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을 한다는 건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고, 관계가 바뀐다. 평범했던 일상은 흔들린다. 세상의 비난과 손가락질에 맞서는 용기도 필요하다. 하물며 ‘남의’ 나라에서라면 더욱. 2003년 11월 15일 서울 도심 한 가운데 명동성당 들머리. ‘단속추방 중단!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를 요구하며 380일 동안 농성했던 미등록 노동자들에게 이 투쟁은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

20년 지난 후, 당시 농성에 참여했던 다섯 명에게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투쟁문화제가 있는 곳이면 머리띠를 묶고 무대에 올라 춤을 추었던 선주(본프렘 씽)는 네팔로 돌아가 커피 재배가공업을 하고 있다. 농성단에서 말 잘하는 걸로 둘째가라면 서러웠을 라주(아쉬라풀 이슬람)는 방글라데시로 돌아가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농성단 투쟁국장을 맡았던 자이드(사이드 무나)는 방글라데시로 돌아가 방송국 일을 하다가 해고되었다. 현재는 건설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자이드와 함께 투쟁국장을 맡았던 마문(섹알 마문)은 한국에서 결혼 이주민으로, 현재 이주노조(MTU) 수석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농성단 대표 서머르(서머르 타파)는 혜화동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던 중 표적 단속으로 체포되어 강제 출국당했다. 네팔로 돌아가서 노동운동, 사회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을 하고 있다.

2003년 11월 15일 농성에 처음 참여할 때 어떤 마음이었나?

선주 : 1999년에 연수생 비자로 한국에 왔다. 그때는 한국에 가려면 천만 원 가까이 돈이 필요했다. 돈이 없어 빌려서 한국에 가는데, 이자도 줘야 했다. 3년 동안 그 돈을 다 벌 수 없으니 미등록 상태가 되었다. 그때 우리 최저임금이 19만 원이었다. 연수생 계약서에는 ‘6시간은 일하고 2시간은 관련된 곳에서 공부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야근할 때는 14시간, 주간일 때는 11시간씩 일했다. 야간수당, 연장수당 같은 건 아예 없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자가 아니라 연수생이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다치거나 죽어도 산재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3년 한국 정부가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을 법무부, 경찰 등 부처간 합동단속을 해서 나라로 추방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24시간 단속해서 미등록 상태에 있으면 언제든 잡아갈 수 있다고 했다. 답답해서 심장병 있는 사람들은 그냥 죽기도 했다. 불법체류자들에게는 일을 안 준다고 하니 자살하는 사람도 많았고 단속추방을 피해 도망가다가 다쳐서 죽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우리도 단속추방을 피해 방을 하나 얻어 방 안에만 있었다. 2~3주 정도 있으니까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돈도 없고 일도 없고. 어떤 친구가 명동성당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합법화하고 노동 비자를 달라는 요구를 하면서 농성하고 있다고 해서 명동성당 농성단에 참가하게 되었다.

라주 : 나는 평등노조 이주지부(ETU-MB)에서 직접 활동은 하지 않았다. 안산에 있는 이주노동자 센터에도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모였다. 단속이 심해져 일자리도 없고, 사장님도 월급 안 주고 그냥 나가라고 이야기하고, ‘집에 가야 하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생각에는 ‘가기 전에 끝까지 한번 해보자’고 생각해서 농성장에 들어왔다. 우리가 정부 인정(합법화) 안 받아도 다음에 올 이주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인정받고 법적으로 합법화해서 노동할 거야, 그렇게 생각해서 내가 농성장에 들어왔다.

서머르 : 네팔 사람들 사이에서도 ‘우리는 불법체류자여서 언제 잡혀 추방될지 모르지만, 우리가 아니라도 새로 올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노동자답게 당당하게 살고, 누려야 할 권리 다 누리면서 살 수 있게 하자’는 생각이 있었다. 이런 생각을 갖고 명동성당에 들어갔다.

마문 : 그 자리에 100명이 있으면 99명이 그런 마음으로 참가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떠나더라도 한국 사회에 이주노동자의 목소리가 보존되도록 하자, 그런 마음이 컸다.

농성에 참여하면서 겪었던 일들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라주 : 스리랑카 다라카 동지, 비꾸 동지 자살했을 때가 아직 머릿속에 있다. 다라카나 비꾸도 어떤 사람의 아빠고 나라에 있는 가족들 위해서 돈 벌었는데. 법은 사람 위해서 있지 않나. 그런데 그 법 때문에 사람이 자살해야 해, 죽어야 해, 그 다음에 농성단 대표 서머르 동지가 이미그레이션(출입국관리소)에 잡혀가는 거 보고 또 마음이 부서지고.

자히드 : 방글라데시는 춥지 않다. 처음에 우리가 명동성당 들어갔을 때, 첫날, 그때 텐트도 안 지어졌고 그냥 바닥에서 이불 하나 덮고 자는데 너무 추워서 ‘아침에 죽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도 했다. 우리가 거기에서 오랫동안 투쟁하고 동지들과 같이 붙어서 자보니까 그렇게 춥지도 않고, 동지들의 몸에서 나는 열에 같이 열 받고 이렇게 잤으니까 너무 큰 투쟁도 우리가 할 수 있었다.

마문 : 아침에 집회할 때도, 저녁 식사를 준비할 때도 사람이 없었는데 저녁 집회를 하려고 보면 어느새 200~300명 명동성당 계단에 앉아있고 그런 게 기억에 남는다.

서머르 : 우리 농성투쟁에 같이 연대해 주셨던 모든 한국 동지들, 한국 학생들, 한국 사회단체들, 종교단체들에서 왔었던 여러분들 모두에게 정말 감사하고 또 앞으로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같이 ‘우리는 노동자, 노동자는 하나다,’ 이런 마음으로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명동성당 농성 투쟁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서머르 : 명동성당에서 집회와 투쟁을 하다 2004년 3월 출입국 직원과 경찰들이 저를 잡았고 여수보호소로 보냈다. 여수보호소에서 31일 동안 단식투쟁을 했고, 2004년 4월 1일 여수보호소에서 네팔로 바로 추방당했다. 네팔에 와서는 네팔 민주노총에서 활동했다. 네팔 이주노동자들을 여러 나라에 가서 조직하는 활동을 10년 동안 했다. 또 지금은 노동운동, 사회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을 하고 있다.

자히드 : 명동성당에 있을 때 우리의 투쟁만이 아닌 다른 많은 투쟁을 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 없는 투쟁을 함께 했다. 여성 투쟁, 장애인 투쟁도 했다. 명동성당 농성투쟁단, 나한테 학교였다.

명동성당 미등록 이주노동자 농성투쟁단에서 투쟁국장이었던 마문(좌). 2023.11.26.에 있었던 농성20주년 기념 집담회 ‘담대한 이주-노동자의 꿈’에 온라인으로 참여해(우) 당시 기억을 전했다.

마문 : 살면서 단순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돈 벌고 결혼하고. 그런데 ‘한국에서 사는 동안 투쟁할 수밖에 없구나’, ‘내 권리를 여기서 내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주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거리를 두고 한국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거리를 두었다. 그런데 한국에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 나를 이용해 먹는 사람도 있지만 나를 친구로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고, 나도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 사회의 시스템이 문제구나. 이 시스템을 바꾸는 길에 뭔가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역할을 하려 하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서머르 : 현재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인권과 권리를 알게 되면 어떤 어려운 점이 생겨도 문제를 잘 해결하면서 당당하게 살 수 있다. 이주노조에 가입하고 이런 걸 배우면 그러면 제일 삶이 변하지 않을까 한다. 이렇게 하면 이주노동자들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까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마문 : 명동성당 미등록 이주노동자 농성투쟁은 이주노동자들의 투쟁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그 결과로 이주노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도, 저도 결혼 이민자다. 이주노동자들이 이주노조에서 간부로 활동해야 하는데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비자 문제가 있다. 간부가 되면 비자가 박탈된다. 이제 더 많은 동지들이 이런 상황을 바꾸는 투쟁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

라주 : 우리 명동성당 농성할 당시에는 10년 동안 고용허가제를 시행하면 나중에 노동허가제가 될 거로 생각했었는데 아직 한참 멀었다. 이주노조 조합원들이 더 열심히 힘을 내서 투쟁하면 노동허가제를 쟁취할 수 있다. 우리는 투쟁할 수밖에 없다. 함께 합시다.

덧붙임 : 11월 26일 오후 2시 강북노동자센터 5층에서는 「집담회 : 담대한 이주-노동자의 꿈」이 개최됐다. 이 자리에는 2003년 명동성당 미등록 이주노동자 농성투쟁 대표였던 서머르 타파(네팔)와 농성단으로 참여한 라주(아쉬라풀 이슬람, 방글라데시), 투쟁국장이었던 섹알 마문 세 사람이 이야기를 풀어놨다. 농성투쟁 20주년을 맞아 한국으로 오지 못한 농성단 중에도 직접 그 생애사적 경험을 찍어 영상으로 보내준 농성단원들이 여럿 있었다. 이번 인터뷰는 이들의 목소리도 일부 발췌하여 함께 엮고 재구성했다. 당시 농성에 참여했던 다른 이주노동자들의 인터뷰는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투쟁 20주년 페이스북(링크)에서 집담회는 유튜브(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