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톡의 노동자 마음건강
통통톡의 노동자 마음건강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질문이 들어왔다.

“내가 보기에는 그 사람이 확실하게 잘못했는데 인정을 안 해요. 그런 사람하고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공감을 합니까?”

이야기하는 질문자의 얼굴에 피곤이 묻어 있다. 마칠 시간에 쫓기고 있던 터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마음을 만나며 스트레스 풀어가는 참여형 프로그램이라 사람들 관계에서 해결 방법을 찾는 것과는 주제와 형식이 조금 다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지 않고 일반적인 것만 이야기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답을 시작하려는 데 다른 참여자들의 얼굴이 보였다. 다들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허투루 이야기했다가는 지금까지 진행한 프로그램이 다 무산될 위기였다. 마무리 잘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마음을 가다듬고 시간을 조금 더 써도 되겠는지 물어보았다. 시간이 촉박하니 빨리 끝내달라는 눈치와 함께 답을 잘하라는 압력이 느껴졌다.

조직 활동을 하다 보면 이런 일을 자주 겪는다. 조직 활동의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을 상대할 때 자주 일어나고 오래 활동한 분들과의 사이에서도 가끔 일어난다. 질문의 내용은 ‘어떻게 공감합니까?’이지만 이 질문은 사실 ‘어떻게 처리합니까?’를 묻는 것이다. 어떻게 해도 해결이 안 되니 해결을 위해 공감하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공감을 하면 혹시라도 해결이 될까 싶어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느낄 수 있었던 게 프로그램 도중에 자신이 공감하는 척하고 있음을 이미 고백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다른 참여자들도 이 질문 속으로 쑥 빨려 들어왔다. ‘휴, 나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게 아니구나’

“질문하신 분 지금 마음은 어떠신가요?”

“지금 제 마음이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물어볼 데가 있어서 기쁘네요.”

아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자의 마음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답답했던 것에 비하면 질문하면서 느낄 기쁨은 새 발의 피다. 이런 문제는 질문자의 마음에 따라 이 문제는 풀릴 수도 있고 안 풀릴 수도 있다. 상대는 이미 방어막을 치고 있는 상태라서 변화의 여지가 없다. 외부 환경이 갑자기 변하지 않는 한 그 방어막이 무너질 리 없다. 결국 질문자의 태도가 바뀌는 것 이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다행히 질문자는 프로그램이 끝나가는 시점에 그 질문을 하면서 변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우선 질문자의 지금 그런 노력을 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속으로만 생각하던 것을 진행자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시작이고 이미 반 이상은 성공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해결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게 잘 안 될 때에는 자신을 책망하거나 비난하기 쉽다. 그런 상태에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기회가 와도 못 알아차리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그건 이미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잘못을 인정 안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 인데 그 분 역시 자신의 실패 경험을 책망하거나 비난하고 있을 것이다. 둘 다 그러고 있으니 문제가 풀릴 턱이 없다. 질문자는 그 와중에 변화를 선택하고 있다.

질문자의 말투가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이게 시작이고 끝이다. 이후의 구체적인 방법은 질문자가 이미 알고 있는 것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만 남는다.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문제없다. 어떤 것도 100%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고, 모든 선택은 실패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힘들어지는 이유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폭력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그분도 OO님과 같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줄 수 있겠는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 지금 제가 너무 화가 나 있거든요. 그동안 그 사람이 나를 너무 힘들게 했어요.”

“그렇군요. 정말 실망이 컸나 보군요. 그럼 조금 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잠시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지금은 다른 조들과 프로그램을 같이 마쳐야 해 더 이야기하기가 어려워 그럽니다.”

전체 프로그램이 끝나고 질문자가 찾아와 다시 만났지만 더 이상 도움이 필요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화가 난 자신이 길이 막고 있는 걸 알아차린 눈치였다. 그걸 인정하기 쑥스러운지 주변의 동료들과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질문자를 뒤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행사장을 나왔다. 이제 저분은 새로 시작할 것이고 그 과정은 폭력보다는 공감에 가까운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제 반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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