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임시국회서 통과를 앞두고 있던 노조법23조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기로 지난 21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급작스럽게 합의하면서, 노동계에서는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일터와 삶을 지켜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를 무시했다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와 민주노총, 한국노총이 주최한 노조법 2·3조 개정 처리 지연하는 국회 규탄 및 노조법 개정안 8월 임시국회 처리 촉구 공동 기자회견이 22일 오전 9시 20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렸다.

원청의 사용자성을 확대하고, 파업에 따른 손배가압류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긴 이른바 ‘노란봉투법’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지난 6월 30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됐다. 개정안은 오는 8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를 앞두고 있었고, 이에 따른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시사가 사실상 확정된 상황이었다.

국민의힘은 노조법 2·3조 개정안 본회의 상정을 거부하며 본회의 일정 합의를 거부했고, 더불어민주당은 결국 민생법안 처리가 시급하다는 이유로 여당과 합의하며 8월 임시국회에서 개정안을 처리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를 두고 국회 본회의에 상정 자체를 반대하며 국회의 입법논의를 막고 있는 국민의힘과 개정안 즉시처리 의지를 스스로 꺾으며 차일피일 법안 통과를 미루고 있는 민주당의 행태는 입법자로서의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라는 노동계의 분노가 계속되고 있다.

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맡고있는 조영선 변호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은 “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손배 가압류는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갔나. 미래세대에게 또 다시 손배가압류에 무릎 꿇리고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할 것인가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죽어야 바뀐단 말인가”고 한 뒤 “법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해결사여야 한다. 그러려고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자임한 것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갈등을 풀기 위해 비로소 존재 가치를 가지는 것” 국회에 호통을 쳤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를 “국회는 윤석열 정권의 협박에 굴복했다. 법이 통과되기도 전에 거부권 행사를 운운했던 삼권분립을 부정하는 정권에 굴복하는 야합”이라고 비난하며 “법이 통과되기도 전에 거부하겠다는 대통령과 무슨 논의가 더 필요하단 말이냐, 국민의힘과 노조법 2‧3조를 협의할 수 있다고 믿는 민주당은 우매한 것이냐, 외면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양 위원장은 “국민들이 민주당에게 과반이 넘는 의석을 몰아주었음에도, 권한이 없어서 국민의힘이 반대해서, 정부가 방해해서 못하겠다는 핑계를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라고 규탄한 뒤 “이제 그 책임의 주체는 철저히 민주당에게 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음에도, 스스로 하겠다 약속했음에도 이것을 파기했다. 국회가 노동자들의 요구를 외면한다면 국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스스로가 가진 입법권을 스스로 내려놓겠다면 더더욱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진보정당 국회의원들도 발언에 나섰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노란봉투법을 반대하는 논거들은 설득력을 잃었다. 이 법안에는, 파업을 조장하거나 불법을 용인하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최초 발의된 모든 법안에 비해서는 대단히 절제된, 최소한의 것만을 담은, 국회가 너무도 늦게 내놓은 반성문”이라고 했고, 강성희 진보당 의원은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지 않는다면 9월인가, 10월인가, 아니면 11월인가”라며 “이렇게 간다면 야당이 국회에 존재하는 의미는 없다. 야당의 후퇴는 노동자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임을 명심하라”고 했다.

70년간 바뀌지 않은 노조법2.3조로 인한 피해를 보고 있는 노동자 당사자인 이하나 조합원도 마이크를 들었다.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해고 상담노동자인 이하나 조합원은 공공운수노조 더불어사는희망연대본부 소속이다.

통합콜센터에서 근무하다 용역업체 변경 과정에서 해고돼 원직복직을 위해 8개월째 해고복직 투쟁 중인 상담노동자인 이하나 조합원은 “우리의 생사여탈권을 일면식도 없던 효성ITX에게 넘겨버리는 계약을 한 것은 원청인 저축은행중앙회다. 노조법 2‧3조가 개정되지 않는다면 수많은 노동자들은 뼈 빠지게 일한 나의 일터를 ‘우리 회사’라 부를 수 없다”면서 “원하청 착취구조로 비정규직이 만연한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법의 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외쳤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진짜 사장이 책임을 회피하고, 손해배상으로 노조를 무력화하는데 국회는 계속 방관해왔다. 그동안 수많은 노동자들이 단식을 하고 고공에 올라가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세월이 벌써 20년이다. 국회는 얼마나 더 노동자들의 권리침해를 방치하려 하는가”라고 분노했다.

더해 국민의힘에는“비정규직을 만들어서 온갖 권한은 누리면서 사용자로서의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하는 재벌대기업의 무책임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 아닌가. 국민의힘의 억지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은 ‘민생’을 핑계 대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빼앗긴 임금 30%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470억 원의 손해배상을 당하는 세상이다. 부당하게 해고당한 저축은행중앙회 콜센터 노동자가 원청과 하청의 책임을 물으며 10여일이 넘도록 단식을 해야 하는 세상이다. 이것이 민생이 아니고 무엇인가. 민생 핑계를 대고 있지만, 실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노조법 개정안을 이용하는 것 아닌가” 꼬집었다.

끝으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그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울 것이다. 그러니 국회는 더 이상 핑계 대지 말고 지금 당장, 국회가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