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비정규직이 공무원에게 띄운 편지

울산 CCTV관제요원 비정규직 10일째 농성

일부 공무원들, 비정규직 적대하며 농성장 철거 반복

“공정함, 저희들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연대 호소

ⓒ 공공연대노조 울산지부 제공

공정함에 대한 저희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저희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니 시험을 통해 공무원이 되신 여러분께는 다소 불편한 감정이 많으신 줄 압니다. IMF 이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란 계급이 나뉘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적 문제가 됐습니다. 반면 안정적 일자리인 공무원 경쟁률은 하늘을 치솟았습니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 저희에게 화살이 돌아오는 건 아닌지 하는 억울함도 있습니다. 저희가 먼저 요구하고 떼쓴 것도 아닌데 정규직 전환 요구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공공연대노조 울산지부 CCTV관제센터지회가 27일 울산 5개 구ㆍ군청에 붙인 자보의 내용이다. 지난 18일부터 동구청 앞에서 농성 중인 CCTV관제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극심한 탄압을 겪고 있다. 지난 18일부터 23일까지 매일 철거를 당했다. 동구청은 강제 철거에 100명이 넘는 공무원 노동자를 동원했다. 일부 공무원은 실제 악의적으로 비정규직을 상대했다. 공무원들은 농성장에 있는 비정규직을 밖으로 끌고, 농성장을 부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탄압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지난 18일 충돌 과정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2명이 후송되는 일도 벌어졌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고선 이를 지키지 않는 정부와 싸우기도 벅찬데 공무원 노동자의 적대와 맞서야 하는 조건이다. ‘무임승차’, ‘무자격’, ‘불공정’이란 여론을 상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공무원 노동자들에게 연대를 호소하는 편지를 띄웠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공무원 노동자들과 며칠 동안 계속 불가피한 싸움이 일어나는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며 “우리는 동구청장을 비롯해 문재인 정부와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민주당 소속 구청장들을 향해 정부 지침을 이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공무원 노동자들과 대립할 생각이 없다”고 전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호소는 절절했다. 자보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지난 세월이 그대로 묻어났다. 이곳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울산 공무원들과 함께 구청에서 일하고 있다. 대부분 7~8년 일한 장기근속자다. 이들은 각자 하루에 CCTV 300대를 지켜보며 울산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 왔다. 그런데 이들은 위탁업체에 소속됐고,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았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주변부 노동이란 그늘에 갇힌 것이다. 그래서 지난 수년간 몸 바쳐 일해 온 시간을 존중해 달라고 했다. 돌아온 건 외면이었다. 비정규직이라는 굳어진 신분과 그에 따른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달라고 했다. 마주한 건 탄압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우리가 매년 느끼는 고용불안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썼다. 그래서 정부가 책임지겠다며 내놓은 게 2017년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이다. 정부 정책에 따라 울산 5개 구·군청장 회의서도 10월 내 노사전문가협의회 구성을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되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시험을 치르지 않고 정규직이 되려 한다’는 역풍을 맞고 있다. 단체장들은 약속을 파기하고 비정규직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기들이 겪는 고용불안, 저임금, 노동조건은 공정하지 않다며, 올바르지 않다며 노조로 뭉쳐 싸우는 중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공무원들과 같은 ‘노동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같은 곳에서, 같은 사용자 아래, 같은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라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든 노동이 가치 있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 세상을 함께 만들기 위해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와주며 때로는 같은 목소리를 내는 노동자다. 우리가 분열하면 좋아할 세력이 누구인지 한 번 생각했으면 한다. 공무원 노동자가 어려울 때 손 내밀어 달라. 그때 주저 없이 연대하는 당당한 노동자로 나타나겠다”고 썼다.

한편 공무원노조도 지난 26일 CCTV관제센터 투쟁을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공무원노조는 “전국 CCTV 노동자의 공무직 전환율은 44%인데 울산 전환율은 0%다. 단체장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해 놓고, 공무원 노동자를 동원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을 탄압했다. 이 같은 단체장의 몰지각한 행위는 비열하다. 이는 노동자 간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반노동 행위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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