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노동자 폐암 산재 계속되는데 정부 교육당국 묵묵부답
폐암 위협에 인력수급마저 차질, 이대로는 친환경 무상급식 무너진다
국가는 책임을 다하라! 노조와 산재 당사자 국가 대상 손배청구 소송 제기

학교급식실 근무 중 폐암 산재를 인정받은 학교급식노동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다.

지난 21년 4월 학교급식실 노동자 폐암사망이 최초로 산재인정을 받았다. 이후 23년 5월 31일까지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산재신청은 총 97건, 이중 62건이 산재 승인을 받았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서 진행된 학교급식노동자 폐CT검진 결과 수검자 32.4%인 1만 명에게서 이상소견 결과가 나왔다. (강득구 의원실 제공, 23년 3월 7일 기준) 그러나 책임부처인 교육당국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교급식노동자 폐암 산재 피해자 국가책임 손해배상청구소송 제기 기자회견 이 진행되고 있다. ⓒ서비스연맹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이하 학비노조)는 6명의 폐암 산재 피해 당사자 조합원들과 함께 국가에 책임을 묻기 위한 손배청구소송에 나서기로 했다. 이에 28일 오전 10시, 민주노총 15층 교육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소송 제기의 취지와 목표를 밝혔다.

김수정 학비노조 수석부위원장이 국가 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 제기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서비스연맹

“국민적 지지를 받으며 시작된 무상급식 12년, 정작 학교 급식을 떠받치는 노동자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김수정 학비노조 수석부위원장(노동안전위원장)은 현 학교 급식실 집단 폐암 사태가 “노동조합의 급식실 환경 개선 요구를 불평불만으로만 치부해 온 교육당국 탓”이라고 지적했다. 급식노동자들이 폐암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정부와 교육당국의 무대책 탓이라는 것이다. 

김 수석부위원장은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에 항상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급식실 현장 상황도 전했다. “교육청이 급식노동자의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당연시하면서 아침 급식, 방학 중 급식, 카페테리아식 급식을 남발하는 사이 노동자들은 급식실을 떠나고 있다”며, 이대로는 무상급식 지탱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조의 이번 소송은 친환경 무상급식의 지속 발전을 위한 국민적 소송입니다.”

김 수석부위원장은 학비노조의 소송이 노동권, 생명권,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고 강조했다. 또 ‘정부가 학교급식실 폐암 산재의 가해자’임을 분명히 밝히며 피해 노동자에 대한 사과와 대책, 친환경 무상급식의 지속 발전을 위해 책임 있게 대응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소송당사자인 학비노조 광주지부 조합원이 발언했다. 

소송당사자인 학비노조 광주지부 조합원이 학교 급식조리실 환경 실태를 전하고 있다. ⓒ서비스연맹

“처음 무상급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우리 급식노동자는 조리흄이 위험한 건 줄도 몰랐습니다. 그저 아이들 맛있는 급식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이렇게 폐암에 걸리게 된 겁니다.”

조합원은 무상급식 제공 초기 가정용 환기장치조차 제대로 마련돼지 않았던 급식조리실 환경에 대해 증언했다. 폐암 판정을 받았던 마지막 근무처에서마저 후드가 고장 나는 등 환기장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환기 안 되는 조리실에서 “일주일에 세 번 튀김, 볶음요리는 매일” 만드는 사이 급식노동자들의 건강은 망가졌다. 

“치료를 하고 있지만 언제 또 약물에 내성이 생길지 하루하루 불안하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 일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아플 줄 모르고 일한 죄밖에 없는데…….”

기자회견에 참가한 조합원은 폐암 3기 진단을 받고 퇴직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전했다.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박정호 학비노조 정책실장은 폐암 진단 후 치료에 들어갔지만 건강 악화와 재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퇴직을 선택하는 학교급식노동자가 급증하고 있음을 알렸다.

소송대리인인 임자운 변호사(법률사무소 지담)가 이번 손배 소송을 맡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서비스연맹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 발병률이 동일 연령대 여성 대비 35배에 달합니다, 직업성 암 문제를 많이 다뤄온 법률가 입장에서도 굉장히 놀라운 수치입니다”

학비노조와 산재피해자들의 소송대리를 맡은 임자운 변호사(법률사무소 지담)는 학교급식실 폐암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재발방지 대책과 보상이 턱없이 미흡하다고 전했다. “원인 규명, 재발방지대책이 마련되기는커녕 피해자들에 대한 재산적 피해 보상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신적 피해는 아예 산재보상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이게 우리가 어렵게나마 손해배상 소송에 나서는 이유입니다.”

임 변호사는 무과실책임주의에 입각한 산재보상보험에 국가가 숨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교육당국과 정부는 환기시설 보완, 보호장비 마련은 물론 급식실 인력 수급 문제마저도 방치하면서 노동자들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임 변호사는 ‘사업주에게 잘못을 묻지 않는 현 산재보상보험제도’가 정부와 교육당국의 이런 무책임을 정당화해준다고 보았다. 

임 변호사는 이번 소송이 “국가에 책임을 묻는 소송”이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국가를 상대로 하는 어려운 소송에 나선 피해노동자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의미 있는 판결이 나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현재순 직업암119 기획국장이 국제 산재사망 통계와 한국 통계를 대조하며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서비스연맹

21년부터 한국의 직업성 암 환자를 찾는 사업을 하고 있는 직업암119의 현재순 기획국장도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현 국장은 산재사망의 통계를 통해 학교 급식실 폐암이 국가 책임이라는 점을 증언했다.

“국제노동기구 전세계 산재 사망자 통계를 보면 질병 사망자 비율이 86.7%, 그중 직업성 암이 26% 정도입니다. 반면 우리나라 노동부 분석자료를 보면 직업성 암 비율이 겨우 6%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 국장은 국제 통계와 한국 통계가 다른 이유로 첫째, 산재 신청 수 자체가 적은 점, 둘째, 암 발생 원인을 술, 담배, 유전 등 개인적 요인으로 보는 사회 관행으로 꼽았다. 또 직업성 암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암도 산재다’ 같은 캠페인을 정부와 노동부가 적극 주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서비스연맹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서비스연맹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장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기자회견문은 김정희 학비노조 광주지부 노동안전담당 사무처장이 낭독했다. 학비노조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학교급식노동자의 건강은 급식을 먹는 어린이들의 건강과 직결된다고 역설했다. ‘학생과 학부모, 노동자가 모두 건강한 친환경 무상급식’을 지키기 위해 학비노조는 국가배상소송을 시작했음을 알리는 한편, 법원 안팎에서 더 크게 연대하고 싸울 것임을 선포했다.

김정희 학비노조 광주지부 노동안전담당 사무처장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서비스연맹
학비노조의 요구가 담긴 피켓이 세워져 있다. ⓒ서비스연맹
학비노조의 요구가 담긴 피켓이 세워져 있다. ⓒ서비스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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