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들, 한달간 순회 간담회
경비, 청소, 시설관리, 콜센터 택시노동자 72명이 전한 이야기
“생존을 넘어선 인간으로서 존엄 지키는 최저임금이 필요해”

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이 지난 한달간 저임금노동자와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 조연주 기자
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이 지난 한달간 저임금노동자와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 조연주 기자

2023년도 최저임금은 시간당 9,620원이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한달동안(월 209시간) 일하고, 여기서 세금을 빼면 182만 원이라는 돈이 손에 쥐어진다(세전 201만 원). 작년 기준 결혼하지 않은 1인가구가 한달동안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생계비는 241만원으로 조사됐다. 최저임금 노동자가 한 달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금받는 임금보다 59만원 가량이 더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는 이유다.

‘세상 물정 모르는’ 최저임금과 ‘월급빼고 다 오르는’ 현실 사이에서, 최저임금 당사자들은 어떠한 삶을 살고 있을까. 182만 원이니, 241만 원이니 하는 숫자만으로는 알 수 없는 저임금 노동자의 모습은 무엇일까. 2024년도 최저임금 논의가 본격화되는 시점,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필두로 한 민주노총의 최저임금 노동자위원들이 저임금 노동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 노동자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민주노총 간부들이 저임금노동자의 상황을 직접 만나고, 이같은 현실을 최저임금위원회의 사용자위원, 공익위원에게 알리기 위해 추진됐다. 민주노총 노동자위원은 5월 19일부터 6월 8일까지 민주노총 조합원인 경비·청소·시설관리 노동자, 콜센터 노동자, 택시 노동자를 만났다. 이들은 공공운수노조, 민주일반연맹, 사무금융노조 소속이다.

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이 지난 한달간 저임금노동자와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 조연주 기자
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이 지난 한달간 저임금노동자와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 조연주 기자
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이 지난 한달간 저임금노동자와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 조연주 기자
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이 지난 한달간 저임금노동자와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 조연주 기자

민주노총 노동자위원은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 72명에게 노동현장의 실태와 내년도 최저임금이 어느 수준까지 올라야 ‘먹고 살만할지’를 물었다. 좌담회에 참석한 모든 노동자가 “현재의 최저임금으로는 기본적인 생활도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대부분의 노동자들 내년도 최저임금은 최소 월 250만 원~월 300만 원 구간에서 결정돼야 한다고 했다. 월 250만 원(시간당 12,000원)은 노동계가 최초로 제시한 내년도 최저임금액과 동일한 수준이다.

1인가구 노동자들은 한달 벌어 한달 먹고 산다고 했고, 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2인 가구(이상)를 책임져야 하는 이들은 두달 벌어 한달 먹고 산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대출이 있는 경우, 급격히 치솟은 금리를 감당하기 위해 ‘마통(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다고 답한 경우도 드물지 않게 나왔다. 끊임없이 일하지만, 계속 빚을 지고 있는 구조인 것이다.

민주노총 노동자위원이 찾은 곳은 대표적인 주변화(비주류)된 노동의 현장이었다. 여성, 청년, 노년의 노동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보다 열악한 환경과 저임금의 현실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최저임금의 당사자는 훨씬 더 포괄적이다.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 등이 모여만든 운동본부의 이름이 ‘모두를 위한 최저임금’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2022년 4분기 월평균 소득을 살펴본 결과, 20%에 육박하는 가구가 월평균 소득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월 평균 소득 200만 원 미만)을 받고 있었고, 2021년 통합소득을 고소득자부터 저소득자까지 줄세웠을 때, 딱 중간에 있는(=중위값) 소득은 2,660만 원으로 조사됐다. 2021년 최저임금액이 연 2,187만 원 가량이고, 통합소득은 노동소득을 비롯한 임대·금융·연금·사업소득 등을 모두 합친 것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노동자의 상당수가 최저임금의 영향권 안에 들어온다는 해석이다.

간담회가 진행되는 내내 ‘이게 최저임금 간담회인지, 사회 전체분야 간담회인지 모르겠다’는 농담이 나올만큼, 최저임금의 문제는 사회 전반 구석구석에 걸쳐 작동하고 있었다. 저출생 현상부터 노인 빈곤의 문제까지, 간접고용과 중간착취부터 플랫폼 노동 등 비정형 노동자들의 의제, 나아가 시민의 생명안전 문제까지, 온갖 사회적 의제들이 간담회에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이 지난 한달간 저임금노동자와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 조연주 기자
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이 지난 한달간 저임금노동자와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 조연주 기자
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이 지난 한달간 저임금노동자와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 조연주 기자
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이 지난 한달간 저임금노동자와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 조연주 기자

노동자위원이 만난 저임금 노동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지금의 최저임금으로는 점점 더 ‘생계 유지’조차 어렵게 될 전망이다. 저임금으로 고착된 노동환경은 오래도록 개선되지 않은데다, 폭등하는 물가와 금리 등의 경제상황이 겹치다 보니 미래를 꿈꾸기는커녕 현재를 유지할 수도 없을만큼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얘기다.

단지 올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넘어 최저임금의 존재이유를 충분히 살릴 필요도 있다고 했다. ‘근로자의 생활안정’이라는 명시적인 최저임금법의 목적에도, 단순한 생존을 넘어 사람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존엄의 최저선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궁극적인 취지에 비춰봤을때도 현재의 최저임금은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콜센터 자본은 노동자의 기본급을 낮추고, 인센티브(성과급)을 높이며 상담 노동자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콜센터 상담 노동자들은 이정도 월급으로는 미래를 꿈꿀 수 없어 연애와 결혼을 포기했다고 대답했고, 결혼은 했지만 육아를 감당할 수 없어 일찌감치 아이를 포기했다고 답한 이들도 있었다.

저임금으로 생활하는 노년의 노동자들은 일을 멈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정년을 넘긴 나이에도 연금소득으로는 생활을 꾸리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는 노동시장에서의 입지가 좁아지기 때문에, 임금을 협상할 때 점점 더 위축돼간다는 얘기도 나왔다. 개인 노동자 또는 단위노조의 노력만으로는 돌파할 수 없는 상황이 점점 많아질텐데, 이럴 때 임금의 최저선을 그어주는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고 했다.

동시에 (여성)노년 노동자로 분류되는 아파트와 대학의 청소, 경비,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은 올랐는데 월급은 그대로인’ 현상을 우려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과 이른바 ‘시간꺾기(노동시간 줄이기)’ 등의 꼼수로 사측이 기본급을 낮춰, 사실상 임금을 동결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노조를 만들어 투쟁해 방어했지만, 내년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이 지난 한달간 저임금노동자와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 조연주 기자
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이 지난 한달간 저임금노동자와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 조연주 기자

택시노동자의 경우, 공세적으로 ‘최저임금 업종별 구분 적용’을 들고 나오는 택시업자들에 맞서고, 택시노동자의 최저임금 현실화 쟁취를 위해 고용노동부 세종청사 앞에 천막을 펼쳤다. 사측(사용자위원)이 주장하는 논리가 얼마나 현실과 괴리된 것인지 알리기 위해서다. 법으로는 폐지된 사납금제가 여전히 횡행하고, 그로인해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좀 그런 말일 수도 있는데, 이제야 손님이 사람으로 보인다더라고요. 월급이 보장되니까 위험주행을 할 필요가 없는거에요” 택시노동자의 주장은 시민, 교통의 안전문제와도 직결된다. 극히 일부지만 택시노동자가 요구하는 완전월급제를 실시중인 사업장이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증언은, 최저임금의 필요성을 다시금 설명한다.

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이 지난 한달간 저임금노동자와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 조연주 기자
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이 지난 한달간 저임금노동자와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 조연주 기자

“월급 가지고 적금 하나 넣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생존 임금이기 때문이거든요. 20~30대 친구들이 미래의 희망을 꿈꾸지 않습니다. ‘언니, 나는 결혼하지 않을 거고 아이를 낳을 꿈도 꾸지 않을 거에요’라고 말해요. 근데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겁니다. 대학 졸업하는 우리 아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거에요.” -콜센터 상담노동자

“(한달 생활비 지출을 묻는 질문에) 부끄럽지만 가계부 쓸 돈이 없어요. 쓸 필요가 없어. 공부하는 딸아이랑 최대한 아껴서 한 달 살아야 딱 맞아요. 우리같은 서민들이 돈주고 애용할 수 있는 식당들이 거의 다 사라지는 마당에, 노후를 준비할 돈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학 시설관리 노동자

“이렇게 벌어선 어디 하나 아프기 전까지는 계속 일만해야 할 것 같아요. 이제는 좀 쉬고 싶은데, 조금 덜 일해도 더 벌면 좋겠어요. 우리는 노동조합이 있지만, 노조가입 안하시고 정년이 다가오는 어르신(대학 경비노동자)들은 계약을 다시 할 때마다 조금씩 목소리가 작아지는 게 현실이에요.” -대학 청소노동자

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이 지난 한달간 저임금노동자와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 조연주 기자
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이 지난 한달간 저임금노동자와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 조연주 기자

“(임금) 오르는 것도 좋은데 꼼수 못 부리게 하는 것도 문제야. 실제 우리 근무시간은 8시간인데 지금도 현재 7시간으로 돼 있거든요. 우리가 저번에 노조를 만들고 데모를 해가지고 다시 되찾긴 했는데, 아무튼 앞으로도 그렇게 되면 안된다는 얘기지. 최저임금위원회에 그것도 같이 얘길 해주세요.” -아파트 경비노동자

“택시운전 병폐의 원인인 사납금제가 역사속으로 사라질 줄 알았습니다. 제대로 된 최저임금이라도 월급으로 받을줄 알았지만, 현재도 택시현장에서는 시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묘히 법을 준수하는 것처럼 하고서 여전히 사납금제가 살아있습니다. 대부분 고령인 택시노동자들은 기간제·촉탁으로 고용불안에 모든 권리를 포기해야만 합니다.”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가 최저임금위원회에 보낸 편지 중 일부.

이들은 공통적으로, “그래도 우리는 노동조합이 있으니까”라고 한목소리로 얘기했다. 노동조합이 없고 노동자가 개개인으로만 존재하는 최저임금 사업장에서는, 임금인상이나 처우개선을 위해 따지고 싸워볼 기회조차 없을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누구는 ‘우리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누구는 노조가 없었을 때의 고단함을 떠올리면서, 민주노총에 미조직 노동자들의 유일한 사회적 임금협상 테이블인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이 지난 한달간 저임금노동자와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 조연주 기자
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이 지난 한달간 저임금노동자와의 간담회를 개최했다. ⓒ 조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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