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전태일 열사 50주기다. 동시에 민주노총 창립 25주년, 광주항쟁 40주기를 맞는 해다. 남다른 사회적 의미와 과제가 있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맞는 2020년은 진정한 성찰과 치열한 토론으로 모두의 미래를 여는 실천의 전환을 준비할 때다. 이에 〈노동과세계〉는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를 필진으로 초대해 그들의 식견과 경험이 담긴 글을 게재한다. [편집자주]

아시아나 항공 매각이 유산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유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스타 항공도 매각무산에 따라 새로운 인수 협상자를 찾거나 그도 안되면 국유화될 가능성이 크다. 아시아나나 이스타 항공 외에도 항공업계는 전체적으로 손실이 누적적으로 커져 자체적으로 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라 기업회생 절차를 거쳐야 하는 기업이 더 늘어날 수 있다.

이때 국유화는 기업 가치의 존속을 유지하고 노동자들의 고용을 지키는 유력한 방안으로 등장한다. 이미 이탈리아와 독일 등 유럽의 주요 항공사들을 정부가 국유화하고 있다. 그런데, 국유화는 두 가지 목적으로 나뉜다. 주주의 손실을 국민 전체의 부담으로 돌리는 ‘손실의 사회화’와 주로 재벌이 소유하던 기간산업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기간산업 사회화’가 그것이다.

최근 항공업계와 금융당국에서 얘기하는 국유화는 ‘기간산업 국유화’가 아니라 ‘손실의 사회화’로서 국유화다. 즉, 대주주가 응당 져야 하는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가(여기서는 주로 산업은행 등 금융당국)가 소유권을 이전받고 부채를 탕감하고 유동자금 등 특혜적 지원을 받아 기업을 정상화하면 다시 다른 재벌이나 원래 대주주에게 아주 저렴하게 또 다른 특혜를 안기며 매각하는 형태를 말한다. 금융당국이 얘기하는 ‘일시적 국유화 조치’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한데, 대표적으로 대우조선을 들 수 있다.

지난해 3월 산업은행이 대주주였던 대우조선을 현대중공업이 인수합병 했는데, 이 합병을 추진하면서 정몽준 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지주 이외에는 그 누구도 현대중공업의 최대 주주에 올라설 수 없도록 했다. 산업은행의 현대중공업 주식 처분에 엄격한 제한을 두었고 산업은행이 보유한 주식 거래가 현대중공업의 최대 주주 변동 등을 초래하는 거래는 금지됐다. 다시 말하면, 정몽준 일가의 경영권을 확실히 보장해 주는 가운데, 13조 원 가까이 공적자금이 들어간 대우조선을 2조7000억 원의 현대중공업 중간 지주 회사의 주식을 받고 대우조선을 넘겨준 것이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대우조선에 투입한 공적자금은 7조 원이 넘고 출자 전환, 영구채 발행을 포함하면 10조3000억 원이다. 유상증자와 자금 지원으로 2조5000억 원이 추가되면 12조8000억 원에 달한다. 현대중공업지주가 이번 합병으로 추가 투자하는 자금은 고작 4천억에서 6천억 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산업은행의 이번 매각은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것도 아니고 주식을 갈아치우는 식이라 산술적으로 따지면 10조 원 손해를 보면서 대우조선 대주주의 권한을 정몽준 일가에 모두 넘긴 것이다.

아시아나 항공이 국유화된다면 거의 똑같은 과정을 거칠 것이라 예상된다. 애초 아시아나 항공 매각 자체가 금호산업 박삼구 회장에 대한 개인 지원의 성격이 더욱 컸다. 산업은행은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그룹의 몸집을 키우는데 소위 ‘뒷배’ 역할을 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전 회장이 10조 원이 넘는 자금을 동원해 2006년과 2008년 당시 국유기업인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각각 인수했다. 대우건설 인수에 6조4000억 원이 들었는데,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가 소유한 정부 지분 인수를 위해 산업은행은 박삼구 회장에게 돈을 빌려줬다. 4조 1,000억 원을 들인 대한통운 인수도 비슷하다. 대한통운 인수 자금을 대우건설에서 끌어다 썼으니 돈을 돌려막기 한 셈이다. 결국 물건을 살 사람이 돈이 없어 파는 사람에게 돈을 빌린 꼴이다. 그렇게 금호그룹이 위기에 처하자 다시 2009년에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이 매물로 나오게 됐는데, 대우건설은 산업은행에서 재인수했다. 캠코에서 산업은행으로, 오른쪽 주머니에서 왼쪽 주머니로 정부 지분이 옮겨간 셈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이렇게 10조 원 넘는 돈을 끌어다 쓰면서 그룹 전체 재무구조가 취약해졌다. 게다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사업이 악화했고 재무구조는 더 위태해졌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결국 2009년 산업은행과 재무 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하면서, 박삼구 회장은 경영악화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지주회사 격인 금호산업을 비롯해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때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재인수에만 3조 2,000억 원가량 들였다, 애초 6조4000억 원을 받고 팔아 3조2,000억 원에 다시 샀으니 그만큼 이득을 본 게 아니냐 싶지만, 그것도 아니다. 금호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대금 6조 4,000억 원 중 4조 원가량을 산업은행 등이 빌려줬기 때문에 서로 적자만 떠안은 것이다. 산업은행이 대우건설을 되사주면서 박삼구의 빚 일부를 갚아 준 꼴이 됐다.

그런데, 박삼구는 그룹 전체를 위기에 빠뜨린 책임으로 물러났지만 2010년에 전문경영인으로 경영에 복귀한다. 바로 ‘기존경영자관리인제도(DIP)’ 때문이다. 2006년 이전 통합도산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법정관리로 들어간 회사 대주주의 주식은 ‘전량 소각’됐다. 대주주 보유주식을 모두 없애 경영권을 바로 박탈했다. 그런데 이렇게 경영권을 박탈하면 회사가 완전히 망하기 전까지는 경영자가 법정관리를 신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2006년 이후 ‘기존경영자관리인제도(DIP)’를 도입해 대주주의 주식을 소각하지 않고 지분을 (일정하게) 유지해 줬다. 경영권이 유지돼야 법정관리를 신청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게 통합도산법에 기업관리자 선임 대상을 '채무자의 대표(채무기업 대표이사)'로 한정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뒀다(법 제74조).

이렇게 복귀한 박삼구에게 채권단은 또 다른 특혜를 약속하는데, 약간의 사재출연으로 우선매수권까지 줘, 2015년 말 박삼구는 7,228억 원에 그룹의 지주회사인 금호산업을 다시 인수하게 된다. 비극은 이때 다시 시작됐다. 그룹을 되찾기 위해 혈안이 된 박삼구는 금호타이어까지 인수하려 무리하게 자금을 끌어다 썼고, 결국 아시아나항공에서 문제가 터져 나왔다. 박삼구는 또다시 회장직을 내려놓고 산업은행이 주축인 채권단과 아시아나항공을 매물로 내놓기로 했고 HDC현대산업개발과 매각 협상을 벌여왔다. 이제 HDC현대산업개발과 매각이 불발되자 산업은행이 지분을 인수해 일시적으로 국유화하고 추후 항공산업이 안정화되면 다시 매각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주주의 손실을 주주에게 부담 지우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에 부담을 지우는 손실의 사회화는 오직 주주 부담의 최소화와 동시에 출자금 회수를 위한 재무구조 개선에만 집중하게 된다. 기업이 어떻게 건실하게 운영되고 관리되는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고, 얼마나 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얼마나 많이 남겼는지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에 기업의 실재 운영에 대해서는 통제가 되지 않는다. 대우조선이 국유화 상태에 있으면서도 대우조선 사장은 자신이 연임되기 위해 분식회계로 실적을 허위로 만들어 돈 잔치를 했다. 때때로 정부의 낙하산 인사의 먹잇감이 되어 아무 관련도 없는 인사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오기도 했다. ‘수익형 국유기업’이라는 미명아래 정부의 감독과 통제를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운영하며 권력의 쌈짓돈 역할을 해 왔다.

또한, 이런 국유화는 비용축소와 수익성 개선에 초점이 맞춰 있어서 일시적 국유화 기간 반드시 고강도의 구조조정을 동반한다.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비용을 줄여야 하고 특히 지금과 같은 수요위축의 시기에는 일반적인 산업과잉 상태보다 구조조정의 강도와 폭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애초 목적이 주주 손실을 덜어주는 국유화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주주 손실의 사회화가 아닌 기간산업을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국민을 위한 국유화를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런 고용 위기 시기에 국가가 나서서 고용에 책임을 지는 국가고용(직업)보장을 실현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첫째, 철저하게 대주주에게 책임을 묻는 국유화가 진행되어야 한다. 소위 ‘대주주 감자’와 같은 부분적인 책임이 아니라 주식의 전량 소각이 이뤄져야 하고 법적인 책임(유한 책임_을 넘어가는 부분에 대한 대주주의 무한책임까지 이뤄져야 한다.

둘째, 국유기업의 관리가 재무구조에 초점이 맞춰 산업은행 등 금융당국이나 채권단의 감독을 받을 게 아니라 공기업으로 지정되어 국가의 관리·감독 체계 아래에 들어와야 한다. 또한 국유기업과 공기업의 실질적인 운영 감독기관으로서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보다 민주적으로 구성하고 국유기업을 지배 관리하기 위한 체계를 가져야 한다.

셋째, 기간산업 전체의 산업적, 민주적 운영계획 속에서 국유화가 이뤄져야 한다. 단순히 수익을 따지는 문제가 아니라 항공산업이라면 항공업 전체의 발전을 위해 국유기업의 운영과 목적이 국민의 복리 증진과 교통편익 증대, 환경부담 최소화에 맞춰 이뤄질 수 있도록 산업발전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

한국전쟁 직후 1954년,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인 2차 개헌에서 ‘주요 자원과 산업은 국유화(85조)’가 개정됐다. 이후 모든 국유화는 손실의 사회화를 의미했을 뿐, 제대로 된 기간산업의 사회화를 위한 국유화는 단 한 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난 65년 동안 국유기업은 적폐의 일부로, 부실 덩어리로, 세금 먹는 하마로 취급받아 왔지만, 이는 주주의 손실을 국민이 대신 갚아주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이런 적폐를 털고 이제야말로 제대로 된 국유화, 기간산업의 사회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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