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직복직·체불임금지급·단체협약체결, 서면시장번영회지회의 600일 투쟁 이야기 ①

부산일반노조 서면시장번영회지회의 원직복직·체불임금지급·단체협약체결(노동조합인정) 투쟁이 12월 28일 현재 606일 차를 맞이했다.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허진희 조합원의 파업은 99일 차가 된다. 두 명의 조합원이 남아 싸우고 있는 서면시장번영회지회 최근 상황과 투쟁 과정을 나누고자 한다. <필자주>


‘오직 투쟁’이었던 굴곡 많았던 2022년

“오늘은 전국에 눈이 많이 왔습니다. 부산에는 날씨가 따뜻해서 비가 왔지만, 서면시장번영회 지회는 굴하지 않습니다. 동지들의 힘찬 박수와 함성으로 투쟁 문화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와아~~~”

12월 21일 저녁, 부산시 부산진구 부전동 서면시장 입구에서 서면시장번영회지회(민주노총 부산지역일반노조 소속) 2022년 마지막 문화제가 시작된다. 서면시장번영회지회 투쟁 599일 차이자 (허진희 조합원)파업 92일 차가 되는 날이다.

서울·경기·강원도 등 전국 많은 지역에 한파주의보와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날이었지만, 부산 과 경남·강원도 등에서 많은 이들이 문화제에 함께 하기 위해 왔다. 예상 인원 초과로 의자가 부족해 앞쪽에 깔개를 깔고 자리 재배치를 해야 했다. 문화 공연도 네 팀이나 참여한다. 노래패 ‘길위에’·박경화밴드가 부르는 <또다시 앞으로> 노래에 맞추어 허진희 씨(서면시장번영회지회 조합원)와 부산일반노조 청년위원회 조합원들로 구성된 깃발패 ‘노동해방’이 힘찬 깃발 춤을 추며 본격적인 문화제의 문을 연다.

사진1-12월 21일, 서면시장번영회지회 문화제에서 깃발춤을 추고 있는 깃발패 ‘노동해방’. 오른쪽 끝이 허진희 조합원 / 출처: 연정
사진1-12월 21일, 서면시장번영회지회 문화제에서 깃발춤을 추고 있는 깃발패 ‘노동해방’. 오른쪽 끝이 허진희 조합원 / 출처: 연정

“한 동지가 진희 동지는 술도 못 마시고 담배도 못 피우는데,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오늘처럼 투쟁가를 부르고 깃발 춤을 추며 스트레스를 날립니다.” (허진희 조합원)

진희 씨의 스트레스가 조금은 풀렸을지 모르겠다. 진희 씨는 올 한해가 ‘오직 투쟁’이었던 동시에 굴곡이 많은 한 해였다며, ‘삼재’가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진희 씨는 작년 봄 파업 이후 11월에 해고를 당했다가 올해 초에 복직을 했고, 9월에 다시 파업에 들어갔다. 지난 겨울에는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 부산 보험대리점 IFC 투쟁에 연대 투쟁을 갔다가 사측 직원의 폭력으로 머리와 목을 많이 다쳐 올해 초 까지 병원에 3주 동안 입원을 했다. 그리고 지난달에 또 한 번의 큰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 진희 씨는 문화제 사회를 보고, 깃발 춤도 추고 있다. 서면시장번영회지회 투쟁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기 위해서다. 연대투쟁을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이다. 노동조합을 처음 만들 때만 해도 9명이던 조합원은 사측의 회유와 협박으로 다 떠나고 이제 김태경 지회장과 허진희 조합원 두 명만 남았다. 지난해 5월 해고를 당한 김태경 지회장은 문화제 전체 진행을 챙기며 사진 촬영을 하느라 바쁘다. 김 지회장은 지난해 10월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복직 판정을 받았지만, 서면시장번영회 사측은 복직 이행을 거부하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사진2-12월 21일, 서면시장번영회지회 저녁 문화제에서 박수를 치며 함께 하고 있는 참석자들 / 출처: 연정
사진2-12월 21일, 서면시장번영회지회 저녁 문화제에서 박수를 치며 함께 하고 있는 참석자들 / 출처: 연정

 

우리가 그랬으면 바로 연행되었겠죠

최근에 진희 씨에게, 그리고 서면시장번영회지회에 큰 사건이 있었다. 서면시장번영회 회장(60대 남성)의 폭력 사건이다. 11월 15일, 보통 때처럼 서면시장 앞에서 중식 선전전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집회신고를 하고 집회를 하는 공간에 서면시장번영회 회장이 의자 등 물품을 가져다 놓았다. 지회에서 정보관을 통해 치우라는 요구를 하자, 회장이 욕을 하며 시비를 걸었다. 회장의 배우자는 반말 등 폭언을 하며 휴대폰으로 먼저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잠시 후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겠다 생각한 진희 씨는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휴대폰으로 동영상 촬영을 시작한다. 번영회 사측에서 먼저 욕을 해서 '왜 욕하시냐?'고 하면 '내가 언제 욕했냐? 녹음 했나? 증거 있나?' 한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날도 서면시장번영회 회장이 김태경 지회장에게 욕을 했다.

“씨XX..."

"지금 뭐라 하셨어요?”

회장은 이날도 '내가 언제 욕했나? 증거 있나?' 하는 말을 하기 전에 정말 증거가 없는지 확인이라도 하려했던 것이었을까? 회장은 갑자기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바로 옆에 정보과 형사가 있는데도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 큰 손으로 “씨X" 라고 욕을 하며 허진희 씨의 얼굴 정면을 후려친다. ‘퍽’ 하는 소리가 났다.

“아.. 으으윽...”

진희 씨가 울부짖고 김태경 지회장이 진희 씨에게 달려간다. 회장의 폭력으로 진희 씨의 마스크가 벗겨지고, 진희 씨의 얼굴에 부딪힌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졌다. 회장의 배우자가 “이게 미쳤나?” 하며 폭력을 계속 행사하려고 달려드는 회장을 막는다.

진희 씨는 안면 타박상과 함께 얼굴이 휴대폰에 부딪혀 치아가 손상되고, 입술은 터져서 피가 흘렀다. 안경을 쓰고 있어 실명 등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회장의 범행 현장을 모두 보았던 정보과 형사는 말리기만 할 뿐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다. 결국 김태경 지회장이 112에 신고를 했고, 잠시 후 부산 진경찰서에서 왔다.

"우리가 그랬으면 바로 현장에서 입건이 되고 연행이 되었겠죠. 그 회장은 가지도 않고 남아서 끝까지 우리한테 욕을 했어요. 경찰차가 오니까 빠져나가더라고요.“ (김태경 지회장)

진경찰서 소속 경찰들은 피해자인 허진희 씨의 피해 상태를 사진촬영 하고, 고소 접수를 했다.

“가해자는 어디에 있어요?”

“조금 전까지 여기 있다가 저쪽으로 갔어요.”

“그래요? 그럼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그게 끝이었다. 사건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경찰 한명은 다친 피해자를 챙기고, 나머지 경찰들은 경찰차를 타고 사이렌 소리를 내며 가해자를 쫒는 경찰은 드라마에만 있는 걸까? 부산 진경찰서 경찰들은 자신들이 도착하는 순간에 도주한 범인을 잡으러 가지 않았다. 심지어 바로 옆에 위치해있는 가해자가 운영하는 상점에도 가보지 않았다. 얼마 전 화물연대 파업 당시, 화물연대 조합원이 운행 중인 비조합원 화물차량에 쇠구슬을 쏘았다며, 즉각 CCTV를 확인하고 노동조합 사무실을 수색하는 등 신속하게 사건 진행을 하던 능동적인 부산 경찰은 어느 경찰서 소속인지 궁금해진다.

사진 찍은 것처럼 기억에 남아요

진희 씨는 바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얼굴 부위 상해 2주 진단과 치아와 잇몸 상해 진단이 나왔다. 한 달이 넘은 지금 타박상은 가라앉았지만, 치아와 잇몸 상태가 좋지 않아 치료는 계속 받아야 한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지난 겨울 상해 후유증 까지 겹치면서 몸이 많이 힘들다. 몸도 힘들지만, 마음의 고통도 만만치 않았던 시간이었다.

“살면서 얼굴 자체를 맞아본 적이 없어요. 부모님한테도 안 맞았는데, 그 사람이 뭔데... 너무 화가 나고 자존심도 상해요. 우리, 집회 신고 내고 하는 거잖아요. 내가 그 사람한테 뭘 잘못했다고... 그래도 7~8년 동안 얼굴을 보고 지냈는데, 어떻게 이렇게 할 수가 있을까? 안경 낀 상태에서 때린 거라 살인미수가 될 수도 있는 건데, 노동조합 관련된 게 아니었으면 잡아갔을지도 모르는데... 사측에 너무나 화가 납니다. 그리고 분하고 억울해요. 저 진짜 그 자리에서 죽고 싶었거든요. 어떻게 사장이 직원인 여성 노동자의 얼굴을 때릴 수가 있습니까. 그것도 자식 또래인 사람을... 노조가 있든 없든 직장이든 아니든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진희 씨는 잇몸이 많이 부은 데다 정신적인 고통 때문에 밥을 먹지도 못하면서 혼자 방에서 누워 꼬박 하루를 울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왜 자신을 축내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이렇게 살고 있나?’ ‘내가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불안 증세도 나타났다. 심리상담을 시작했지만, 결국은 진희 씨가 맞닥뜨려야 할 문제가 많았다.

“'더 강하게 달려들어야 한다. 투쟁을 잘 못해서 그렇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나는 내 나름대로의 투쟁 방법도 있는 거잖아요. 성격이 원래 여린 걸 어떻게 해요? 몸은 시간이 지나면 낫지만 마음의 상처는 뼈 속까지 남을 겁니다. (가해자의)그 표정하고 안 지워져요. 사진 찍은 것처럼 기억에 남아요. 그런 감정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사진: 11월 28일, 허진희 씨에게 폭력을 행사한 부산 서면시장번영회 회장 집 앞 집회 장면. / 출처: 비주류사진관 정남준 작가
사진: 11월 28일, 허진희 씨에게 폭력을 행사한 부산 서면시장번영회 회장 집 앞 집회 장면. / 출처: 비주류사진관 정남준 작가

 

그래도 멈출 수 없는 투쟁

동지들이 진희 씨 얼굴만 봐도 울먹거렸기 때문에 밖에서는 애써 담담한 척 해야 했다. 투쟁을 못하게 할까봐, 가족 등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도 힘들었다. 진희 씨의 가족들은 이 일을 모른다. 진희 씨가 얼굴 상처가 아물 때까지 가족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밤늦게 귀가하고 집에서 밥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폭력 사건 후 한 달이 지나도록 가해자인 서면시장번영회 회장은 단 한 마디의 형식적인 사과 조차 하지 않았다. 며칠은 피해 다니는 것 같더니 곧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서면시장을 활보했다. 가해자인 회장은 서면시장번영회지회 집회 장소에 나타나 오히려 노동자들을 비방하며 계속 시비를 걸고, 노동자들을 업무방해로 고소를 하겠다고 협박을 했다. 노동조합은 11월 말 가해자 회장이 산다는 58평 짜리 아파트 앞에서 많은 주민들의 관심 속에 집회를 하고 있다. 가해자의 동태를 이야기해 주고 가는 주민들도 있다고 한다. 12월 초, 가해자는 서면시장번영회 회장직을 사임했다.

“3주쯤 되니까 연락이 오는 거예요. 입건이 되서 검찰로 송치가 됐거든요. 그럼 경찰서에서 연락이 갈 거잖아요.” (김태경 지회장)

허진희 씨도 김태경 씨도 전화를 받지 않자, 회장은 ‘밥 한 끼 먹자’는 문자를 보냈다. 물론, 사과의 내용은 없다. 두 사람이 일체 반응을 보이지 않자, 번영회 측은 노동조합에 8월 이후 중단된 교섭요청 공문을 보냈다. 문화제 전 날인 12월 20일, 4개월 만에 10번 째 교섭이 열렸다.

“우리가 주요하게 요구하고 있는 원직복직이나 임금체불, 단체협약 체결은 소송 결과를 보고 하겠다고 해요. 회장 폭력 사건 때문에 교섭을 하자고 한거죠. 그리고 허진희가 시장에서 일하는데, 이런 일로 얼굴 붉히면 되겠냐고 좋게좋게 폭력 건을 합의하자고 하더라고요.” (김태경 지회장)

번영회 측은 폭력사건과 관련하여 노동조합에서 진행하고 있는 회장 집 앞 집회를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물론, 사과는 하지 않았다.

“저 사람들은 사과할 생각이 없어요. 체면보다 돈이 중요한 사람들이에요.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노사 문제를 풀려는 게 아니라 폭행사건이 검찰 송치가 되니까 처벌을 피하고 사건을 무마해서 처벌을 피하고 즈그들 죄를 덮으려는 거겠죠. 폭행죄는 물론이고, 집시법 위반, 파업 중인 여성노동자에게 폭력을 가한 부당노동행위까지 다 제대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허진희 조합원)

번영회 회장의 폭력 장면이 담긴 영상을 몇 번이나 봤다. 가해자의 욕설과 경찰 앞에서도 거침없이 진희 씨에게 가하던 폭력, ‘퍽’하던 소리, 진희 씨의 비명과 울부짖음... 볼 때마다 눈물이 났다. 이런 무섭고 힘든 일을 당하고 투쟁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는지 진희 씨에게 물었다. 어쩌면 물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투쟁을 멈출 수는 없어요. 나한테 이렇게까지 했다는 건 사측도 엄청난 타격을 입고 있다는 거 아입니까. 그래서 더 독하게 싸우자 싶어갖고 하루 정도 쉬고 다시 나가서 집회 하고 점심 선전전 하고 할 거 다 했어요. 그 괴로움은 지금도 생생하지만, 그건 내가 극복해야할 문제다 생각했죠. 오히려 투쟁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 혼자 싸우는 거 아니고 동지들하고 같이 싸우는 거니까 끝은 있겠죠.” (허진희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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