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연속인터뷰]
출판노동자, 이명숙(가명)

11월 11일 열릴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앞두고 〈노동과세계〉가 민주노총과 함께하는 노동자들을 만난다. 다섯 번째 인터뷰는 이명숙(가명)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조합원이다.
이명숙 조합원은 출판사 편집자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책이란 물성을 만들어 낸다. 쏟아지는 책만큼 호황일 것 같아도 출판은 박봉에다수가 5인미만 사업장이다. 대표적인 여초 직업군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특수고용노동자도 늘었다. 저연차와 고연차 사이가 텅텅 빈 것은 혼자 버텨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퇴사하거나 업계를 떠나는 것 외엔 자신을 지키기가 어려운 업계라고 토로했다. 노동조합, 산별교섭… 잘 드러나지 않지만 출판노동자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라고 짚었다.
업계 특성상 가명을 사용해 인터뷰에 응했고, 사진 속 얼굴도 가렸다. [편집자주]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란 걸 깨닫기만 해도… 업계의 압박을 낮춰주는 게 노동조합”

출판노동자, 이명숙(가명)

이명숙(가명)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조합원. 사진=송승현
이명숙(가명)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조합원. 사진=송승현

편집자는 종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사람이예요. 책을 기획해서 제작하고 마케팅까지 끌고가죠. 물성을 가진 책 한 권 만들기 위해 정말 많은 일을 해요. 방송사 PD와 비슷하다고 보면 돼요. 직접 카메라 들고 촬영하거나 출연하지 않지만 프로그램 하나 만들기 위해 뒤에서 많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요.

예전 선배들은 손 곱아가면서 원고지 교정을 봤대요. 빨간펜 들고 교정하는 모습 상상되죠? 그러다 변화를 겪으면서 지금은 기획자에 가깝게 역할이 바뀌었어요. 교정을 보지 않는 편집자도 많아요. 출판업계가 장기불황에 놓이면서 양극화가 심해진 탓이기도 한데요, 출판업계도 5인미만, 10인미만 작은 회사들이 많아요. 이 회사들이 이윤을 내려면 인건비를 줄이거나 제작단가를 줄여야 하거든요. 그래서 직접고용하는 노동자를 줄이고 외주를 늘려요. 편집자가 좋은 기획을 발구하고 작가를 섭외하긴 하지만, 제작과정의 업무 하나하나는 프리랜서에게 돌리는 경우가 많아요.

출판업계가 대표적인 여초 직업군인 탓도 있어요. 여성들은 육아와 동시에 커리어가 단절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복직 앞두고 고민을 해요. ‘계속 출판사 다니면서 저임금을 받을 것인가’ ‘지금까지 쌓은 커리어로 프리랜서를 하면서 육아도 할 것인가’. 그런데 프리랜서도 경쟁이라 점점 단가가 낮아져요.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이하 출판노동유니온)가 실태조사를 했더니 업계 외주단가가 10여 년째 동결이래요. 경력은 느는데 내 임금은 안 올라요.

교정도 능숙하게 보고 원고 커뮤니케이션도 잘하는 프리랜서가 늘다보니… 이제 출판사는 편집자에게 기획력을 기대해요. 마케팅을 더 잘하길 바라고요. 독자 응대도 시키고 유튜브 출연도 해야 돼요.

제가 처음 편집자 생활을 시작할 때 들은 강의가 있어요. 강사님은 편집자의 전문성을 강조했어요. 자기만의 분야, 자기만의 색깔을 찾으래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팔리는 책에 따라 주어지는 업무만 있더라고요. 내가 다른 데 가서 편집자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원고에 집중하는 업무보다 외적인 업무, 잡무라고 부르는 일을 너무 많이 하는데 내 전문성은 길러지고 있는 걸까? 이대로 5년, 10년 계속 이 이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많았어요.

마흔 쯤되면 다시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는 때가 올 것 같아요. 선배들도 그 나이가 되면 창업하거나 관리자로 회사에 남더라고요. 아예 다른 분야, 특히 테크업계로 가기도 해요. 출판 편집자는 만능 커뮤니케이션을 하니까요.

개인이 출판사를 만드는 것도 쉬워요. 수수료 얼마 내고 구청이나 시청에 등록하면 돼요. 그러니 독립해서 창업하는 사람이 늘었죠. 그러면서 양극화도 심해졌고요. 5인미만 작은 출판사는 우후죽순 늘어나죠, 대형출판사처럼 유명작가를 비싼 돈 주고 데려올 수 없는 중견 규모 출판사는 버티기 어렵죠… 거기서 일하던 사람들이 다시 독립해서 5인미만 출판사를 세우는 거예요. 중간층이 사라졌어요. 3~5년 연차가 사라졌어요. 양서를 만들던 20~30명 규모의 출판사도 점점 어려워졌어요.

대형출판사들은 레이블이라 부르는 브랜드를 여러 개 만들어요. 일종의 자회사를 만들고 독립출판처럼 행세해요. 기존에 일하던 편집자를 1인 사업자처럼 새로 계약하고요. ‘여기서 나오는 수익의 얼마를 주겠다’ 이런 식으로요. 근로계약서 쓰고 회사 잘 다니다가 갑자기 특수고용노동자가 되는 거예요. 이미 업무 프로세스는 짜여있으니 거래처가 책을 다 만들잖아요. 1인 사업자가 된 편집자는 브랜드 관리를 하는 거예요. 책을 만드는 편집자란 노동의 개념은 사라지는 것 같아요.

대기업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 프로세스가 저와는 맞지 않더라고요. 대학 연계전공으로 출판 관련 수업을 들은 적 있어서 이 직업을 선택했어요. 저와 잘 맞을 것 같았거든요. 실제로 책이란 결과물이 제 손에 쥐어졌을 때 오는 쾌감이 커요. 또 대기업에 비해 높은 수준의 감수성이나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좋고요. 대기업에선 아무래도 자신의 생각을 유연하게 표현하기 어렵지만, 책을 기획하려면 다양한 가치와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노동조합을 일찍 만난 것도 행운이예요. 노조하면서 비슷한 고민을 가진 동료, 선후배를 많이 만났어요. 업계를 떠날 것인가, 퇴사를 할 것인가… 그런 고민이 나 혼자 겪는 일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회사 밖 동료들과 연대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었어요. 실제로는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으로 문제였던 거죠. 그걸 깨닫기만 해도 내게 주어지는 업무 프레셔를 많이 낮출 수 있어요. 그래서 제게 출판노동유니온은 소중한 존재예요.

아쉬운 건 양극화가 극심한 업계라 사내노조가 거의 없다는 점이예요. 그래서 출판에 몸담은 사람들이 모여 출판노동유니온을 만들었어요. 실태조사도 하고 산별교섭도 요구해요. 저희의 사용자단체는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예요. 사용자로서 누릴 혜택은 다 누리면서 저희가 요구하는 노사정 협의체에는 절대 응하지 않고 있죠. 사용자가 아니래요. 이율배반적이죠? 법적 문제해결을 떠나 만나서 이야기의 물꼬를 터보자고 하는데도 답이 없어요.

출협 대표가 한 대형출판사 대표이기도 한데요, 아이러니한 건 매년 11월 전태일재단에서 발표하는 문학상을 그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엮어낸다는 거예요. 앉는 자리에 따라 사람이 바뀌나봐요, 과거엔 노동운동도 하셨던 분인데.

출판노동유니온은 아직 규모가 작아요. 그래서 주변사람들에게 노조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예요. 가입을 권하기도 하고요. 처음엔 불이익이 있을까봐 노조하는 걸 숨기기도 했는데, 이제는 SNS에도 올려요. 업계 동료들이 더 많이 노조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거든요.

노조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사장을 타도하자, 의식있는 책만 만들자라고 선언하는 게 아니예요. 내가 업계에 기여할 수 있는 것, 또 다른 동료와 연대할 수 있는 것을 해보면서 출판업계에서 받은 고난과 환멸을 견뎌내보자는 거죠. 노조에는 그런 힘이 있어요.

이명숙(가명)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조합원. 사진=송승현
이명숙(가명)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조합원. 사진=송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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