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청년을 만나다 ⑤ 보건의료노조 전남대병원지부 총무부장 강다설

강다설 씨는 2017년부터 보건의료노조 전남대병원지부 총무부장을 맡고 있다. 노동조합 가입 2년만에 전임자로 활동하며 2030 청년모임을 이끌고 있다. 그런 강다설 씨는 〈노동과세계〉가 만났다. [편집자주]

강다설 보건의료노조 전남대병원지부 총무부장. ⓒ 송승현 기자
강다설 보건의료노조 전남대병원지부 총무부장. ⓒ 송승현 기자

강다설 씨는 화순 전남대학교병원 암센터 치과에서 일하는 치과위생사였다. 2013년 대학을 졸업한 그해 10월 입사했다. 통상 TO가 많지 않은 대학병원에 바로 입사한 것을 두고 주변에선 운이 좋다고도 했다.

“수능을 치고 나서 친구가 광주보건대 치위생과에 지원한다고 했어요. 저도 같이 했죠. 국가시험에 합격하면 면허가 바로 나오거든요. 취업을 앞두곤 대학병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개인병원은 대학에 비해 근무조건이 좋지 않거든요. 다들 대학병원에 오고 싶어하죠. 한 군데 원서 넣었다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전남대병원에 채용공고가 떠서 응시했어요.”

이론과 실제는 달랐다. 병원 일이 맞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일을 익히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보건의료 업무는 눈치가 많이 필요한 일이었다. 많이 혼나기도 했다. 특히나 부서장이었던 치과교수가 문제였다.

“처음엔 제가 피를 못 본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잘 보더라고요. 수술 땐 의사를 잘 도와서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만 있지, 눈앞의 벌건 것에 연연하지 않거든요. 그러니 일에 적응하지 못한 건 아니었어요. 치과를 찾으시는 분들과도 점점 친해지고, 농담도 주고 받으면서 지냈거든요. 정작 힘든 건 상사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죠. 외할머니 돌아가셔서 받은 청원휴가 하루를 못 쓰게 하기도 했으니까요. 노동조합에 오게 된 계기이기도 했어요.”

강다설 보건의료노조 전남대병원지부 총무부장. ⓒ 송승현 기자
강다설 보건의료노조 전남대병원지부 총무부장. ⓒ 송승현 기자

으레 그렇듯, 다설 씨도 노동조합이 뭔지는 잘 몰랐다. 주변에서 ‘정규직이 되면 하는 것’이라는 말만 들었다. 같이 일하던 선생님은 비정규직임에도 노동조합 가입원서를 냈지만, 다설 씨는 계속 미루기만 했다. 어느 날 ‘이쯤이면 해도 되겠지?’란 생각이 들었고, 2015년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처음 노동조합에 가입했을 땐 노조를 잘 느끼기 어려웠어요. 노조 간부들이 한번씩 순회하러 오긴 오는데, 선전물 주고 인사만 하는 정도였어요. 너무 바쁘니까요. 사측과 교섭을 할 때 조합원 요구안 수렴 간담회를 하기도 했는데, 사실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매월 급여명세서에 찍히는 조합비가 너무 아까웠어요. 그게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한 푼이 아쉬운 시기였기도 했고요. 그런데도 막상 노조 탈퇴하러 가는 건 발이 잘 안 떨어지더라고요.”

노동조합과 더 친해진 계기는 울릉도였다. 노조는 2016년 조합원 가족과 함께 하는 행사를 준비했고 이를 조합원들에게 공지했다. 2박3일간 울릉도에 간다는 공지를 본 다설 씨는 아빠와 함께 가기로 했다. 신청 당시엔 모집기간이 지난 상황이었지만, 노동조합은 다설 씨 가족을 받았고 울릉도에 함께 가게됐다.

“저는 노동조합 전임자나 간부들을 잘 모르니까, 그저 아빠와 둘이 여행을 간다는 생각으로 떠났죠. 낮엔 울릉도를 탐방하고 저녁엔 같이 노는 여행이었어요. 어쩄든 저는 조합원이잖아요? 그러니 노조에서 많이 챙겨줬어요.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그러면서 정도 생겼고 많이 친해졌죠.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전임자분들과의 관계가 이어졌어요. 무슨 계기였을까 모르겠는데, 퇴근하면서 노조 사무실 들러 인사하고 가기도 하고 그랬죠.”

2017년 새로 임기를 시작한 김혜란 지부장이 다설 씨에게 전임자를 권유했다. 당황스러웠다. 노조 활동을 해본 적도 없고 대학 때 운동을 한 적도 없는 다설 씨다. 울릉도 여행 후 노조는 다설 씨를 노동조합에 호의적인 조합원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집회를 권유하면 함께 나가고 노조 사무실에도 자주 들렀던 게 계기였을까, 다설 씨는 한 차례 거절한 뒤 노조 전임자 자리를 받았다.

“제가 세상을 바꿀 생각은 없었어요. 다만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부당하다고 말할 용기를 얻어서 오자는 생각으로 전임자를 시작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엔 노동조합을 도피처로 생각했던 것도 같아요. 병원에 처음 입사했을 때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거든요. 그만큼 힘들었던 것도 영향을 끼쳤죠.”

작년 7월 참가한 이석기 의원 석방대회 사진. ⓒ 강다설 제공
작년 7월 참가한 이석기 의원 석방대회 사진. ⓒ 강다설 제공

노조 전임자 활동을 하면서 본 조합원들은 2015년의 다설 씨와 같았다. 우선 노동조합이 뭐하는 곳인지 잘 몰랐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그게 부당한지 몰랐다.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적었다.

“외국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노사교섭을 하고 노동조합이 왜 필요한지 배운다고 들었어요. 노동자의 권리도 높고요. 그런데 우리는 파업을 한다고 하면 ‘배가 불렀다’라고 하잖아요. 저는 자기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것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모두가 전임자를 해봤으면 좋겠어요. 내가 느낀 것을 그들도 알았으면 좋겠거든요. 다른 지부 지부장님은 그래요, ‘노조 활동은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 다음으로 가치가 있다’라고요. 그만큼 가치가 있지만 하기는 힘든 일. 정말 공감하는 말이에요. 왜 우리가 이런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여러 번 얘기해도 사람들은 잘 모르거든요. 그런데, 직접 경험해보면 달라져요.”

다설 씨가 경험한 노동조합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자신이 직접 나서서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다른 하나는 ‘우리 부서 일인 걸 티나지 않게 해달라’라는 것이다.

“어떤 문제가 있어서 노동조합이 찾아가면 다들 그렇게 얘기해요. ‘내가 말한 걸 티나지 않게 해주세요.’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잖아요. 병원 전체적으로 일하는 사람이야 많지만, 어느 부서에서 일어난 일인지는 병원하고 얘기하다보면 금방 티가 나니까요. 그 말에 공감해요. 저도 전임자 하기 전엔 부서원이 3명인 부서에 있었잖아요. 워낙 소수 인원이라 누가 얘기했는지 쉽게 찾아낼 수 있거든요.”

다설 씨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함께 문제제기를 하고 함께 풀어나가면 좋겠다고 말한다. 관리자는 한 명이고 노동자는 다수인 만큼, 우리가 우리 목소리를 더 적극적으로 내 권리를 찾을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거다. 같이 할 사람을 많이 만들고 싶다.

“보건의료노조 전남대병원지부 조합원이 2천 명이 넘어요. 그중 70%가 20~30대 조합원이고요. 사실 청년 사업의 목표가 뭐냐고 물으면, 병원 조직문화를 바꾸고 싶다는 게 있어요. 아래로부터의 변화라는 건데요, 70% 정도에 달하는 20~30대 청년들이 바뀌면 병원도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노동조합 간부는 20명도 안 되는데, 어떻게 노조 간부만으로 병원이 바뀌겠어요?”

다설 씨가 청년모임 ‘가온’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 송승현 기자
다설 씨가 청년모임 ‘가온’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 송승현 기자

보건의료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는 2018년부터 2030위원회를 만들어 청년캠프를 진행했다. 지난해 교섭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채용비리가 터져 투쟁이 계속되면서 청년사업이 미뤄졌다. 올해 새로 사람들을 모았고, 4차 모임까지 진행했다.

“작년에 청년캠프에 같이 갈 사람을 모집 공고를 냈어요. 그런데 아무도 안 온 거 아세요? 심지어 제가 같이 가자고 했던 사람들도 다 거절했어요. ‘왜 노동조합이랑 놀아야 해?’ 그런 생각들이 있었던 거예요. 노조는 조합원에게 더 편하게 다가가려 행사를 준비했잖아요, 또래를 알아가자는 취지로 1박2일 프로그램도 짜고 즐기는 모임도 꾸려고요. 그런데 즐기고 노는 모임, 그거 꼭 노조랑 해야 하는 걸까요? 청년들 입장에서는요. 밖에 친구들도 많은데 굳이 노동조합 사람들과 놀아야 할까요?”

방법을 바꿨다. 청년사업을 처음 하는 것이라 너무 많은 사람을 대하는 것도 부담이 됐다. 소수정예로, 노조에 뜻이 있는 사람들을 조직했다. 노조를 잘 몰라도 함께 알아갈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았다. 다만 만나서 무엇을 하든지, 노동조합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걸 전제로 했다.

“제가 직접 찾은 분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을 받기도 했어요. 직종을 다양해서 5명이 모임을 시작헀죠. 구성원 모두가 노조에 대해 뭔가를 알아가고 싶어해요. 뭔가를 해보고 싶어하죠. 그러니 모임을 하는 데 거부감은 없어요.”

모임 이름은 ‘가온’이다. 세상의 중심이란 뜻이다. 모임을 만든 다설 씨는 가온의 장, ‘가장’이 됐다. 부장 직책의 다른 이는 가온의 부장, ‘가부장’을 맡았다. 같이 하는 모임인만큼 각자가 책임을 하나씩 갖기로 한 거다.

가온은 단체협약 공부를 먼저 시작했다. 일터에서 겪는 각종 문제들이 사실은 단체협약으로 약속된 것이 지켜지지 않는 게 많았기 때문이다. 단체협약과 선언문, 강령을 함께 읽었다. 단체협약 공부가 1990년대 의료민주화로 이어졌다. 강령에 나오는 평화통일이 정말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산별노조에 대한 궁금증도 물론이다.

“그러다보니 노동법을 공부하고 싶다는 얘기도 나왔어요. 부서장과 얘기할 때 ‘어디어디에 나와있는 거다’ 이렇게 얘기하면서, 그게 뭔지 내가 먼저 알아야겠다는 거죠. 그분 친구 중에 적화통일 얘기하는 사람있는데요, 왜 그게 아닌지를 친구에게 설명해주고 싶다고도 해요. 광주 5.18의 역사나 미국의 역사왜곡을요. 미리 알고 있으면 더 좋겠다 싶은 거예요.”

가온 4차 모임에서 2018년 단체협약을 공부하고 남긴 사진. ⓒ 강다설 제공
가온 4차 모임에서 2018년 단체협약을 공부하고 남긴 사진. ⓒ 강다설 제공

“어떻게 하면 토론을 할 수 있을까요? 이게 제 고민이에요. 제가 뭘 하자고 했을 때 거부감은 없어요. 다만 늘 제가 혼자 설명을 하고 뭘 알려주는 게 아니라 구성원들과 함께 해보고 함께 알아가고 함께 토론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거든요. 모임이 더 진행되고 확대되면, 각 구성원이 속한 부서에서 현장투쟁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그렇게 되려면 지금 단계에서 모두가 함께 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민주노총 광주본부에서 연 어느 토론회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그때 강사님 말씀이 기억나요. ‘청년이라서 청년사업이 어려운 거냐. 아니다, 조직사업은 그냥 다 어려운 거다’라고 하셨거든요. 맞는 말이었어요. 청년이란 틀에 맞춰서 ‘2030은 이럴 거다’ 그렇게 규정하는 거죠. 사실 40대, 50대라고 조직사업이 쉬운 건 아니잖아요. 모든 조직사업은 다 어렵잖아요. 왜 ‘청년사업은 어렵다’란 틀에 박혀서 생각해왔을까… 그런 선입견을 없애려는 생각도 많이 했죠.”

2030 모임의 최종 목표를 물었다. 답변은 ‘사람 사업’으로 돌아왔다.

“사람 사업은 ‘현장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을 말해요. 대의원이나 간부를 세우려는 게 아니고요. 노동조합과 함께하면 어떤 문제를 바꿀 수 있다, 어떤 문제에 공감하고 함께 용기낼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거예요. 모두가 노조 전임자를 하면 좋겠지만, 그건 사실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모두가 전임자만큼 알았으면 해요. 다른 게 아니라, ‘그렇게 참을 필요 없습니다’ ‘현장에서 부당함을 흘려보내 필요 없습니다’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뭐든 처음 한번이 어렵지 다음은 술술 흘러간다고들 하잖아요.”

지난해 11월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사진. ⓒ 강다설 제공
지난해 11월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사진. ⓒ 강다설 제공

문제는 현장에서다. 노동조합이 함께 싸워줄 수 있지만 현장에서 견뎌내야 하는 건 오롯이 조합원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설 씨는 노동조합과 뭔가를 함께 해보겠다는 마음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란 생각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본다. 다설 씨의 ‘모두가 전임자를 하면 좋겠다’는 뜻도 마찬가지다.

“이런 얘기를 하면 약간은 뜬구름 잡는 것 같죠? 옆에선 차라리 간부를 키워내는 게 현실적이라고도 해요. 그런데 모든 조합원의 간부화, 전임자화를 하려면 결국 이런 사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장에서 각자가 주체적으로 투쟁할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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