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연속인터뷰]
봉제노동자, 이숙희

11월 11일 열릴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앞두고 〈노동과세계〉가 민주노총과 함께하는 노동자들을 만난다. 네 번째는 이숙희 화섬식품노조 서울봉제인지회 회계감사다.
민주노총은 이번 전노대를 앞두고 전태일 열사의 걸음과 생각을 따라가는 ‘전태일로드’를 기획했다. 버스비를 털어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몇 시간이고 걸어갔던 그의 퇴근길을 따라 걷는다. 이숙희 감사는 전태일로드에 강사로 참여한다. 1970년대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 시대상을 전하는 역할을 맡았다. 열사가 분신한 1970년 11월 13일, 이숙희 감사 역시 평화시장에서 일하고 있던 봉제노동자였다. [편집자주]

 

“함께 걷는 12km… 전태일 열사의 생각을 엿보는 퇴근길 되길”

봉제노동자, 이숙희

이숙희 화섬식품노조 서울봉제인지회 조합원. 사진=송승현
이숙희 화섬식품노조 서울봉제인지회 조합원. 사진=송승현

1970년대 평화시장의 현실은 익히 아시잖아요? 저도 부모님이 가난해서 어린 나이에 일하러 갔어요. 당시엔 노동환경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도 몰랐죠.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가 다 ‘여긴 원래 그런 곳이야’라고 생각하고 살았거든요.

그러다 그 사건이 일어난 거예요. 전태일 씨가 분신한 거죠. 그때 사장들은 ‘어떤 깡패 한 놈이 일하기 싫어서 자살했다’고 그랬어요. ‘폐병이 나서 미싱사에 취업이 안 되니까 죽었다’, 그렇게 얘기한 걸 그대로 믿었어요.

1년쯤 지나서 다시 11월 13일이 됐는데, 사장들이 ‘오늘은 일 못하니까 집에 가라’고 그러는 거예요. 평화시장은요, 전기가 나가도 다시 불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하는 곳이예요. 그런데 낮이 아직 밝은데도 집에 가라고 하니 얼마나 놀랐겠어요. 

평화시장 A동과 B동사이를 서성이는데 누가 모란공원에 가자고 하더라고요. 전태일 1주기 추도식을 하더라고요. 그때 처음 전태일 열사가 왜 죽었는지 알았어요. 그러면서 노동조합에 관심이 생겼고요, 그러다 1972년 5월에 노조 야유회에 가면서 활동을 시작했죠. 그때 노조가 전국연합노동조합 청계피복지부예요. 열사 분신 이후에 노조 간부들이 일요일 영업을 단속하고 그랬거든요. 전태일이 왜 죽었나, 우리가 환경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겠다, 우리 머리 수를 늘려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죠.

전태일 씨가 차비 아껴서 노동자들에게 풀빵을 사줬다는 건 다들 많이 아는 이야기잖아요. 그러고 본인은 집까지 걸어갔어요. 그게 12km정도 돼요. 그때는 1번국도로 불렀던 거 같은데, 지금이야 깔끔하게 개발됐지만 당시엔 전부 흙길이었어요. 가로등이나 제대로 있었겠어요? 그 어두컴컴한 시골길을 혼자서 걸었던 거죠.

보통 의지로는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어떤 심정으로 그 길을 걸었을까, 그 마음을 알려면 우리도 직접 걸어보면 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전태일재단에서 퇴근길을 걷는 행사를 하면서 몇 번인가 그 길을 걸었어요.

1970년과 2023년의 전태일 퇴근길은 모습이 많이 달라요. 그때 있던 공장들도 없어졌고요, 버스터미널도 영화관으로 바뀌었죠. 전태일 씨가 살았던 쌍문동도 논밭이 있고 야산에는 공동묘지가 있던 곳이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다 바뀌었잖아요. 노동조합 사무실을 꾸렸던 평화시장 옥상도 그렇고요. 

그 당시에 공부하고 싶었던 평화시장 노동자들이 수도학원을 다녔어요. 검정고시 보려는 거예요. 새벽에 공부하고 평화시장에 와서 일하는 거죠.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또 진고개란 식당도 있어요. 명절에 일하게 될 때는 사장들이 그 식당에 노동자들 데려가서 밥을 사주곤 했던 곳이예요. 고급식당이었거든요.

많이 달라졌고 많이 바뀌었지만, 옛 것이 남아있던 자리를 살펴보고 당시 시대상을 생각해보는 게 중요한 의미가 있을 거예요. 전태일의 퇴근길을 따라 걷는다는 건 그런 의미가 있어요. 

전태일의 퇴근길을 걷는 사람들 모두 각자 일하는 현장이 다르잖아요? 그 길을 걸으면서 ‘나는 내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해보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노동조합을 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방법을 떠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전태일로드가 되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숙희 화섬식품노조 서울봉제인지회 조합원. 사진=송승현
이숙희 화섬식품노조 서울봉제인지회 조합원. 사진=송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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