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전태일 열사 50주기다. 동시에 민주노총 창립 25주년, 광주항쟁 40주기를 맞는 해다. 남다른 사회적 의미와 과제가 있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맞는 2020년은 진정한 성찰과 치열한 토론으로 모두의 미래를 여는 실천의 전환을 준비할 때다. 이에 〈노동과세계〉는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를 필진으로 초대해 그들의 식견과 경험이 담긴 글을 게재한다. [편집자주]

 

노동자, 되기도 어렵고 하기도 힘들다

거리에서 ‘사장님’하고 부르면 10명 중 9명이 돌아본다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자영업자가 많았는데 1980년대 말에는 취업자의 절반 정도가 자영업자였다. 도시 골목마다 상점과 가게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자영업이 많았다. 이 자영업이 조금 줄기는 했다.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38.3%에서 계속 낮아져 2018년 말 25%까지 떨어졌다. 그런데도 OECD 32개 국가 중 7위로 중남미 국가를 제외하고 제일 높은 수준이다. 미국의 약 4배에 달하고 일본의 2.4배 정도다.

자영업 비율이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 정도로 높다는 것은 실력 있는 장인이 많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만큼 자본과 국가가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하지 못해 국민들이 알아서 일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특히 퇴직 후의 생계가 보장되지 않아 은퇴 연령을 즈음해서 자영업으로 진출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치킨집, 커피숍, 편의점 등을 열어 생활하는 사람들이 폭증했다. 오죽하면 최근 몇 년간 자영업 과잉으로 ‘자영업 구조조정’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자영업 구조조정으로 전체 자영업자 수는 줄어들었는데, 1인 자영업자는 오히려 늘었다. 중소규모 자영업자는 대형 자본에 통폐합됐지만, 노동시장에 있던 임금노동자들이 1인 자영업으로 더 많이 진출했다는 얘기다.

1인 자영업자 즉, 나 홀로이지만 사장이라고 생각하는 노동자가 많은 까닭에 노동자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도 보장받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사실 한국에서는 노동자로 살기도 힘들지만, 노동자가 되기도 힘들다. 청년들이 정규직 노동자 특히 대기업이나 공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것이 ‘꿈’인 그런 시대다. 높은 임금과 안정적인 직장이 눈에 드러나는 이유겠지만 그것 말고도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는 노동자, 법률용어로 ‘근로자’가 되기 때문이다.

기간제, 간접고용,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과 5인 미만 사업장

신자유주의가 대세가 되고 노동시장 유연화가 확대하면서 처음에는 비정규직 중에서도 기간을 정하지 않은 기간제 비정규직이 생겨났다. 그러더니 사용자가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는 파견, 용역, 도급과 같은 간접고용이 확대됐고 급기야 노동자를 아예 자영업자, 개인사업자로 만든 특수고용이 활개 치기 시작했다. 기간제, 간접고용, 특수고용 등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은 알다시피 임금과 노동조건에서 차별은 물론이고 근로기준법과 노조법 등 기본적인 노동권도 보장되지 못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도 실질적으로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원청과 교섭할 수 없어서 노동조합의 권리를 행사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청이 사용자가 분명한데도 뒤에 숨어 나타나지 않는다. 국가인권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말 현재 간접고용 노동자는 346만5천239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17.4%에 달했다.

특수고용노동자는 아예 법적으로 근로자로 인정되지도 않았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법률상 근로자가 아니어서 근로기준법과 노조법 등에서도 배제되고 있다. 최근 법원 판결로 일부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고는 있지만, 법률 해석상 처음부터 자영업자로 취급받기 때문에 스스로 노동자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것도 소송을 통해서다. 이러니 누가 이 긴 세월과 비용을 들여 노동가 되겠다고 나서겠는가?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이 추정한 특수고용노동자는 모두 221만 명이다. 이중 임금노동자로 인식하지만 특수고용인 노동자는 74.5만 명이고, 1인 자영업자라고 밝혔지만 특수고용인 노동자가 91.3만 명이다. 그리고 1인 자영업 형태지만 특수고용도 아닌 새로운 유형의 노동자가 55만 명에 달한다. 이 유형에 이른바 플랫폼 노동이라고 부르는 배달 앱 노동자들이 포함된다.

직접 고용하지 않으면서도 노동을 유연하게 사용하려는 이런 전략은 기술발전에 의해 더 쉽게 먹혀들고 있다. 4차 산업혁명, 디지털 전환과 같은 현대 기술의 발달은 고용 관계를 다양화했는데, 각종 플랫폼 노동은 물론이고, 온라인에서 ‘건 바이 건’으로 수당을 받는 ‘크라우드 워크(Crowd work)’, 1930년대 대공황기에 미국 뉴욕에서 악단 연주자들을 매일 새벽 뽑아 썼던 ‘긱(Gig)’ 노동과 같이 온라인에서 매일, 매시간 디지털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뽑아 쓴다. 21세기형 24시간 디지털 인력시장이다. 이들은 대부분 다수의 사용자와 다수의 노동자가 플랫폼에서 만나 건당 수당을 주고받는다. 누가 정확한 사용자인지 알 수도 없고 종속관계도 불분명하고 임금이 아니라 건당 수수료 개념을 받기 때문에 전통적인 개념의 근로계약도, 노동자도, 사용자도 불분명한 상태다.

다른 한편, 근로기준법은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도 근로자와 사용자의 정의를 하고 있는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법의 적용이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에서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대부분 제외된다. 주 52시간제에서 제외됐고 휴일근로 할증률, 관공서 공휴일 민간지정 등 중요한 권리들에서 제외되어 있다.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나 징계를 당할 수 있고 이에 대해 이의신청을 할 수도 없다. 이처럼 근로기준법의 보호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가 6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30% 내외다.

기간제 노동자들은 제외하고 5인 미만 사업장 600만 명, 간접고용 346만 명, 특수고용 221만 명으로 모두 1,100만 명이 넘는다. 중복된 노동자를 뺀다 하더라도 최소 800만 명 정도의 노동자들이 노동법 적용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전체 임금노동자가 2천만 명이니 40% 정도다.

생색만 내는 노동법 개정

한국 정부가 국제노동기구 ILO 협약 기준에 맞춰 노동 관련 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개정의 이유가 기가 막히는데, 유럽연합 EU가 자기네들과 무역을 하려면 ILO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ILO 협약 비준을 위한 국내 노동 관련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유럽연합이 노동기본권 핵심협약 미 비준을 이유로 한·EU 자유무역협정 위반 문제를 제기해 무역 분쟁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법 취지의 핵심을 설명했다. 국내 기업과 자본의 반발을 고려해 EU의 무역 분쟁 핑계를 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기본권에서 소외된 척박한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려하기보다 유럽에 물건 팔아먹기 위한 목적이다 보니 정부는 ILO 협약이 요구한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요구한 원청 사용자성 인정,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 5인 미만 사업장까지 모든 노동자의 근로기준법 적용 등 ILO 협약이 요구하고 비준에 필요한 노동기본권 보장 조치들은 모두 빠져 있다. 반면, 직장 점거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과 같은 노동기본권을 후퇴시키는 조항들이 들어 있다. 게다가 용어도 해괴한 ‘비종사자 조합원’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한 듯이 보이지만 비종사자 조합원의 권리와 종사자 조합원의 권리에 차등을 두어 비종사자 조합원은 사업장이나 노조 사무실 출입도 못 하고 임원 선거에 나서지도 못하게 손발을 꽁꽁 묶어 두었다.

웃음거리로 전락할 ‘K-노동법’

근로계약의 본질은 임금의 대가 목적성과 근로의 제공이다. 그런데, 노동은 일반 상품과 달리 노동력 보유자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 노동자는 사용자가 지시하는 시간과 장소, 방법에 따라서 노동을 제공하게 된다. 이 때문에 근로계약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지표로 사용자에 대한 노동자의 종속성이 근거가 되어 왔다. 그런데 현재의 근로관계에서는 이런 사용 종속성은 더 이상 근로계약의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다. 4차 산업혁명과 같은 산업 전환이나 최근 코로나 사태같이 노동의 시간, 장소, 방법은 얼마든지 변한다. 또한 플랫폼 노동과 같이 1명의 사용자가 1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기보다는 복수의 사용자가 복수의 노동자와 관계 맺는다. 산업이 재편되고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고용 비중이 변화하면서 근로계약 관계와는 다른 여러 형태의 계약도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근로계약의 본질은 노동력 제공과 그 대가로 받는 임금이며 이 관계가 만족하는 모든 형태의 계약은 모두 근로, 노무, 노동력 제공으로 보아 노동자(근로자)가 되어야 한다. 종속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며 근로계약의 형태에 따라 파생되어 나온 조건에 불과하기 때문에 현재 변화하는 노동과정에 따라 근로계약의 형태와 노동자(근로자) 규정을 새롭게 확대해야 한다. 또한 사업장 형태와 사업장 노동자 수와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K-POP, K-푸드, 좀비 영화 흥행에 K-좀비, 최근 코로나19 방역에 K-방역, 정부지출과 투자에 K-뉴딜이라며 온갖 단어 앞에 ‘K’ 붙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정부가 이번 노동법 개정이 스스로 얘기하는 글로벌 리더로서 국제사회에 모범이 되는 방향으로 개정하는 것이 맞는다면 스스로 ‘K-노동법’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노동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여전히 전체 노동자의 40%에 달하고 일부는 노동자임을 증명받기 위해 여전히 재판까지 받아야 하고,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이 차별받는 현실, 국제사회의 웃음거리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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