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기본과제를 이행할 시간

경제위기가 확산하면서 민주노총은 모든 해고 금지와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위기 아래에서 구조조정, 폐업 등으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나 노동조합원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고용이 축소되고 일터에서 쫓겨나는 것을 방어하는데 목적이 있겠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은 정부에 기업 자금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해고금지와 고용유지 의무를 요구했고, 고용문제만을 다루는 원 포인트 노사정위원회도 제안했다. 그런데 정부가 애초에 밝힌 고용유지 의무 부과를 정작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이 조건을 완화해 의무가 아닌 ‘일정 수준의 고용유지 노력’으로 명시했고 민주노총은 고용유지 의무 조건이 개악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공적자금에 고용유지 의무를 부과하는 문제가 결코 가벼운 문제는 아니지만 이것으로는 전체 노동자의 고용을 지킬 수단이 못된다. 최근 항공사 구조조정에서와 같이 고용유지 의무로는 자본에 어떠한 책임도 강제하지 못하고 해고를 막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시아나, 이스타는 물론 대한항공에서도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먼저 해고됐다. 공적자금을 받는 고용유지 의무 대상이 되기 전에 하청 관계를 정리하고 비정규직을 해고한다. 정규직 구조조정으로 확대돼서야 고용유지 지원금이나 공적자금 투입이 얘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의 해고에 대해서는 모든 해고금지가 무색하게 사실상 손도 못 대고 있다. 게다가 이 법은 주로 대기업이 대상이라 결국 대기업과 관련된 고용유지로 제한된다. 해고와 실업 문제만을 놓고 보면 노동조합이 조직된 대공장 구조조정이 크게 문제되고 있지만 이미 도소매, 숙박, 서비스 업종에서 더 광범위하게 해고가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고용보장 요구가 갖는 현실적인 문제는 현재의 고용위기가 자본의 생산성과 경쟁력이 회복되면 극복될 문제로 본다는 점이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수습되더라도 고용문제가 해결될 전망은 없다. 민간기업의 고용기여율은 계속 하락해, 10억 원당 고용인원을 계산하는 고용유발계수는 지난 2000년 13.8에서 2015년 8.1로 낮아졌고, 특히 수출의 유발계수는 11.1에서 5.8로 절반으로 줄었다. 제조업의 경우 제조업 비중 축소와 서비스업 확장 국면에 있기 때문에 제조업 고용량은 앞으로 수년 내에 절반 가까이 줄 전망이다. 게다가 산업재편 가령, 자동차의 전동화 등으로 부품사의 경우 30%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폐업을 하거나) 업종전환을 하지 못하면, 수십 조 원의 공적자금이 투여되고 관리대상 업종으로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기간 동안 정부관리 하에 있어야 한다. 자동차 부품사 뿐 아니라 일부 완성차와 중소형 조선소, 해운선사, 중소형 철강업체는 당면한 현실이다. 위기가 더 깊어지면 더 많은 대형 업체로 확산할 가능성도 높다.

또한 이러한 대응은 지난 20여년 간 계속됐던 구조조정 시기 ‘양보교섭’ 문제를 반복할 우려가 크다. 지금과 같이 자본이 재생산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개별 기업 차원에서 고용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임금이나 노동시간 유연화를 받아들이거나 외주, 하청 등 고용관계를 변화하는데 동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양보교섭으로 치닫는 이런 고용보장 투쟁도 자본이 파산위기에 직면하면 결국 자본이 지불해야 할 비용인 임금을 국가로부터 대신 지원받는 보조금 확대투쟁으로 귀결된다. 기업의 사활이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에 달려 있게 되면 고용보장은 보조금(고용유지지원금) 받는 것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보조금도 (고용유지 의무를 법으로 강제하더라도) 남아 있는 정규직 고용을 유지하는 조건이 된다.

개별 자본의 시장 경쟁력이 회복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고용유지 전략은 현재 상황과도 맞지 않다. 이제는 민간기업의 고용률 하락과 산업재편, 국가의 경제개입 전면화에 맞춰 전체 노동자를 위한 ‘완전고용(full employment)’을 요구하고 투쟁해야 한다. 한국 노동운동 역사에서는 익숙하지 않지만 자본주의와 노동조합의 역사가 오랜 유럽의 노동조합은 그 동안 고용 위기를 여러 차례 겪었고 그 과정에서 ‘완전고용’을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로 사고해 왔다. 가까운 예로 프랑스 노동총연맹(CGT)은 2019년 5월 총회에서 경기침체에 따른 고용위기와 마크롱 정부의 노동조건 개악 시도에 맞서 완전고용을 의미하는 ‘모두를 위한 직업사회보장제(sécurité sociale professionnelle)’ 도입을 촉구하기로 했다(국제노동브리프, 2019년 8월호).

대기업조차 자신의 생존을 위해 국가에 손 내밀고, 정부와 한국은행은 전방위로 돈을 풀어 대기업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이제 국가는 주요 대기업과 기업의 사실상 소유주 또는 주 채권자가 되고 위기가 심화할수록 그 경향은 더 확대되며, 국가가 직접 고용하는 일자리도 확대한다. 정부는 한국형 뉴딜이라는 형태로 6개월 임시직의,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 40만개를 만들어 공급할 계획이다. 이러한 불안정 일자리가 아니라 생산적이고 안정적인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국가고용보장(Job guaranteeing)’ 정책의 전면적 실시를 촉구해야 한다.

또한 공적자금이 투여된 기간산업(재벌)의 부채를 대신 갚아 주고 재벌에 다시 헌납하는 과거의 방식을 반복할게 아니라 이를 국가 또는 공적 소유로 전환해 사회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이것이 기간산업 사회화다. 기간산업 사회화를 통해 원하청 관계의 민주화 및 동일노동-동일임금, 이윤의 사회적 환원 그리고 국가고용 일자리의 확대를 이룰 수 있다. 지금 조성되는 정세는 기간산업을 사회화 할 수 있는 절호의 조건을 제공한다. 정부는 이미 회사채 발행 등을 지원하기 위해 금융시장에서는 125조 원 규모의 지원을 시작했고, 기간산업을 직접 지원하기 위해 40조 원의 공적자금도 마련한다. 민주노총은 이 자금 지원에 고용의무 부과뿐 아니라 공적자금 지원 기업의 사회화 또는 국유화를 요구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강령과 같은 기본과제에서 “우리는 해고와 실업을 방지하고 완전고용과 고용안정을 쟁취한다(13번)”, “재벌에의 경제력 집중을 규제하고 경제의 사회화를 추진한다(17번)”고 밝히고 있다. 기본과제가 장롱면허 같이 죽어 있는 문서조각이 아니라면, 녹슨 칼을 다시 벼리는 심정으로 ‘완전고용 쟁취’와 ‘기간산업 사회화’를 위해 투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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