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률단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책임져야 할 사람은 빠져나가…노동자만 위험 감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참사 방치한 공무원도 처벌 가능”

노동법률단체들이 21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했다. ⓒ 김한주 기자
노동법률단체들이 21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했다. ⓒ 김한주 기자

현직 노동법률가들이 한국의 산업재해 현실을 규탄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에선 산재로 한해 2400명이 목숨을 잃는다. 하루에 노동자 7명이 출근해서 퇴근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노동건강연대에 따르면 한국과 비슷한 소득 수준을 가진 나라는 한국의 5분의 1 수준의 산재사망률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민변,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은 21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업처벌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노동법률가들은 “고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한 지 20개월이 지나서야 검찰은 서부발전 대표 등 1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기소가 이뤄졌어도 법원이 엄정하게 심판할지 조마조마한 심정이다. 어제까지 살아있던 사람이 오늘 갑자기 죽어도 과연 처벌이 제대로 이뤄질지 걱정해야 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동법률가들은 이런 현실이 개탄스럽고, 또 분노를 느낀다”며 “오랜 시간 위험의 외주화가 이뤄지고, 책임져야 할 사람이 빠져나가는 걸 두 눈으로 봤다. 노동 현장뿐만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도 구조적인 면에서 산재사고와 유사점이 있다. 위험을 만들고도 이익을 보는 사람은 법망을 빠져나간다. 반면 위험을 받아들인 사람은 피해를 호소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금속노조 법률원 박준성 노무사. ⓒ 김한주 기자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금속노조 법률원 박준성 노무사. ⓒ 김한주 기자

기자회견에 참석한 금속노조 법률원 박준성 노무사는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가 855명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수를 더하면 1천 명이 넘는다. 그런데 노동부는 전년도보다 산재 사망자 수가 줄었다며 자화자찬했다”며 “산재는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전염병이다. 지난 4월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로 38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 사업주는 벌금 2천만 원을 냈다. 노동자 한 명의 목숨값이 50만 원이다. 기업 입장에서 노동자가 죽지 않는 일터를 만드는 비용보다 한 사람 목숨값이 더 싸다는 뜻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으로 이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의 최진수 노무사는 “지금까지 있었던 많은 사고는 모두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막지 못한 이유는 기업이 생명보다 비용과 시간의 문제를 더 중요하게 뒀기 때문이다. 한국은 생명을 보호할 권리를 우선시하고 있다. 그런데 기업이 가장 앞선 권리를 침해하는 사고를 냈을 때 사업주는 약소한 벌금만 낸다. 처벌받지도 않는다. 정부와 한국의 법이 중대재해를 방조하고 공모했다고 과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산재를 일으킨 기업과 경영책임자만 처벌하는 게 아니다.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아 재해를 일으킨 공무원도 처벌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같은 사회적 재난에서도 정부, 공무원에게 책임을 부여하는 법 취지다.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 허경주 공동대표는 “정부는 스텔라데이지호 심해 수색 결과 유해를 발견했는데도 수습해오지 않았다. 외교부는 유족의 지적에 ‘심해수색 계약에 유해 수습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했다. 외교부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고 용납할 수도 없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참사와 재난을 사실상 용인한 공무원에게도 책임을 부여하는 법이다. 기업처벌법 제정으로 사회가 생명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기업처벌법 제정 국민동의청원도 10만 달성 목표를 앞두고 있다. 21일 오후 12시 40분 기준 동의자 수는 97,684명이다. 청원이 10만 명을 넘어서면 해당 법률 제정안은 국회 상임위원회로 자동 회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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