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톡의 노동자 마음건강
통통톡의 노동자 마음건강

마음돌봄 프로그램할 때마다 참여자인 노동자들에게 “일”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한다. 얼마 전 만난 한 사업장의 노동자에게 ‘일하는 동안 언제가 행복한가?’ 물었다. “직장에 돈 벌러 오는 거지 행복 하려고 오는 게 아니잖아요!”, 맞다. 우리 사회에서 일은 노동자에게 생계비를 벌 수 있는 유일무이한 수단이다. 하기 싫어도, 내가 원하는 게 아니어도, 심지어 폭력에 가까운 대접을 받아도 참고 일한다. 그래서 직장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아닐 수 있다. 직장인 우울증이라는 말도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질서와 규율, 위계가 있는 ‘직장’을 걷어낸 뒤 “일” 자체를 본다면 어떨까? 망치질로 굽은 것을 펴고, 모양을 만들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것, 서로 다른 공정에서 하나하나 조립하며 만들어지는 자동차, 침대에 누워 투병하는 누군가의 기저귀를 가는 일 등 그 어느 일 하나 헛된 것이 없다.

며칠 전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을 모시고 진행한 4주 동안의 마음 돌봄 프로그램을 마쳤다. 서로 알았던 분들도 계셨지만 대부분은 처음 만나는 분들이다. 모이자마자 선생님들의 대화로 강의실이 들썩인다. 묻고 싶은 것도 많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넘쳐난다. 밝게 웃으며 이야기하시는 선생님들을 보며, 고되디고된 ‘요양보호사(장기요양요원)’라는 일이 이분들에게 어떤 의미일지 궁금해진다.

간단한 그림으로 현재의 스트레스 수준을 알 수 있는 ‘빗속의 사람’ 그림을 그렸다.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용해 왔는데, 하는 일에 따라, 직업마다, 그 조직의 문화에 따라 조금씩 특징들이 나타나곤 한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은 아주 간단한 그림임에도 정성을 들여 그려나갔다.

그림  요양보호사 마음돌봄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그린 “빗속의 사람” 그림
그림 요양보호사 마음돌봄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그린 “빗속의 사람” 그림

그림이 밝다. 주인공들은 삶이 그럭저럭 괜찮다고 말한다. 일하는 동안의 스트레스나 어려움도 자신의 내면을 침범하지는 않는다며 당당히 맞선다. “그래서 좋은 것 만 있으세요?”라고 묻는다. 하나같이 “그럴 리가 있나?” 하신다.

여성으로 남성 수급자를 돌보는 일의 어려움, 하지 않아도 되는 업무를 강제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여기저기 이동해야 하는데 한 푼도 지급되지 않는 교통비, 지급되지 않거나 지급기준을 알 수도 없는 근속장려금과 처우 개선비, 듣도 보도 못한 욕을 듣는 일, 가정부 취급하는 보호자들, 요양원의 다른 전문직들이 부르는 ‘아줌마’라는 호칭, 뼈마디가 쑤시고 아파도 어디에서도 지원받을 수 없는 상황….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사례가 터져 나온다.

한 분 한 분이 겪은 일들을 이야기할 때마다 다른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숨을 쉬기도 하고, ‘아휴~힘들었겠어’라며 그 상황으로 함께 들어간다. 최근에 힘든 일을 겪으신 한 참가자 분이 고개를 숙인 채 프로그램 참여를 잘 못하자, 옆의 참가자분이 어깨를 다독이며 ‘지금 안해도 돼요. 그냥 같이 있다 가요.’라며 위로한다. 선입견일 수도 있으나 이분들이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가, 그 일이 의미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느껴진다. 사람들을 돌보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따뜻하게 위로하는 값진 일이 값진 일임을 온몸으로 알고 계신다.

[그림 ] 요양보호사 마음돌봄 프로그램 참가자의 “6조각 꿈 이야기” 그림
[그림 ] 요양보호사 마음돌봄 프로그램 참가자의 “6조각 꿈 이야기” 그림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선생님들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 분이 ‘나는 이후에 25평 실버 아파트에 살며, 산과 바다로 여행가는 게 꿈이야. 나는 혼자라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책 읽고 공부하는 게 내 마음에 도움이 돼. 내 꿈에 방해되는 게 있다면 침침 해지는 눈과 삐걱거리는 다리지. 병원에서 그때그때 치료받아야 꿈에 가까워지겠지. 그리고 내 이야기의 결론은 홀로서는 존경스런 할매가 되는 거야’라고 이야기 해주신다. 그래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이 일이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하신다.

일 자체가 행복의 한 과정이 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좋은 일이다. 보람도 있고 자부심도 만들며, 스트레스도 적을 수 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과 함께하며 일이 고돼서 생기는 고통보다 그 일에 대한 사회적 저평가, 여성 노동에 대한 시선과 태도, 조직의 불합리한 처사와 대우로 인한 고통이 더 크다고 느껴진다. 노동자의 일이 행복과 전혀 무관한 것으로 치부되는 건, 그래서 행복을 추구할 뿐 현재 이 순간 행복을 누릴 수 없는 건, 일의 의미를 축소시키려는 외부의 의도에 있다.

프로그램을 마치며, 이렇게 인사드렸다. “선생님들, 저희는 노동자 마음건강을 돌보는 일을 합니다. 그렇지만 선생님들은 수급자 분들의 몸, 마음, 일상, 그리고 영면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돌보시는 분들입니다. 저희가 하는 일에 비하면, 참으로 많은 애를 쓰시는 분들입니다. 선생님들의 이 가치로운 일이 정당하게 평가받고 전문가로서의 대우를 받는 날이 곧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미래의 행복이 아니라 매 순간순간이 행복의 과정이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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