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전태일열사 53주기 앞둔 10일 ‘전태일로드’ 진행
평화시장부터 쌍문동 208번지까지… 20여 명 함께 걸어
열사의 사상은 현실 경험(평화시장)과 걸으며 떠오른 생각(퇴근길)의 조화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민주노총 조합원 및 일반 시민 20여 명이 이날 행사에 참가했다. 

이숙희 화섬노조 봉제인지회 회계감사와 박준성 역사학연구소 연구원이 해설자로 참여했다. 1970년대 청계 피복노조에서 교선부장을 맡았던 이숙희 감사는 열사의 퇴근길을 몇 차례 걸어본 적이 있다. 열사가 분신한 뒤 열사의 집을 자주 찾으며 이소선 어머니와도 함께 활동했던 이숙희 감사는 전태일의 퇴근길에 얽힌 열사의 이야기를 전했고, 박준성 연구원은 열사의 퇴근길에 얽힌 서울의 1970~1980년대 상황을 들려줬다.

전태일로드는 이날 오전 11시 전태일동상이 자리한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출발했다. 청계피복노조 사무실이 있던 평화시장 옥상을 출발해 평화시장 5번 게이트 앞 분신 자리 동판, 메리어트 호텔, 동대문신발도매상가 B동, 진고개, 수도학원, 대지극장, 신일고등학교, 쌍문동 전태일 길, 옛 쌍문동 208번지(현 도봉구 쌍문동 56번지 삼익아파트)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전태일의 퇴근길은 언급된 장소를 제외하면 서울 중심에서 북동쪽으로 향하는 긴 걸음의 연속이다. 전태일 열사가 차비를 털어 끼니를 때울 여력이 없는 평화시장 여성노동자들에게 풀빵을 사주곤 혼자서 터벅터벅 걸었을 길이다. 열사가 길을 걸었던 1970년대와 2023년의 퇴근길은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서울의 급속한 도시화, 산업화를 상징했던 공장들은 없어졌고 생산된 물건을 각 지역으로 날랐던 버스터미널도 사라졌다. 전철역도 위치를 옮겼다.

“차비를 아껴서 노동자들에게 풀빵을 사줬다는 건 다들 많이 아는 이야기잖아요. 그러고 본인은 집까지 걸어갔어요. 그게 12km정도 돼요. … 전태일 씨가 살았던 쌍문동도 모습이 많이 바뀌었죠. 당시엔 논밭이 있고 야산에는 공동묘지나 망부석이 있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다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잖아요.”(해설자 이숙희)
“평화시장은 월남한 사람들이 모여 보따리장사를 하다가 점차 건물이 들어선 곳이예요. 전태일 열사 사후에 동대문 인근에 고속터미널이 생겨 평화시장 등에서 생산된 물품이 이곳에서 전국 각 지역으로 판매됐거든요. 동대문은 서울 전차의 종착지이기도 했는데, 1968년 전차가 공식적으로 사라지면서 1960~70년대 서울 주요 교통수단으로 버스가 떠오르던 시기였죠. 당연히 버스차장도 평화시장 미싱사 만큼이나 여성노동자들의 주요 취업처였다.” (해설자 박준성)

‘전태일로드’는 지금이야 깔끔하게 단장된 큰 길이지만, 1970년대엔 13km가 넘었을 구불구불한 시골길이었을 거라고 전해진다. 가로등이나 제대로 있었을지 모를 논밭을 지나던 길이다. 늦은 밤 일을 마치고 집을 향해 걷다 보면 전태일 열사는 통금에 걸리기도 일쑤였다. 당시 열사가 통금에 자주 걸렸던 파출소는 정확한 위치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신일고등학교 정문 옆에 위치한 미아지구대 동화치안센터가 당시 파출소로부터 가장 가까운 파출소였을 거라 추측된다.

“전태일 열사가 자주 통금에 걸리니 얼굴이 익은 순경들은 통행허가증을 발급해주기도 했어요. 그러다 더 안면이 익으면 그냥 보내주기도 했다더라고요. 통금시간은 조선시대에도 있었습니다. 당시엔 밤 9시부터 새벽 3시 정도까지였고, 시간이 점차 줄어 한국전쟁 뒤엔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로 바뀌었어요.” (해설자 박준성)
“그래도 일부 순경들은 정감이 있는 사람들이었는지, 통행허가증에 서명을 해줬대요. 그러면 새벽 4시까지 파출소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됐던 거죠. 당시 전태일 씨가 잡혔던 파출소가 정확히 어딘지 찾을 수 없지만 이곳(신일고등학교 정문) 근처에 있던 파출소로 알려져있어요.” (해설자 이숙희)

어두컴컴한, 긴 퇴근길을 걷는 동안 전태일 열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열사는 생전 수많은 생각과 계획, 문제의식을 일기 형태로 남겨놓았다. 그 일기는 훗날 조정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의 밑바탕이 됐고, 당시 열사의 고민들은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친구들에게 이어져 청계피복노조 출범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53년이 지난 현재, 민주노총을 비롯한 전 사회적 노동자들에게 노동운동의 표상으로 남았다.

“1970년대와는 많이 달라졌어요. 많이 바뀌었고요. 그래도 옛 것이 남아있던 자리를 살펴보고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해보는 게 중요한 의미가 있을 거예요. 전태일의 퇴근길을 따라 걷는다는 건 그런 의미가 있어요. 퇴근길을 걸으면서 ‘나는 내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해보면 좋겠어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잖아요?” (해설자 이숙희)
“길을 걸으면 생각을 하게 돼요. 아마 전태일 열사도 이 먼 길을 걸으면서 수없이 많은 구상과 결심이 오고가지 않았을까요? 노동환경을 바꿔야겠다는 결심부터 모범회사를 만들겠다는 구상 같은 것들이요. 그러니 퇴근길이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을 거예요. 전태일 열사가 가진 사상의 출서는 아마 현실에서의 경험(평화시장)과 길을 걸으며 떠오른 생각(퇴근길)이 조화된 결과일 거예요. 길을 걸으며 생각하고, 그 생각을 글쓰기로 정리했던 과정이 있었으니 스물셋이란 짧은 삶을 주어진 대로 살지 않고 의지대로 살고자 하는 풍부함으로 채워졌던 것 같아요.” (해설자 박준성)

‘전태일로드’는 전태일 열사가 살았던 옛 쌍문동 208번지 기념비에서 끝을 맺었다. 해설자 이숙희 감사는 1969년부터 평화시장에서 일했다. 이듬해 열사가 분신했고 2년 지나 1972년부터 청계피복노조 활동을 시작했다. 그때마다 이소선 어머니가 살았던 쌍문동 208번지를 자주 찾았던 일화를 소개했다. 박준성 위원은 길을 걷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보는 말을 남겼다. 

참가자들은 1970년 8월 9일 남긴 열사의 세 번째 유서를 한 줄씩 낭독하는 것으로 이날 행사를 마무리헀다. ‘전태일로드’를 기획한 민주노총 교육원은 올해 첫 전태일로드를 바탕으로 이후에도 전태일 열사의 생각과 발자취를 되새겨보는 기회를 마련할 예정이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작 완전에 아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生)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의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1970년 8월 9일, 전태일 열사의 세 번째 유서)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청계피복노조 사무실이 있던 평화시장 옥상으로 향하는 길.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청계피복노조 사무실이 있던 평화시장 옥상으로 향하는 길.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전태일로드’ 해설을 맡은 이숙희 화섬식품노조 봉제인지회 회계감사.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전태일로드’ 해설을 맡은 이숙희 화섬식품노조 봉제인지회 회계감사.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해설을 맡은 박준성 역사학연구소 연구원.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해설을 맡은 박준성 역사학연구소 연구원.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옛 청계피복노조 사무실 앞에 선 ‘전태일로드’ 참가자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옛 청계피복노조 사무실 앞에 선 ‘전태일로드’ 참가자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낮보다 밤에 활발한 평화시장. 1970년대 평화시장은 지금과 달리 매장이 아닌 작은 공장들이 가득했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낮보다 밤에 활발한 평화시장. 1970년대 평화시장은 지금과 달리 매장이 아닌 작은 공장들이 가득했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자리임을 나타내는 동판.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자리임을 나타내는 동판.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몸에 신나를 끼얹은 전태일 열사는 평화시장 5번 게이트 앞을 나와 몸에 불을 붙인 뒤 동판이 있는 자리에서 쓰러졌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몸에 신나를 끼얹은 전태일 열사는 평화시장 5번 게이트 앞을 나와 몸에 불을 붙인 뒤 동판이 있는 자리에서 쓰러졌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옮긴 피복노조 사무실이 있던 동대문신발도매상가 건물. A동 뒤에 B동이 있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옮긴 피복노조 사무실이 있던 동대문신발도매상가 건물. A동 뒤에 B동이 있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지금의 메리어트 호텔 자리에는 당시 전차 차고가 있었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지금의 메리어트 호텔 자리에는 당시 전차 차고가 있었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값 비싼 식당인 진고개 갈비탕 한 그릇은 명절 대목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임금을 대신하곤 했다. 그나마도 사장 나름이었다고.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값 비싼 식당인 진고개 갈비탕 한 그릇은 명절 대목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임금을 대신하곤 했다. 그나마도 사장 나름이었다고.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딸은 공부하지 않아도 돼’라는 사고방식이 팽배했던 시기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들은 수도학원에서 공부를 해 검정고시 시험을 많이 치렀다. 제 살을 깎고 잠을 줄여가며 노동자들이 공부에 매진했던 현장.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딸은 공부하지 않아도 돼’라는 사고방식이 팽배했던 시기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들은 수도학원에서 공부를 해 검정고시 시험을 많이 치렀다. 제 살을 깎고 잠을 줄여가며 노동자들이 공부에 매진했던 현장.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전태일로드’를 걷는 사람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전태일로드’를 걷는 사람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대지극장. 긴 퇴근길을 걷던 전태일 열사는 당시 포천이나 의정부에서 나오는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던 대지극장(현 CGV) 인근에서는 한숨 돌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군인들이 많아 해장국집이나 숙박업소가 많았던 동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대지극장. 긴 퇴근길을 걷던 전태일 열사는 당시 포천이나 의정부에서 나오는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던 대지극장(현 CGV) 인근에서는 한숨 돌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군인들이 많아 해장국집이나 숙박업소가 많았던 동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신일고등학교 옆에 자리한 미아지구대 동화치안센터. 당시 통금에 걸린 전태일 열사가 붙잡혔던 파출소로 추정된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신일고등학교 옆에 자리한 미아지구대 동화치안센터. 당시 통금에 걸린 전태일 열사가 붙잡혔던 파출소로 추정된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전태일로드’ 참가자들은 수유역 인근에서 휴식을 취하며 풀빵과 국화빵, 붕어빵에 대한 일화를 듣기도 했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전태일로드’ 참가자들은 수유역 인근에서 휴식을 취하며 풀빵과 국화빵, 붕어빵에 대한 일화를 듣기도 했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전태일 길’을 걷는 사람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전태일 길’을 걷는 사람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삼익세라믹아파트 112동. 열사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삼익세라믹아파트 112동. 열사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옛 쌍문동 208번지임을 나타내는 기념비. 이곳에 열사와 이소선 어머니, 가족들이 살았던 헌 집이 자리했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옛 쌍문동 208번지임을 나타내는 기념비. 이곳에 열사와 이소선 어머니, 가족들이 살았던 헌 집이 자리했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전태일로드’ 마지막 일정으로 1970년 8월 9일 열사가 남긴 세 번째 유서를 한 문장씩 낭독하는 참가자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전태일로드’ 마지막 일정으로 1970년 8월 9일 열사가 남긴 세 번째 유서를 한 문장씩 낭독하는 참가자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전태일로드’ 12km를 걸어온 참가자들. 사진=송승현
전태일열사 5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민주노총이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부터 성북 쌍문동 208번지까지 전태일의 퇴근길 12km를 따라걷는 ‘전태일로드’를 진행했다. ‘전태일로드’ 12km를 걸어온 참가자들. 사진=송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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