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2004년 380일 동안 이주노동자들의 폭발적인 외침을 터뜨렸던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투쟁으로부터 20년, 이주노동자들의 상황과 처지는 얼마나 나아졌을까.

1993년에 도입되어 숱한 인권유린을 양산하여 ‘노예연수생’제도로 불린 산업연수생제도가 10년이 지났을 때 이주노동자 80퍼센트 가까이가 미등록 체류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더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파도는 바야흐로 노동력을 더욱 유연하게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착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비정규 불안정노동을 확대하면서,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도 구시대적 연수생제도가 아니라 형식적인 법률상의 노동자 지위는 부여하되 순종적으로 일만 하고 내보내는 고용허가제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기존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쓰다 버리는 대상으로 본 정부는 단속추방의 칼날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사업주들은 미등록 노동자를 해고했고, 본국에 가거나 잡혀가야 하는 상황 속에서 절망하여 목숨을 내던지는 노동자들이 속출했다. 잡혀갈 때 가더라도 우리의 존재와 목소리를 알리고 싸우겠다고 농성을 벌인 당시 이주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추방 중단, 전면 합법화, 고용허가제 반대와 노동비자(노동허가제) 실시였다. 이러한 농성 투쟁이 바탕이 되었기에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이 2005년에 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를 만들었고 고용허가제가 실시된 이후에도 이주노동자 권리를 위한 운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고용허가제 : 무권리 일회용 이주노동자 제도

고용허가제의 가장 큰 문제는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업주의 허락 없이 사직을 하면 비자를 잃게 된다. 휴업·폐업, 사업주의 부당한 처우(임금체불, 폭행, 성폭행, 기숙사 규정 위반 등), 근로계약 위반 등의 경우에 노동자가 이를 입증하면 예외적으로 고용센터에서 직권으로 변경을 해줄 수 있지만 한국어와 법제도에 서투른 노동자가 노조나 단체의 도움 없이 그런 절차를 밟기는 극히 어렵다. 고용허가제 실시 당시에는 그나마 1년 단위 계약이어서 1년만 참으면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었는데, 사업주들의 요구를 수용한 정부가 2009년에 법을 개정해 3년 동안 계약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처음 입국한 노동자가 다른 사정이 없는 한 꼼짝없이 3년은 사업주에게 매여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아무 노력 없이도 노동자를 붙잡아 둘 수 있고 맘대로 부릴 수 있는 사업주가 노동조건이나 임금, 기숙사 환경을 개선할 이유가 없다. 결국 사업장 변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노동환경에 대한 이주노동자의 개별적 협상력을 박탈하고, 자의로 사직하면 강제추방 된다는 위협을 통해 노동자를 사업주에게 극단적으로 종속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서 3년 이후 1년 10개월의 재고용(총 4년 10개월) 신청, 4년 10개월 이후 본국에 갔다 와서 다시 일할 수 있는 재입국특례 신청의 권한도 사업주에게만 있다. 고용이 연장되어야 비자도 연장할 수 있고 돈도 더 벌수 있기에, 혹시나 사업주가 이를 신청해주지 않을까봐 이주노동자들은 전전긍긍하게 되고 사업주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사업주에 대한 종속과 순종을 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억압 장치이다. 결국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는 권리를 제기할 권리마저 빼앗긴 채 강제노동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다. (「일회용 노동자: 한국의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보고서)

▲ 국제앰네스티에서 2009년에 「일회용 노동자: 한국의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보고서를 발간하고 이를 바탕으로 권리보장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 국제앰네스티에서 2009년에 「일회용 노동자: 한국의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보고서를 발간하고 이를 바탕으로 권리보장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고용허가제에 대한 저항

고용허가제 도입 시기부터 강제 단속추방 정책과 권리를 박탈한 고용허가제 도입에 대한 투쟁이 전개되었고 이는 명동성당 농성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농성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Stop Crackdown!(단속추방 중단하라)”, “Achieve Working Visa!(노동비자 쟁취하자)”, “Oppose EPS!(고용허가제 반대한다)”라는 구호로 대표되는 이주노동자들의 억눌린 분노가 터져 나온 것이었다. 고용허가제가 실시되고 나서도 저항은 지속되었다. 이주노동자운동 진영은 거의 매년 고용허가제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무권리 상태에서의 강제노동을 비판하였다. 예컨대 2014년 고용허가제 10년 평가토론회에서는 고용허가제 하에서도 과도한 송출비용이 여전하고 폭언·폭행, 근로계약 위반, 열악한 기숙사 환경 등 이주노동자가 일상적 차별에 시달리고 있으며 사업장 이동 제한으로 인한 강제노동 등 인권과 노동권 침해가 심각하다고 고발하였다.(이주정책포럼, 「이주노동자 차별과 무권리 고용허가제 10년을 말한다」 자료집, 2014.8.17. 김기돈,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10년, 왜 만신창이가 됐나」)

2012년에 노동부가 일방적으로 사업장 변경 지침을 개악했을 때에는 전국적인 투쟁이 벌어졌다. 즉 기존에는 구직 중인 이주노동자에게 구인업체 명단이 있는 알선장을 주었는데, 이제는 구인노동자 명단을 사업주에게만 제공하여 사업주가 연락하는 방식으로 변경한 것이다. 이는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사업장을 선택할 수 있었던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선택권마저 완전히 박탈하는 조치였다. 전국의 이주노동자운동 단체들은 ‘이주노동자 노예노동 강요하는 고용노동부 지침 철회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여 투쟁하였다. 인터넷, 페이스북, 친구들의 연락 등을 통해 정보를 듣고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하는 이주노동자도 많았다. 9월 23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전국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집회에는 1천여 명이 참가하여 지침 철회와 사업장변경의 자유를 촉구하였다. 고용허가제 하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의 저항이 지속되고 새로운 노동자들이 참여한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운동이었다. 이후에 지침은 철회되지 않았지만 노동부는 고용센터가 1주일에 1-2회 구인 사업장 정보를 휴대폰 문자로 노동자에게 보내주는 것으로 지침을 변경하였다.

사업장 변경 제한은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했다. 2017년 8월 6일 충북 충주의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일을 하던 27살 네팔 노동자 케서브 쉬레스타(Keshav Shrestha)씨가 회사 기숙사 옥상에서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오늘 세상과 작별 인사를 합니다. 제가 세상을 뜨는 이유는 건강 문제와 잠이 오지 않아서 지난 시간 동안 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너무 힘들어서 오늘 이 세상을 떠나기 위해 허락을 받습니다.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도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되었습니다. 제 계좌에 320만원이 있습니다. 이 돈은 제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이주인권단체 공동기자회견 보도자료)

오랜 야간 근무와 12시간 교대근무 등 고된 노동조건으로 인해 건강을 해쳤는데 그 치료마저 마음대로 되지 않고 사업장변경도 안되는 절망적인 상황이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었다. 이주노동자 단체들은 “고용허가제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고 강하게 규탄하였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주거환경이 초래한 또 다른 충격적인 사망 사건은 2020년 12월 캄보디아 노동자 누온 속헹(Nuon Sokkheng)씨의 죽음이었다. 포천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 안 숙소에서 영하 20도에 달하는 한파 속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속헹의 죽음으로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환경 문제가 전 사회적으로 거세게 제기되었다. 오래전부터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고 외쳐 온 운동단체들은 속헹씨 사망사건에 대한 대책위를 결성하여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였다. 정부는 압박에 밀려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 같은 가설건축물에 대해서 고용허가를 불허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지자체에 임시숙소로 등록하는 경우는 가능한 것으로 예외를 두어서 반쪽짜리 대책이 되었다. 여전히 가설건축물 전면금지는 실시되지 않고 있다.

캄보디아 노동자 속헹씨가 비닐하우스 내 숙소에서 사망한 현장에서 대책위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경찰은 질병 사망으로 발표하였으나, 난방이 되지 않았던 숙소에서 한파로 인한 사망이 추후 500일 만에 산업재해로 인정되었다. 사진=이주노조
캄보디아 노동자 속헹씨가 비닐하우스 내 숙소에서 사망한 현장에서 대책위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경찰은 질병 사망으로 발표하였으나, 난방이 되지 않았던 숙소에서 한파로 인한 사망이 추후 500일 만에 산업재해로 인정되었다. 사진=이주노조

Free Job Change! Achieve Work Permit System!

고용허가제 20년을 맞이하는 현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권리 없는 외국인력 양산”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기업들이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요구하는 이주노동자는 확대해서 공급하고 허용 업종도 늘리되 이주노동자 처우나 권리 개선, 체류지원과 인프라 확충은 외면하고 후퇴시키는 것이다.

2022년에는 전년에 비해 고용허가제 입국 쿼터를 두 배로 늘려 12만 명으로 하였고 2023년에는 16만5천 명으로 더욱 늘렸다. 택배 상하차 직종 등 서비스업, 조선업, 한식업, 임업, 광업에 고용허가제를 허용했다. 가사노동자에 대해서는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확대에 필수적인 지원정책은 축소시켰는데 노동부가 민간위탁으로 운영하던 9개 거점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위탁을 중단해서 폐쇄한 것이다. 더욱이 사업장변경 제한에 더해 특정 권역 내에서만 이동할 수 있게 하는 ‘지역제한’까지 추가해서, 이제는 거주이전의 자유까지 침해하는 형국이다. 이주노동자는 말하는 기계가 아니고 개개인의 인격과 개성을 가진 사람이자 권리를 가진 노동자다. 20년 전 이주노동자들의 저항으로 권리를 한걸음씩 진전시켜 온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Free Job Change! Achieve Work Permit System!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보장하라! 노동허가제 실시하라!)”는 이주노동자들의 외침은 명동성당 농성투쟁의 역사와 정신을 이어 지속되고 있다.

2023년 8월 20일에 열린 ‘이주노동자 강제노동 철폐! ILO협약 이행! 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 전국이주노동자대회’ 모습. ILO 강제노동금지협약(제29호협약)이 2022년부터 발효되었는데 고용허가제의 사업장변경 제한은 이에 어긋난다. 사진=이주노조
2023년 8월 20일에 열린 ‘이주노동자 강제노동 철폐! ILO협약 이행! 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 전국이주노동자대회’ 모습. ILO 강제노동금지협약(제29호협약)이 2022년부터 발효되었는데 고용허가제의 사업장변경 제한은 이에 어긋난다. 사진=이주노조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영섭님은 명동성당 농성에 연대활동을 하였으며 현재 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 활동가,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집행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11월 15일부터 12월 17일까지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투쟁 20주년 기념 전시회가 서울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렸습니다. 전시가 끝났지만 VR을 통해 전시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전시와 20주년 리유니온 행사 개최를 위해 소셜펀치 모금도 하고 있으니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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