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뚜벅이 청와대 도착..."끝까지 웃으면서 함께 투쟁"

노동과세계 송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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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은 걷는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430킬로미터, 천리가 넘는 길을 34일동안 한걸음씩 걸었다. 김진숙은 걷는다. 1986년 검은 보자기 덮어쓰고 공장밖으로 끌려나오던 그날부터 35년이 지난 오늘까지 공장으로 돌아가는 길을 한걸음씩 걸었다. 김진숙이 걷는 길에는 어느새 하나, 둘 사람이 모여들었다. 서울로 향하는 걸음에도, 공장으로 돌아가는 걸음에도 모여든 사람들에게 김진숙은 “끝까지, 웃으면서, 함께 투쟁”하자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희망뚜벅이 행진이 목적지인 청와대에 도착했다. 지난해 12월 30일 부산을 출발한 김진숙 지도위원은 34일을 걸어 청와대에 도착했다.

출발 당시 김진숙 지도위원과 황이라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미조직부장, 차해도 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 등 3명으로 시작한 ‘희망뚜벅이’는 서울로 향하는동안 점차 늘어 서울로 진입한 2월 6일에는 500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길을 걸었고, 마지막 날인 7일에는 1천여 명의 뚜벅이들이 함께 했다.

노동과세계 백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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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걸음에는 특히 해고노동자들이 함께 길을 걸어 그 의미를 더했다. 대우버스, 한국게이츠, 코레일네트웍스, 아시아나케이오, LG트윈타워, 아사히글라스, 서진이앤지 해고노동자들이 김진숙 지도위원과 함께 청와대로 향했다.

행진단의 걸음마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뚜벅이들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나타났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을 바라는 피켓을 들고 길 곳곳에 선 이들이 김진숙 지도위원의 이름을 연호하거나 복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육교 위에 올라 행진단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트럼펫을 연주하거나 지칠 때 쯤이면 나타나 물과 간식을 나눠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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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일차 행진은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서 출발했다. 행진단은 한강대교를 건너 용산구 소재 한진중공업 본사 앞에 도착했다. 한진중공업 본사 앞에는 한진중공업 지회 조합원들이 행진단을 맞이했다. 행진단은 준비해온 종이 배를 한진중공업 본사 앞에 던지며 김진숙 지도위원의 조속한 복직을 촉구했다. 행진단은 이어 서울역과 광화문 일대를 지나 청와대 앞으로 속속 집결했다.

청와대에 도착한 김진숙 지도위원과 행진단은 지난 해 12월 22일부터 김진숙 복직과 해고 금지를 요구하며 청와대 앞 농성장에서 48일 째 무기한 노숙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리멤버 희망버스 단식단’을 만났다. 김우(48일) 정홍형(48일) 송경동(47일) 성미선(40일) 서영섭(36일) 한경아(14일) 박승렬(10일) 7명의 단식은 도합 246일에 이른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만난 후 단식단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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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지도위원은 이후 진행한 약식집회에서 “해고당한 36년동안 나는 자본과 정권에게만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함께 싸워왔던 당신이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후에도 여전히 해고자인 내가 보이느냐”고 물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이어 해고당한 노동자들,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 비닐하우스에서 얼어죽는 이주노동자들을 일일이 언급하며 “박창수, 김주익을 변론했던 노동인권 변호사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굶고 해고되고 싸워야 하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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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건 단식과 희망뚜벅이 행진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은 요원해 보인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경사노위 문성현 위원장,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김진숙 복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지난해부터 마지막 교섭이 열린 2월 5일까지 ‘부당해고 사과, 복직, 해고기간 임금지급’ 요구에 대해 ‘재입사 후 명예퇴직, 위로금 8천만 원’이라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2009년 11월2일 해고 등이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고 회사에 복직을 권고했고, 2020년 9월에도 다시 복직을 권고했지만 사측은 이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온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김진숙의 복직은 김진숙 개인의 복직의 의미를 넘어 한국사회가 노동과 노동자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가르는 시금석과 같은 것이라며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촉구하고 있지만 한진중공업 자본은 물론 정부와 여당도 이에 반응하지 않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노동조합이 사실상 금지됐던 시절에 해고된 사람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그나마 직장이 남아 있는 내가 꼭 복직해야 한다”며 자신의 복직이 지닌 사회적 의미를 설명하기도 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을 두고 열리는 교섭은 8일 이후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한진 사측은 재입사와 위로금 지급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과거 김지도위원이 낸 해고무효 소송이 기각돼 지금에서 복직을 인정하면 ‘업무상 배임’이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과거 쌍용차, KTX, 콜텍 등에서 고용관계 소송에서 패소한 노동자들의 복직이 인정된 사례가 있는데다 이 사례들에서 배임혐의가 적용되지 않아 복직을 미루려는 사측의 핑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측이 제시한 위로금 역시 사측이 아닌 임원들이 사비를 모은 것으로 회사에 어떤 형태로든 해고의 책임을 지우지 않겠다는 꼼수로 풀이된다.

회사의 꼼수와 정부의 모르쇠가 유지되고 있지만 김진숙 지도위원의 ‘뚜벅이’는 계속될 전망이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앞으로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 할지 모를 우리들이지만, 포기하지도 쓰러지지도 말자”며 다시 한 번 “끝까지 웃으면서 함께 투쟁”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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