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시민 500여 명 모여 추모문화제 진행해
건설현장 산업재해 막기 위해 건설안전특별법 제정해야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하려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도 이어져

4월 29일,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 3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2020년 4월 29일, 이천의 물류창고 신축 공사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우레탄 폼 작업으로 발생한 유증기에 용접 불꽃이 튀면서 일어난 화재였다. 이 사고로 건설노동자 38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전 국민의 분노와 경악 속에 산재를 일으킨 기업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부는 발주처부터 원청 시공사의 안전 확보 의무 강화를 골자로 하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리고 3년이 흘렀다. 시공사인 건우에 3천만 원의 벌금, 관리자 2명에게 실형이 선고됐을 뿐, 정작 대피로 폐쇄를 지시한 한익스프레스의 관계자는 무죄를 선고받는 등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졌다. 정부가 약속했던 건설안전특별법은 여전히 국회 논의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을뿐더러, 윤석열 정부 출범 뒤에는 애써 제정했던 중대재해처벌법조차 처벌 조항 완화 등 무력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어느새 대한민국 사회는 3년 전의 비극을 잊어버린 듯하다.

이에 3주기를 맞는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촉구를 외치는 이들이 모였다. 민주노총과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운동본부는 4월 28일 오후 5시,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추모 문화제를 개최했다.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 유가족 및 이들과 연대하는 노동자, 시민 500여 명이 함께 했다.

문화제의 여는 발언에는 장옥기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위원장이 나섰다. 장옥기 위원장은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 이후 정부가 건설안전특별법 제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돼있다”라며 정부와 국회가 산재 참사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시키고 시키면서 더 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라며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산업재해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이후 건설 현장마다 위험 작업 거부해라, 스스로를 지켜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서 죄를 사해주겠다며 큰소리쳤다. 그리고 현장은 어떻게 됐나.” 이태의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이 장옥기 위원장의 발언을 이어받아 소리높였다. 이태의 위원장은 “실제로 2022년 산재로 돌아가신 노동자가 (그 전에 비해) 100여 명이 늘어났다”라며 “이 문제를 다시 알리려 살인기업 수여식을 하려고 했더니 노동부는 기업 명예 훼손이라며 명단 제출조차 거부했다”라며 노동자 안전 문제는 외면한 채 기업의 이윤 추구 활동만 감싸고 도는 현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장옥기 민주노총 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 4월 29일,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 3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이태의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장/ 4월 29일,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 3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이어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현장의 안전 문제에 대해 증언에 나섰다. 올해 23년 차 타워크레인 조종사라고 본인을 소개한 소생희 건설노조 서울경기타워크레인지부 쟁의부장은 최근 화제가 된 이른바 ‘월례비’에 대해 언급하며 “건설사 마음대로 불법에다 위험한 작업을 시키면서 그 돈을 받는 타워크레인 조종사들만 처벌하려고 한다”라며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으로 건설 현장이 더 위험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31년 차 형틀목수인 김철호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동남지대장은 “대형 참사가 일어나면 기업이나 정부나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만 남겨진 가족들의 피맺힌 절규와 말단 관리자 징계만 남긴 채 잊혀 간다”라며 “말단 관리자에게 무슨 권한이 있어서 처벌을 하나. 경영 책임자가 처벌돼야 형식적인 안전관리에서 사람 중심 안전관리로 바뀔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현장발언에 나선 손지훈 플랜트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본인이 일하고 있는 플랜트 산업단지 공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30년 이상 노후 시설이 많은데 이걸 증설‧보수하다 해마다 폭발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20년 노후 설비를 기업만이 아닌 정부와 지자체도 관리‧감독하라는 노후설비특별법이 발의됐다”라며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해 노후설비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소생희 건설노조 서울경기타워크레인지부 쟁의부장, 김철호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동남지대장, 손지훈 플랜트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 4월 29일,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 3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한편 문화제가 열린 4월 28일은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이기도 하다. 30년 전인 1993년, 태국의 케이더 인형 공장 화재로 188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참사를 추모하기 위한 날이다. 당시 업체는 노동자들의 인형 도난을 막겠다며 공장 문을 걸어 잠그는 바람에 피해는 더욱 커졌다. 대피 통로를 폐쇄하면서 피해를 키운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와 무서울 정도로 닮아있다. 이어 발언에 나선 한상희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운동본부 공동대표도 이 점을 언급하며 “혹자는 이를 두고 산업재해라고 하지만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을 위험 앞에 그대로 내몰면서 위험을 막을 수 있는 아무런 장치를 하지 않은 것은 살인이고 범죄”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발언에 나선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는 산재 피해 유가족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거대한 기업 상대로 사고당한 노동자와 유족이 증거를 찾거나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기 어렵다”라며 “수많은 죽음들이 있지만 그중 몇 안 되는 유족들만 남아 가족을 잃고 망연자실하고 너덜해진 몸으로 불의에 맞서 싸워야 하는 최악의 현실”이라며 산재 피해 유가족이 진상을 규명을 요구하기조차 어려운 현실적 문제에 대해 얘기했다.

한상희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운동본부 공동대표/ 4월 29일,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 3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 4월 29일,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 3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이후 문화제 참가자들은 단상에 마련된 추모 재단에 조화를 바치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문화제 참가자들의 지적대로 정부가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는 가운데 산재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 3주기를 맞는 29일에는 경기도 여주의 물류센터 공사현장에서 건설노동자 2명이 추락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러한 비극을 방지하기 위해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등 관련 활동을 계속해나갈 예정이다.

문화제가 끝난 후 추모재단에 헌화하는 참가자들 ⓒ 백승호 기자
문화제가 끝난 후 추모재단에 헌화하는 참가자들 ⓒ 백승호 기자
4월 29일,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 3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4월 29일,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 3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4월 29일,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 3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4월 29일,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 3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4월 29일,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 3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4월 29일,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 3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 백승호 기자
4월 29일,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 3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 백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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