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4일, 구미의 한 공장에 불이 났다. 150여 명이 일하던 공장에 난 화재로 회사는 화재보험금 1,300억을 받았다. 안 그래도 일본 기업을 구미에 유치하기 위해 20년간 1만2천 평 땅을 무료로 임대하던 구미시의 제도로 혜택을 받고 들어온 일본 기업이었다. Nitto의 계열사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다. 불이 난 지 한 달 만에 회사는 화재보상금만 받고 공장을 청산하겠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문자로 통보받았다. 약 130명의 노동자는 희망퇴직하고 떠났지만 13명의 노동자는 남았다. 공장을 지키며 '고용안정 쟁취' 외치고 있다.
집회 한번 안 해봤다는 노동조합, 노동조합 사무실엔 명절 선물 받으러만 와봤다는 조합원들이 약 10개월간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엔 쭈뼛대고 창피해했으나 지금은 사측의 강도 높은 압박을 견디며 싸우고 있다. 이들을 한 명씩 만나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편집자주]

어느 노조에서나 사무장의 역할은 중요하다. 일정을 짜고 필요한 물품과 예산을 조정하고 수십 곳에서 연락을 받는다. 조합원들은 지회장에게 말하기 어려운 걸 사무장에게 말하며 뭔가를 부탁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게 사무장의 역할이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조합의 유성화 사무장도 예외는 아니다. 쉴 새 없이 투덜거리면서 쉴 새 없이 일한다. 열심히 일하는 버전의 투덜이 스머프 같은 사람은 어쩌다 투쟁에 합류하게 됐을까. 어떻게 투쟁하고 있을까. 지금은 어떤 마음을 갖고 있을까. 궁금했다. 지난 9월, 유성화 사무장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2008년 10월 25일, 성화 씨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 입사했다. 당시 성화 씨는 파주에 살고 있었는데, 마침 옵티칼은 파주에 사는 사람을 뽑고 있었다. 파주에 있는 LG Display(이하 LGD)로 출퇴근하면서 일할 사람이 필요했던 거다. 옵티칼은 생산한 필름을 LGD에 공급하고 있었는데 아예 파주 LGD로 출퇴근해서 불량 분석을 할 사람이 필요했다. 성화 씨는 현미경으로 필름을 들여다보는 일을 했다. 제품을 만들 때 LGD에서 만든 것과 옵티칼에서 만든 필름을 같이 부착하는데, 불량이 생기면 어디에서 만든 제품이 문제인지 분석해서 해당 불량에 대한 비용을 각 업체가 책임지게 하는 방식이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12시간씩 일했지만, 일은 그리 힘들지 않았고 성화 씨는 회사가 마음에 들었다.

2016년 11월 25일, 옵티칼에 노동조합이 생겼다. 성화 씨는 처음엔 딱히 가입 생각이 없었다. 파주에 있는 반장이 구미 공장 반장과 통화했다.

“이거 노조 가입 안 하면 불이익 있어요?” 
“음 가입하는 건 개인 선택이긴한데 뭐... (불이익)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성화 씨는 동료들과 함께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얼마 지나지 않은 2017년 초, 옵티칼이 파주 LGD에서 일하던 직원 모두 구미로 이동하라고 했다. 노동조합이 생겼으니 LGD에서 다 나가라고 했다는 게 옵티칼의 설명이었다. LGD가 직접 설명해준 게 아니니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LGD는 혹여나 옵티칼 노동조합과 엮이는 일이 생길 것이 두려워서 전부 내보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옵티칼의 노동자들이 나간 자리를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금방 채웠다. 

약 20명의 노동자 중 약 5명만 구미로 왔고 나머지는 그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없어서 그만두었다. 구미로 오고 나서도 2명은 금방 그만두었다. 파주에서 온 노동자는 3명만 남았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다들 흩어져서 좀 허전하지 않았어요?’라는 질문에 성화 씨는 ‘별로’라고 답했다. 새로운 지역과 일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탓이 허전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새로운 일도 힘들고 사람들도 힘들었다.

2017년 2월, 구미로 온 성화 씨는 크린머신기 작업부터 시작했다. 필름을 기계에 올려두면, 롤러 사이로 필름이 들어가면서 붙어있던 이물질을 롤러가 제거하는 작업이었다. 성화 씨는 필름이 롤러로 잘 들어가도록 컨베이어에 필름을 올리는 일을 했다. 2인 1조로 하는 일이라서 20대 초반의 다른 직원과 함께 했는데, 잔소리가 보통이 아니었다. 텃세가 심했다. 성화 씨는 파주에서 9년이나 일하고 왔지만 ‘구미는 처음이니까 신입’이라며 ‘왜 이렇게 느리냐’, ‘똑바로 안 하냐’는 식으로 말하며 괴롭힘을 당했다. 성화 씨가 받는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더 심했다. 당시만 해도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이 아니었는데, 그때부터 집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금방 다른 공정으로 이동하긴 했으나 텃세 부리는 사람들에 대한 스트레스는 계속 있었다.

2019년 1월, 회사는 희망퇴직을 받겠다고 하면서도 목표 인원을 못 채우면 정리해고도 할 거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정리해고의 기준까지 명시했는데 ‘근속연수’, ‘부양가족 수’의 점수 비중이 컸다. 성화 씨는 당시 12년 차에 결혼해서 아내도 있고 아이도 둘이나 있었다. 계산해보니 정리해고를 하더라도 자신이 잘릴 거 같진 않았다. 성화 씨는 회사가 그러든가 말든가 희망퇴직을 신경 쓰지 않았다. 희망퇴직 후, 자신을 괴롭히던 직원들이 다 사라지니까 오히려 편하기도 했다. 2020년에 또 이루어진 희망퇴직에서도 성화 씨는 점수가 높았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았고 전체 노동자가 56명으로 떨어지고 나니 업무량이 다소 많아졌다는 피로감이 생긴 정도였다.

2022년 10월 4일 오후 5시 20분, 성화 씨는 공장 앞 흡연 장소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5시부터 5시 30분까지가 식사 시간이었다. ‘이제 이거만 피고 들어가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4명쯤 되는 사람들이 공장에서 뛰쳐나왔다. ‘뭐야? 지금 담배 피려고 저러나?’하고 갸웃거렸다. 사람들은 화재 비상벨이 울려서 고민하다가 나왔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던 중 성화 씨의 핸드폰이 울렸다. 생산부장의 전화였다. “성화야, 공장에 불났다. 애들 다 나오게 하고 인원 확인 좀 해줘” 성화 씨는 급하게 사람들에게 전화했고 빨리 공장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소방차가 왔고 소방관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상황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다들 공장을 쳐다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공장 가운데 쪽에서 구름 모양으로 엄청난 양의 검은 연기가 솟구쳤다. 천장이 무너지면서 공장 안에 갇혀있던 연기가 한 번에 빠져나온 거였다. 연기는 계속해서 뭉게뭉게 올라왔고 점점 불꽃도 보였다.

소방전문가가 아닌 성화 씨가 보기에도 보통 불이 아니었다. 소방관들이 물을 뿌리고는 있지만 다른 공장이나 나무 등에 옮겨붙지 않게 하는 정도였다. 주변부만 신경 쓸 뿐, 중심부엔 아예 물을 쓰지 않았다. 성화 씨는 5시간을 가만히 서서 쳐다봤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중간에 관리자가 와서 다들 집에 가도 된다고 했지만 집에 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들 가만히 서서 어찌하질 못하고 그저 거대한 불꽃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성화 씨도 애가 타서 담배만 피울 뿐, 떠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불길을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속으로 ‘X됐다...X됐다...’만 반복해서 생각했다.

회사는 한 달간 기다리라고 했고 노동조합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대의원이었던 성화 씨도 합류했다. 매일 노동조합 사무실로 나왔다. 약 열 명의 조합원이 매일 회의했으나 뾰족한 수가 나올 리 만무했고 어디서 들은 소문이나 공유할 뿐이었다.

11월 4일, 회사는 청산하겠다고 문자를 보냈고 성화 씨는 멍해졌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실감이 안 났다. 노동조합의 투쟁 권유에 성화 씨는 생각했다. ‘평택 공장으로 고용 승계돼서 가는 게 어려울 리가 없다’ 니토가 운영하는 똑같은 공장이 평택에도 있었다. 그 공장으로 고용 승계되어서 가면 될 일이었다. 900명 규모의 공장이라고 들었는데 10명 겨우 넘는 인원을 안 받아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옵티칼에 입사하기 전에도 성화 씨는 직장 때문에 구미, 대구, 김포, 파주 등 여러 지역을 다닌 경험이 있었다. 평택 가길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회사는 고용승계 거절을 넘어, 노동조합 무시와 탄압으로 지금까지 일관했다.

성화 씨는 투쟁하면서 힘든 일이 생겨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굴착기가 노조 사무실을 부수겠다고 왔을 때 겁나지 않았냐고 묻자, 성화 씨는 ‘뭐가요?’라고 답했다. 정말로 뭐가 겁나는 건지 몰라서 되물은 거였다. 성화 씨는 단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서울 투쟁에 연대 가던 길에 들었다. 하루종일 머릿속에 맴돌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물었을 때도 ‘아뇨’라고 간단히 답했다. 성화 씨는 어릴 때부터 성격이 덤덤했다. 공장에 불이 나거나 청산 문자를 받는 수준의 일이 아니라면 성화 씨는 항상 덤덤했다.

성화 씨에게 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이유가 있는지 묻자, 침착하게 ‘갈 때까지 가려고요’라고 답했다. 성화 씨가 말하는 ‘갈 때’는 ‘끝까지 싸우겠다’는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평택으로 고용 승계되는 때가 ‘갈 때’다. 성화 씨의 ‘갈 때’는 정해져 있다. 그때가 아니면 떠나지 않을 거다. 그렇게 계획했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쭉 싸우겠다는 게 성화 씨의 생각이다.

성화 씨를 인터뷰하면서 인간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한국의 많은 노동자는 ‘노동자’보단 ‘직장인’에 가깝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직장을 다니는 것일 뿐 직장을 사랑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정리해고 통지가 붙으면 ‘내’가 해당할지 아닐지만 생각한다. 나는 남았고 직장 동료가 잘렸을 땐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회사를 감성적으로 다니냐’, ‘여기가 학교인 줄 알아? 정신 똑바로 차려’, ‘직장은 전쟁터야’라는 말은 지혜로운 직장인의 명언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직장에 불이 나거나 청산해버리는 등 직접적이고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직장인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노동자’로 정체성을 바꿔서 싸울 것인가. ‘직장인’ 정체성을 유지해서 빨리 다른 직장을 알아볼 것인가. 지금의 성화 씨는 노동자에 살짝 기울어져 있되, 아직 그 중간에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언젠가 ‘갈 때’가 돼서 평택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성화 씨는 어떤 선택을 할까? 노동자 정체성이 공고해질지, 직장인 정체성으로 돌아갈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궁금하다. 미래의 성화 씨가 궁금해서라도 옵티칼 투쟁이 하루빨리 승리하도록 힘을 보태야겠다는 다소 엉뚱한 결론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