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의 청년 비정규노동]
[김기홍의 청년 비정규노동]

해고를 당한 노동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고, 노동위 심문회의 결과 부당해고로 인정되면 노동위는 회사에 해고노동자의 원직복직을 명령한다. ‘원직복직’이란 해고 이전에 수행했던 동일한 직무에 복직시키는 것을 의미하며, 노동자의 동의를 얻거나 같은 직급이나 직무가 없는 등 불가피한 경우에는 유사한 직급이나 직무를 부여할 수 있다. 노동위의 구제명령을 이행하지 아니한 사용자는 3천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내도록 강제하고 있다(근로기준법 제33조 제1항).

이렇게 사용자의 부당한 해고를 제한하면서, 노동자의 지위 회복을 노동위 구제명령과 이행강제금을 통해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무력화하는 행위가 경남CBS에서 일어났다. 경남지방노동위와 중앙노동위 모두 부당해고로 판정하고 원직복직명령을 내렸지만, CBS는 원직복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는 꼼수를 부려 반쪽짜리 복직명령을 했다. 겉옷만 프리랜서라는 옷을 입고 일했던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를 원직복직 시키랬더니, 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프리랜서로 다시 복직시키고 이제는 알맹이까지 철저하게 프리랜서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백화점이라고 불리는 방송국에서 일어난 위장 프리랜서 해고사건이라 크게 놀라지도 않았고, 최근 경향에 따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되고 부당해고로 판정되었지만, 사측의 대응은 신박했다. 복직명령을 받고 출근을 했더니 고정 좌석과 컴퓨터를 없앴고, 근로계약서 작성조차 거부했다.

또한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지 않으니, 휴가를 가려면 알아서 대체자를 구하고 가라했으며, 직접적인 업무지시를 하지 않기 위해 전용 서류함을 만들어 문서로만 업무관련 내용을 전달받았다. 심지어 CBS직원들은 오전에 예배를 해야하는데, 예배에 참석했더니 직원으로서의 참석이 아닌 자발적 참석이라는 확인각서를 쓰라고 강요받았다. 대법원이 판단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하는 징표들을 하나씩 모두 없애고 있는 것이다.

(2022.11.10. CBS의 꼼수 원직복직을 규탄하는 본사 앞 기자회견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형식적인 프리랜서 계약만 했을 뿐, 7년 넘게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정규직보다 더 많이 하면서 ‘CBS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회사에 다녔고, 사측의 일방적인 계약해지 통보에도 금전보상이 아닌 원직복직을 목적으로 싸워 끝내 제자리로 돌아온 노동자를 대하는 회사의 모습은 매우 비상식적이고 잔인했다.

‘부당해고’라는 의미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임을 전제로 하는 판정(해고처분은 근로계약 관계를 전제로 발생한다)이고, 그렇다면 부당해고에 대한 ‘구제명령’ 역시 당연히 사용자에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임을 전제로 명령을 이행하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CBS는 아무렇지 않게 프리랜서로 복직시켰고, 노동위는 ‘원직’으로 복직시켰으니 구제명령을 이행했다고 보았다. 뻔뻔한 CBS도 문제지만 이를 두고 문제없다고 판단한 노동위는 더 문제다.

엎친 데 덮친 격 얼마 전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김태기 교수가 임명되었다.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었고 당시 면제한도기준을 날치기 통과시키고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의 노동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던 사람이다. 노동분쟁 해결의 중심에 있는 노동위원회의 공정성과 중립성에도 깊은 우려가 된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번 사건은 청년여성 비정규직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2020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조사를 살펴보면, 공공부문 방송사 프리랜서 10명 중 7명은 여성이고, 20~30대 여성이 약 75%를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여성만 프리랜서로 활용되는 직무가 16개나 되고 남성이 다수인 직무보다 임금은 두 배 이상 적었다. 단순히 비정규직의 고용불안 문제가 아닌 방송업계의 성차별적인 관점에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좁은 방송계에서 다시는 방송일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한 명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힘든 싸움들 끝에 결국 직장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이제야 그 목소리가 많은 방송비정규직들에게 전달되는가 싶다. 이들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법을 피해가려는 회사의 꼼수와 노동위의 행태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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