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 파업 29일··· 농성 25일차

(문화연대 신유아 활동가 제공)
(문화연대 신유아 활동가 제공)

새벽부터 부지런하다. 해가 채 뜨기도 전에 경찰버스를 나란히 길가에 세워 주차한다. 차곡차곡 쌓인 펜스를 하나 둘 내려 놓는다.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농성장을 둘러싸는 경찰들의 모습이다.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원주 본사 농성장의 25번째 아침은 그렇게 밝아왔다.

9시 정각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 도로를 막아선다. 길이 막히니, 당장 급한 것은 화장실이다. 결국 경찰은 한사람씩만 드나들 수 있는 좁은 틈만 허락했다. 무리지어 나갔다가 경찰이 길을 막기라도 하면 안되니, 화장실도 두 세명 씩 나눠가야 한다. 혹시 모르니 밥도 농성장 앞에서 뿔뿔이 흩어져 먹는다.

곡기를 끊은지 꼬박 일주일이 된 이은영 수석부지부장은 연신 자기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빠르게 수척해진다는 같은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오전에는 공단과 노조 간 교섭이 있었다지만, 다음 교섭 날짜를 잡은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 조연주 기자 

오후에는 서울서 온 가톨릭 신부와 수녀들이 농성장을 찾았다. 펜스로 빽빽하게 두르긴 했어도, 설마 종교인들인데 못 들어오게 막겠냐는 조합원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경찰은 이들의 진입을 틀어막았다. 결국 조합원들이 펜스 앞까지 마중을 나왔다. 펜스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눠 앉는 웃지 못할 광경이 벌어졌다.

펜스 앞뒤로 둘러 앉으니 어쩐지 감옥 철장 같기도 하고, 철조망으로 된 분단선 같기도 하고, 동물원 우리 같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를 가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때마침 하루 중 가장 뜨겁다는 오후 2시가 가까워오니 햇볕은 자비 없이 내리쬔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는다. 햇볕은 양산으로 가리면 된다. 번쩍 일어서면 허리까지 오는 펜스는 더 이상 우리의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종교는 다르지만 모두는 그순간 같은 마음으로 기도한다.

박상훈 천주교남자수도회정의평화분과 신부는 “문재인 정부의 시간이 가면 갈수록 노동존중과, 함께 가야 할 사람들에 배려가 완전 ‘빵점’이다. 미약한 힘이지만, 이럴때일수록 함께하겠다”는 말을 남겼고, 톨게이트 투쟁, 밀양 송전탑 투쟁에도 함께했던 조진선 성가소녀비회 수녀회 수녀는 “그 어느 투쟁 현장에도 여성은 끝까지 남았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써는 게 남자라고 하던데, 여자는 칼을 들었으면 적의 심장에 칼을 꽂을 때까지 쥐고있다. 우리 동지들이 직고용 이뤄내는 그날까지 연대하겠다”고 약속했다.

ⓒ 조연주 기자 

뜨개질로, 독서로, 이런저런 수다들로.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같은 농성장의 시간은 흐른다. 식사 시간을 빼면 지독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만큼 마스크를 꼭 쓰고 있다. 천막은 T자 모양으로 설치돼 지회별로 나눠쓴다. 경인에서, 대구에서, 전국 곳곳에서 모인 탓에 처음엔 다소 서먹했던 조합원끼리도 이제는 어색하지 않게 인사를 건낸다. 원주지역지부에서 힘 내라고 보내온 한 보따리 복숭아도 하나씩 먹다보면 어느새 해가 저문다.

예정됐던 문화의 밤에 음향장비도 민중 노래패 ‘꽃다지’도 오늘은 울타리에 막혀 오지 못했다. 그 무대를 채우는건 오롯이 조합원의 몫이다. 경인지회 몸짓패 ‘와신상담’의 춤과, 연대발언이 이어졌다.

ⓒ 조연주 기자 

매일 저녁 7시면 단식중인 이은영 수석부지부장 앞으로 편지가 배달된다. 오늘 편지를 보내온 이는 이 수석의 남편이다. ‘푹푹 찌는 날씨에 고생하는 당신을 생각하면 내 마음이 너무나도 찢어지지만, 내가 끝까지 믿어주는게 답이겠다 생각한다’는, ‘당신의 뒤에는 내가 든든히 버티고 있으니 후회남기지 않도록, 나중에 어느 누구에게도 당당할 수 있도록 응원하겠다’는 남편의 편지에, 늘 소나무같던 이 수석도 끝내 눈물을 보인다.

이제는 익숙한 놀림으로 모기장을 치고 침낭을 깐다. 이놈의 코로나도, 날씨도 내 편이 아닌 것 같을 때, 내일 있을 결의대회는 잘 마칠 수 있을까 걱정이 밀려올 때, 의지할 곳은 결국 옆에 있는 동지의 어깨뿐이다. 오늘도 하루가 끝났다. 영남대의료원으로 복직한 박문진 조합원의 발언 한 구절이 귓가에 맴돈다.

근로자에서 노동자로,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평범한 사회인에서 투사로 거듭 태어나고 성장하는 동지들의 파업투쟁은 ‘인간선언’입니다


 

(문화연대 신유아 활동가 제공)
(문화연대 신유아 활동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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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대 신유아 활동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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