이태원 역 앞 도로에서 개최된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 ⓒ 김준 기자

참사와 관련해, 시민들이 유족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15일 한 시민대책위 관계자는 “세월호참사와 비교했을 때,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갖는 차이점은 외로움인 것 같다. 느끼는 고립감과 외로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훨씬 큰 듯 보인다”라며 “내일 있을 49재에는 유족들에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지지와 연대의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49재 이후 유족 측은 예상보다 큰 참석과 응원을 받았다며 시민대책위에 감사의 인사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49재는 이승을 떠난 영혼이 49일간 세상에 머물다 떠남을 기리는 의례다. 다음 세상에서 좋은 곳에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비는 제례의식을 유족들은 마쳤다. 제대로된 진상 조사로 책임자를 규명하고, 이같은 참사를 막아내기 위해 계속해서 목소리를 모으고, 기억하기로 약속한, 시민사회의 몫이 남았다.

16일 이태원 역 앞 도로에서 개최된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 ⓒ 김준 기자
16일 이태원 역 앞 도로에서 개최된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 ⓒ 김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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