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해고 인정’ 경남 CBS 최태경 아나운서 인터뷰
중노위 ‘원직복직 명령’에 ‘프리랜서 복직’시킨 CBS
‘책상 빼고, 한마디 섞지말라’ 조직적 직장 괴롭힘
“CBS, 스스로 쌓아올린 언론사로서 신뢰 잃는 것”

우리가 현행법에 따라 기간제 노동자로 입사해, 2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를 정규직이라고 부른다면, 최태경 아나운서는 CBS의 정규직이다. 경남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최태경 아나운서와 경남CBS의 부당해고 판결에서,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하다가 해고된 최태경 아나운서를 ‘기간에 정함이 없는 근로자’라고 판정했다.

노동위원회의 결과를 받아든 CBS는 이상한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최태경 아나운서를 ‘프리랜서’로 ‘원직복직’ 시키면서 원직복직 시키긴 했으니 노동위원회의 명령을 이행했다는 것이다. CBS는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에도 나섰다. 한편, 중노위와 지노위는 사측이 ‘원직복직’을 시켰으니 명령을 이행한 것이라고 본다며 뒷짐을 지고 있는 모양새다.

경남지방노동위원회 판정서. 경남2022부해109 재단법인 씨비에스 부당해고 구제신청
경남지방노동위원회 판정서. 경남2022부해109 재단법인 씨비에스 부당해고 구제신청

이미 방송국은 ‘비정규직의 백화점’이라는 오명을 얻은 지 오래다. 방송국의 여러 직군에서 노동자성 인정을 위한 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최태경 아나운서는 귀한 승리를 얻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아나운서는 사측의 고집에 새로운 형태의 부당노동행위에 시달리고 있다.

‘프리랜서로 원직복직 시켰으니 문제없다’는 CBS의 궤변이 받아들여지게 되면, 지금 투쟁중인 방송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력과 투쟁은 크게 후퇴될 것 이라고 우려했다. ‘노동위의 정규직 판정이 무력해지는 최악의 선례를 남겨선 안된다.’ 최 아나운서가 본격적인 싸움에 나선 이유다.

(관련기사▶[김기홍의 청년 비정규노동] 원직복직의 새로운 패러다임)

CBS는 이미 언론노조 CBS지부와의 단협에서 ‘비정규직 채용의 제한’ 조항을 두고 있기도 하다. PD, 기자, 엔지니어, 아나운서, 카메라 기자 및 감독, 특수편집, 사무업무 직종 등 일반직군에 해당하는 업무에는 비정규직을 채용해서는 안되며, 정규직의 업무를 비정규직 노동자로 대체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다.

최태경 아나운서가 복직한 뒤 경남 CBS는 최 아나운서의 고정석을 '프리랜서 공용석'으로 둔갑시켰다.  
최태경 아나운서가 복직한 뒤 경남 CBS는 최 아나운서의 고정석을 '프리랜서 공용석'으로 둔갑시켰다.  
최태경 아나운서가 복직한 뒤 경남 CBS는 최 아나운서의 고정석을 '프리랜서 공용석'으로 둔갑시켰다. 추후 노동자성 인정을 피하기 위해 업무 지시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최태경 아나운서가 복직한 뒤 경남 CBS는 최 아나운서의 고정석을 '프리랜서 공용석'으로 둔갑시켰다. 추후 노동자성 인정을 피하기 위해 업무 지시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꼼수 원직복직’ 첫 날부터 회사의 괴롭힘은 시작됐다. 최태경 아나운서가 항상 앉아서 업무를 보던 전용석은 ‘프리랜서 공용석’으로 바뀌어있었고, 회사 컴퓨터는 사라졌다. 직접 노트북을 들고와 업무를 봐야 했다. 사측은 프리랜서와 근로계약서(노동계약서)할 필요가 없다며 계약서 작성을 거부중이다. 업무시간은 단축됐다. 정규직이 아니니, 6시까지는 회사에 남아있지 말라는 이유에서다. 그래도 남아있겠다면 본인의 자발적인 의지 때문이라는 각서에 서명해야 한다고 했다. 

업무 지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사측의 노력도 시작됐다. 근로자성으로 인정받는 징표를 없애기 위해서다. 이전에는 메신저를 통해 방송 원고 수정이 이뤄졌지만, 이제는 서류함에 프린트 된 종이로 방송 원고 자료를 전달하는 식이다.

서울 본사에서는 경남CBS 직원들에게 ’최태경과 말 한 마디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직원 동료들은 이전과 다르게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화도 하지 않는다. 최태경 아나운서를 설명하는 CBS 홈페이지에서는 ‘아나운서’ 호칭이 사라졌다.

매일 아침 9시 열리는 ‘직원예배’에 참석하려고 하자, 사측은 ‘직원이 아닌 프리랜서 최태경이 자발적으로 직원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라는 골자의 각서를 내밀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최 아나운서이지만, 이런 모욕을 수용할 수는 없었다. 최 아나운서는 지금까지도 CBS 직원 예배에 참가하지 못하고 있다.


최태경 경남 CBS 아나운서
최태경 경남 CBS 아나운서

“언론사의 생명은 신뢰잖아요. CBS는 이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을 하고 있는 거에요. 이 일이 CBS의 이미지와 신뢰도를 얼마나 손상시키고 타격을 입힐까 생각이 들거든요. 어서 회사가 이 신뢰를 스스로 회복했으면 좋겠어요.”

여전히 ‘프리랜서 취급’을 받으면서도 복직해 일하고 싸우는 이유는 회사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최 아나운서는 오랜시간 CBS를 이상적인 언론사라고 생각하고 함께하기를 꿈꿨다. 언론통폐합이라는 폭거에도 굴하지 않고, 전두환 독재정권에 항명하면서, 노동문제 보도에도 언제나 앞장섰던 CBS를 최 아나운서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너무나 일하고 싶었던’ 그런 CBS가, 지금 최 아나운서에게 보이는 태도는 그의 기억과 정반대 지점에 놓여있다.

“진짜 죽은 조직은, 자정하는 능력이 없는 조직이라고 생각 해요. CBS가 여전히 자정 능력이 있는 조직이라고 믿고 있어요.” 최태경의 목소리가 무겁다.

최태경의 용감한 싸움이 알려지며, 함께하겠다는 이들이 모이고 있다. 언론노조는 지난달 “CBS는 노동자에게 아픔을 주는 소송을 멈춰야 한다. 또 사업장 내 비정규직 상황 및 문제를 진단해야 한다. 이런 고용구조가 그동안 쌓아 놓은 우리의 반석이 맞는지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이라고 성명을 내기도 했다.

‘투쟁하는 노동자와 함께하는 경남연대, 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CBS 아나운서 정상적 원직복직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두달 전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투쟁을 본격화했다. 민주노총 경남본부와 경남민언련, 부산민언련도 연대하고 나섰다. 대책위는 경남 CBS과 서울 CBS에서 우선 2월까지 ‘정상적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진행할 예정이다.

경남CBS의 아나운서 꼼수 원직복직 규탄 기자회견 . 2022년 11월 10일
경남CBS의 아나운서 꼼수 원직복직 규탄 기자회견 . 2022년 11월 10일

회사의 조직적 괴롭힘을 견디기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최태경 아나운서는 ‘원래 프리랜서 취급받으며 외로움을 친구로 두고 살아 나름 견딜만하다’고 서글픈 농담을 우선 건넸다.

이어 “혼자가 아니라 하나의 점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에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혼자서 외롭게 싸온 선배들이 있었다”며 “먼저 싸워온 프리랜서 아나운서, PD, 방송작가분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싸워 주신 분들의 그 점이 연결돼서 하나의 방향이 지금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수많은 방송국 비정규직들의 투쟁으로 방향은 이제 만들어 지고있고, 자신도 그 길에 발자국을 하나 찍은 것이라고 최 아나운서는 말했다. 다만 각자 외롭게 싸우다보니 서로가 서로를 모를 뿐인 것이라고, 그러나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가 여기에 이렇게 있다고.

‘결국은 민주노총’. 부산에 사는 최태경 아나운서는 민주노총의 지하철 홍보문구를 보고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고 했다. 노동조합 없는 노동자가 기댈 수 있고 홍보 문구대로 ‘결국은 민주노총’이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노동조합 울타리가 없는 노동자들에게, 보다 더 크고 따뜻한 손을 내밀어 달라고 최태경 아나운서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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