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배 불리는 특수고용에 노동자성 빼앗긴 노동자들
개인사업자라며 교섭 거부하는 원청, 파업 끝엔 손배폭탄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 노동권 짓밟는 노조법 개정하자 외쳐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대우조선소 하청노동자의 절규에 사측은 470억원 손해배상 청구로 답했다. 월 200만원 받는 노동자에게 떨어진 '손배폭탄'에 전 사회가 경악하면서,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을 외치는 목소리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노조법 2조는 노동자와 사용자 개념을 정의한다. 노조법 3조는 합법적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한다. 문제는 노조법이 정의하는 노동자, 합법적 쟁의행위의 폭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계약직, 간접고용, 특수고용, 플랫폼고용 등 새로운 이름이 계속 등장하는 사이 한국은 '천만 비정규직의 나라'가 되었다. 기존 노조법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노동자가 아니다.

서비스연맹 여섯 분과에도 특수고용노동자와 플랫폼노동자들이 있다. 급여 인상 전에 노동자성 인정을 위해 싸워야 하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노조법 2·3조 개정은 오늘의 교섭을 바꿀 너무도 중요한 사안이다. 

서비스연맹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25일 (화) 오전 11시, 서비스연맹 특수고용노동직들이 국회 앞 민주노총 농성 천막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특수고용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를 생생하게 전하는 한편, 원청의 사용자의무 회피가 불러오는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김광창 서비스연맹 비정규특별위원장이 노조법 개정이 한국 사회 노동권의 발전을 좌우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김광창 서비스연맹 비정규특별위원장(서비스연맹 사무처장)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교섭할 수 없고, 교섭할 수 없으니 투쟁으로 내몰리고, 투쟁을 하면 불법 낙인을 찍는" 노조법 악순환을 비판했다. 노조법 개정 여론이 대두된 지금이 "한국 사회 노동권이 질적으로 발전하느냐, 후퇴하느냐 갈림길에 서 있다"며, 민주노총과 서비스연맹은 노조법 개정을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결의했다. 

이어 서비스연맹 특수고용단위 위원장, 지부장들이 현장 발언에 나섰다. 

김태완 전국택배노조 수석부위원장이 원청의 사용자성 회피와 손해배상 청구를 규탄하며 노조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택배노조는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합의 실행을 요구하다 CJ대한통운 본사를 점거했다는 이유로 89명 조합원들이 각기 20억씩 손해배상청구를 당했다. 김태완 전국택배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 사태의 원인이 바로 노조법 2조의 낡은 노동자, 사용자성 정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수석부위원장은 "노동자는 원청 작업지시대로 일하고, 원청 로고가 박힌 차량을 운전하고 유니폼을 착용하는데 왜 원청은 자신이 사용자임을 인정하지 않느냐"고 호소하며 하청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는 원청을 비판했다. 아울러 손해배상청구로 노조를 옥죄는 원청을 비판하며 노조법 개정으로만 노동자들이 기본권을 누릴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수암 마트산업노조 온라인배송지회장이 과로사한 배송노동자 사례를 열거하며 노동자성 확보가 과로사를 막을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수암 마트산업노조 온라인배송지회장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증한 온라인쇼핑, 그로 인해 과로사한 배송노동자 사례를 발표했다. 20년 11월 롯데마트 배송노동자가 일터에서, 21년 4월 이마트 배송노동자, 22년 홈플러스 이커머스 피킹노동자, 이마트 쓱닷컴 온라인 배송노동자, 마켓컬리 야간노동 하던 여성 노동자 모두 과로 끝에 허무하게 숨졌다. "코로나보다 과로로 죽겠다"는 말이 배송노동자 사이에 돈다는 게 이 지회장의 증언이다.

이 지회장은 배송노동자의 연이은 사망 때마다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사측 태도도 전했다. "대형 재벌과 운송사는 모두 배송노동자는 개인사업자라며 회피하고 산재 신청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배송노동자는 계속 야간노동으로 내몰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온라인배송지회는 20년부터 교섭을 요구해 왔으나 2년이 지난 지금도 사측은 교섭에 임하지 않고 있다. 이 지회장은 "배송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해 쟁의 행위를 보장하고, 대형마트의 사용자성을 인정해 교섭 의무를 다 하도록" 노조법 개정을 촉구했다.

김경희 방과후강사노조 위원장이 경남교육청의 교섭 해태를 비판하며 방과후강사를 특수고용노동자의 틀에 가두는 국가를 규탄하고 있다.

김경희 방과후강사노조 위원장은 방과후강사가 노동자성을 인정받기까지 기나긴 투쟁 과정을 이야기했다. 한국 사회 교육 격차 해소에 20여년간 혁혁한 공을 세웠음에도 방과후강사는 여전히 "유일한 교내 특수고용노동자"다. 처우 개선을 위해 19년 6월 노조를 설립했고, 77일 만인 1월 설립 필증을 받았다. 이후 방과후강사노조는 경상남도 교육청을 상대로 교섭을 신청하고 계속 투쟁한 끝애 올해 2월 공식 교섭 상견례까지 이를 수 있었다.

김 위원장은 노조 결성부터 교섭까지 너무 힘든 투쟁을 했기 때문에, 교섭에 들어간 경남 조합원들은 기대에 차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나 고대하던 교섭 현장에서 조합원의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불분명한 지위, 불공정 계약, 계약서를 쓰고도 팬데믹 2년 동안 수업을 한 번도 못하고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하자 교육청은 "근기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김 위원장은 "국가가 필요에 의해 우리를 특수고용노동자로 고용해 놓고 26년 간 방치하고 있다"며, 열악한 방과후강사 처우가 노동자는 물론 수업 주체인 학생의 교육권까지 침해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왕일선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조 코웨이코디코닥지부장이 특수고용노동자로서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왕일선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조 코웨이코디코닥지부장이 특수고용노동자로서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왕일선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조 코웨이코디코닥지부장은 급여 보장도,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해 생계를 위협받는 가전통신서비스 노동자 상황을 전했다. 정수기, 공기청정기 등을 점검하거나 판매하고 건당 수수료를 받는 가전통신서비스 노동자들은 대부분 특수고용 노동자다. 점검, 판매 수수료가 임금이지만 사측의 입장에 따라 최소한의 점검 건수도 확보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측이 영업 실적을 올리기 위해 인력을 충원할 때는 강제로 일감을 빼앗긴다. 왕 지부장은 "노동자들끼리는 영업 못 하면 인간 취급도 못 받는 곳이라고 평한다"라고 노동 현장의 실적 경쟁을 전했다.

가전통신서비스노동자는 어떻게든 실적을 올려야 하다 보니 가정방문시 고객에게 당하는 인격모독이나 반려동물의 공격도 개인이 감내한다.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니 직장 내 괴롭힘도 제보할 수 없다. 기계 점검 및 설치 때 부상을 입어도 산업안전보건법 보호를 받지 못한다. 야간 업무 수당도 보장받을 수 없다. 이런 요구를 교섭 테이블에 올리자 사측은 "정규직도 아닌데 왜 이런 걸 요구하냐"며 자리를 떴다.

왕 지부장은 "원청과 직접 계약하지 않았다고 쟁의 활동부터 불법딱지를 붙이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규탄했다. "우리는 이런 나라를 용납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하며 노조법 개정으로 마음껏 노조 활동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고 외쳤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이 경제 위기에 더욱 취약한 특고노동자 현실을 이야기하며 국회가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이 경제 위기에 더욱 취약한 특고노동자 현실을 이야기하며 국회가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은 닥쳐오는 경제위기에 더욱 취약한 특수고용, 배달플랫폼 노동자 현실을 전했다. 김 위원장은 "코로나19 때 각종 보조금을 뿌렸지만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는 만져보지도 못했다"며 특수고용노동자가 보호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고발했다. 설상가상 경제위기가 심화되며 "비정규직은 해고되고 특수고용노동자 생계는 벼랑 끝에 몰려 있는데 국회는 권력다툼에 여념이 없느냐"며 민생을 외면하는 정치권을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또 산재 다발 1위 기업이 제조업에서 쿠팡 등 플랫폼 업체로 바뀐 것에 주목했다. 수많은 배달플랫폼,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목숨을 담보로 달리며 죽어 가고 나서야 간신히 그 수치가 통계에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끝없는 산재 발생에도 플랫폼 업체는 책임자성을 회피했다. 대리운전노조는 2년 간 끈질기게 투쟁해 카카오 모빌리티와 간신히 교섭에 성공하고 26일인 내일 교섭 잠정합의 조인식을 앞두고 있다. 김주환 위원장은 여전히 대리운전 노동자의 생존권에는 관심이 없는 사측을 비판하는 한편,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노조법을 반드시 개정하자고 호소했다. 

정난숙 전국학습지산업노조 대교지부장이 전 특고노동자가 함께 투쟁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정난숙 전국학습지산업노조 대교지부장이 전 특고노동자가 함께 투쟁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정난숙 전국학습지산업노조 대교지부장은 "학습지 교사가 왜 개인사업자냐"며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측을 비판했다. 대교지부는 노조 설립 22년 만에 대법판결로 교섭권을 얻고, 기본협약을 체결하였으나 사측의 무성의한 태도로 단체교섭이 진전되지 않고 있다.

정 지부장은 "사측은 우리가 개인사업자라며 노동조합에 당연히 제공해야 할 사무실, 노동자에게 당연히 제공해야 할 건강검진 등도 선심쓰듯 내준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경영난이라 어쩔 수 없다, 위탁계약직이니 알아서 해라"라는 사측 주장 때문에 지리멸렬한 교섭을 하며 학습지 노동자의 처우는 계속 제자리걸음이라고 고발했다.

정 지부장은 모든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가 사측의 사용자성 회피라는 공통 문제에 부딪혀 있음도 지적했다. 전 특수고용노동자가 뭉쳐 노조법을 개정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외치고 발언을 마무리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요구안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요구안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후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함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특수한 고용은 없다! 우리는 노동자다!' '진짜 사장이 책임져라!' '노조 탄압용 손배소 금지!' 등 구호가 적힌 피켓을 '원청 책임 회피' '손해배상폭탄' 등의 문구가 쓰인 판에 붙이며 결의를 다졌다. 

노조법 2·3조 개정은 서비스연맹뿐 아니라 모든 특수고용 노동자의 열망이다. 민주노총은 11.12 전국노동자대회, 12월 민중대회 핵심의제로 노조법 2·3조 개정을 상정했다. 서비스연맹 역시 '일하는 모두가 노동자'로 인정받도록 총력을 다해 투쟁할 예정이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비스연맹 특고 노동자들이 노조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서비스연맹 특고 노동자들이 노조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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