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우체국 남상명 집배노동자 인터뷰

10년간 집배 노동자 사망만 185명

"과로사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살인적인 노동강도"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동조합 남상명 조합원 ⓒ 김한주 기자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동조합 남상명 조합원 ⓒ 김한주 기자

12년 전 남상명 집배원은 퇴근하자마자 쓰러졌다. 유독 집배원에게 자주 나타난다는 뇌출혈이었다. 당시 남 씨는 밤 8시까지 야근하는 나날을 견디고 있었다. 그만큼 뇌출혈은 집배원의 장시간·중노동과 개연성이 있었다. 하지만 남 씨는 호소할 곳이 없었다. 민주노조도 없었고, 회사는 산업재해 인정 절차를 알려주지도 않았다. 결국 남 씨는 산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머리에 큰 흉터만 남겼다. 이듬해, 같은 우체국에서 일하던 동료도 뇌출혈로 쓰러졌다. 남 씨는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12년이 지난 지금, 남 씨가 갖는 산재 공포는 여전하다. 그런데도 ‘죽음의 질주’는 멈추질 않는다. 질주하지 않으면 집배 물량을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중대재해를 방치했다. 2010년부터 지난 2월까지 사망한 집배 노동자는 185명에 달한다. 2016년부터 지난 4월까지 과로자살은 8명, 사고사는 16명, 돌연사는 22명에 이른다. ‘집배원 노동조건개선 기획추진단’에 따르면 집배 노동자 연평균 노동시간은 2,745시간. 국내 임금노동자 2,052시간보다 34% 많다. 집배 노동자가 다른 노동자보다 87일을 더 일한 셈이다. 언론은 집배 노동을 ‘살인 노동’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뇌출혈로 쓰러진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습니다. 지금도 뇌출혈, 과로사하는 집배 노동자가 많아요. 저도 교통사고를 1년에 한두 번씩 겪어요. 무릎에 흉터가 가득해요.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퇴근 시간 전까지 일을 마치려면 속도를 높이거나 골목을 가로질러야 합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퇴근 시간을 넘기면 시간 외 수당을 안 줘요. 또 시간 외 수당을 통제하고 있으니 더 위험하게 일하고요. 악순환의 반복입니다.

우정사업본부는 2017년 ‘집배 부하량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이 집배 노동자의 목을 더 죄고 있다고 남 씨는 토로했다. 시스템에 따르면 편지 한 통에 2.1초. 택배는 30.7초에 완료해야 한다. ‘집배 컨베이어벨트’를 더 빨리 돌리겠다는 우정사업본부의 속셈이었다. 20년이나 일한 ‘베테랑’ 집배 노동자 남 씨도 이 시스템을 따라갈 수 없다고 전했다. 당연히 노동자들이 반발했다. 그러자 지난 7월 한국노총 우정노조는 사측과 업무 강도 시스템을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대안을 마련할 때까지 업무 강도 시스템을 유지한다’는 단서조항이 붙었다. 허울뿐인 합의였다.

최근엔 인원 감축도 이뤄졌다. 서울의 경우 각 우체국에서 평균 3명이 줄었다. 남겨진 물량은 기존 노동자가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주 52시간제는 무용지물이었다. 정해진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집배 노동자들은 새벽에 출근하고 늦은 밤까지 일하는 형국이다. 지금도 남 씨는 은평구에서 3000세대를 맡고 있다. 하루에 방문하는 곳만 200가구에 달한다. 이것도 다른 집배 노동자에 비해 많은 수준이 아니라고 남 씨는 전했다.

남 씨의 가장 큰 불만은 토요일 집배였다. 남 씨는 이를 거부했다가 징계까지 당했다. 단체협약상 토요 집배는 노조 또는 노동자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사안이다. 그런데 사측은 남 씨의 토요 집배를 지시했고, 남 씨는 권리 행사 차원에서 이를 거부했다. 우정사업본부는 4월 10일 남 씨에 대해 ‘공무원 복종 의무 위반’으로 징계를 내렸다. 남 씨는 징계에 따라 1개월 급여가 3분의 1이나 줄었고, 각종 수당도 받지 못했다. 진급에서 누락됐으며 전보 발령을 당했다. 남 씨는 부당 징계에 대한 소청심사위원회 절차를 밟는 중이다.

죽음을 막기 위한 노동자들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전국민주우체국본부 조합원들은 중대재해를 근절하라며 인력 충원을 요구하고 있다. 집배 부하량 시스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원하고 있다.

저는 산재 위험을 안고 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당사자입니다. 집배 노동자이면서 감정 노동자이기도 해요. 많은 집배 노동자가 과로사를 겪는데 심리적 스트레스가 많은 영향을 주고 있어요. 몇 시까지 집배를 끝내야 한다는 압박, 쏟아지는 민원 응대. 이 요구를 다 맞추면 과로사에 내몰릴 수밖에 없어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민 청원이 10만을 완료해서 국회가 논의할 예정인데,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비상식을 상식으로 바꾸는 일이에요. 수익사업과 비용 절감보다 사람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정사업본부는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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