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전태일 열사 50주기다. 동시에 민주노총 창립 25주년, 광주항쟁 40주기를 맞는 해다. 남다른 사회적 의미와 과제가 있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맞는 2020년은 진정한 성찰과 치열한 토론으로 모두의 미래를 여는 실천의 전환을 준비할 때다. 이에 〈노동과세계〉는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를 필진으로 초대해 그들의 식견과 경험이 담긴 글을 게재한다.
홍석만 참세상연구소 연구원은 다섯 번째 칼럼에서 최근 뜨거운 주제인 민주노총의 노사정 사회적 합의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홍 연구원은 민주노총이 “노사정 합의문 승인 여부가 아니라 코로나 위기 투쟁 방향을 다시 점검하고 전체 노동자들을 대표해 위기 극복을 위한 대정부 투쟁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편집자주]

국제노동기구(ILO)가 규정하는 사회적 대화는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에 관해 공동 이해를 하는 정부, 사용자, 노동자 대표가 진행하는 모든 형태의 교섭, 자문, 단순한 정보 교환 등을 의미”한다. 이런 사회적 대화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형태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참여를 포함하며, 국가 차원뿐 아니라 산업이나 업종, 지역, 기업 단위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이미 민주노총은 국가 차원의 다양한 사회적 대화 기구에 참여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물론 국무총리실,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복지부 등 정부 부처 산하 수십 개의 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다. 지금도 최저임금 씨름을 하는 최저임금심의위원회는 대표적인 사회적 대화 기구 중 하나다.

정부 기구참여 방식의 사회적 대화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대화가 이루어졌다. 2019년 2월 5일 산자부와 고용노동부가 배석한 당정발표문에 이어 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이 작성한 부속 합의서가 그 결과물이다. 불법 파견 논란이 벌어졌던 파리바게뜨의 경우에도 2018년 1월 11일 SPC와 가맹점주협의회, 양대 노조(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한국노총 중부지역 공공산업노조), 시민사회단체와 두 정당(더불어민주당, 정의당)이 불법 파견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서를 만들었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그동안 사회적 대화를 하지 않았다던가, 22년 만에 이루어진 사회적 대화의 판이 깨졌다고 하는 것은 모두 가짜뉴스다. 문제가 되는 것은 거시경제 수준의 사회적 대화의 경우 일방적인 노동자 양보를 구성하는 것이 대부분이라 참여하지 않았다. 과거 노사정위원회나 현재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그렇다. 민주노총은 1999년 1기 노사정위 탈퇴 이후 지속해서 이 같은 정치적 성격의 사회적 대화 기구 참여에 대해 검토해 왔으나 모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현 집행부가 다시 사회적 대화 참여를 재추진했으나 1년여간의 내부 토론을 거치면서도 2019년 1월 대의원대회와 4월 대의원 대회까지 사회적 대화 참여방침은 부결됐다.

이미 많은 사회적 대화 기구에 참여하고 있는데, 왜 경사노위와 같은 기구에는 참여하기가 어려운가? 경사노위는 다른 기구들과 무엇이 다른가? 최저임금위원회와 같은 대화 기구들은 대부분 해당 사안에 대해 직접 결정하거나 운영(실행)하는 주체의 성격을 지닌다. 대부분 합의 기구들은 사안별, 부문별로 분명한 영역과 대상이 존재하고 어찌 됐든 결정 난 대로 집행된다. 반면 경사노위 같은 사회적 대화 기구는 주로 거시 정책을 중심으로 논의하며, 집행이 온존히 담보되지 않는 정치적 성격의 대화 기구다. 합의해도 합의 주체들이 제 각각 해석하고 집행할 수 있어 주로 정부 입맛대로 해석되고 집행됐다. 그러다 보니 노동 주체들의 입장에서는 합의해도 집행과정에서 내용이 개악되거나 합의된 내용 중 개악된 것만 집행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았다. 경사노위 자체에서 이행을 점검하거나 별도의 이행점검 위원회를 구성하더라도 이 자체가 이행을 위한 사회적 대화의 연속일 뿐이라 이행을 위한 또 다른 합의를 봐야 하는 형태다.

1998년 1기 노사정위 이전에 김영삼 정부의 노-경총 합의나 임금가이드라인도 그랬고, 민주노총이 참여했던 1기 노사정위 합의 사항도 개악된 것만 집행되었고 노동진영에 유리한 사항들은 거의 집행되지 않았다. 합의 이후 시간만 끌다가 노동진영의 거센 요구 끝에 민주노총과 전교조 합법화가 이뤄졌고(그나마 전교조는 2013년 다시 법외노조 통보를 받았다), 복수노조도 법으로는 바로 복수노조 금지조항을 폐지했지만, 시행 유예기간을 계속 연장해 무려 14년이 지난 2011년 노조 전임자임금 지급금지(타임오프)와 교섭창구 단일화와 같은 독소 조항을 포함해 허용됐다. 이번 과정에서도 민주노총과 정부는 고용안정 기금 지원 조건으로 해고금지를 약속했지만, 국회 논의를 핑계로 해고금지 조건이 ‘노력한다’로 낮아졌고, 정부 지침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규직 90%의 고용유지로 완전히 변경됐다. 반면, 정리해고제와 비정규직 도입은 1기 노사정위 합의와 동시에 입법까지 마무리돼 즉각 시행됐다.

이런 경사노위와 같은 사회적 대화 기구는 노동조합운동의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양날의 칼’이다. 한편으로는 노동조합과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정부-자본을 대상으로 국가의 제반 정책에 반영시키고자 하는 공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적이고 계급적인 노동조합운동을 포섭하거나 손발을 묶어 둘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거시적, 정치적 성격의 사회적 대화 기구 참여는 이제까지의 역사에 대한 평가에 기반해 의제와 프레임, 합의 이행, 대표성과 사회적 대화의 정치적 조건 등이 고려된 가운데 판단되어야 한다.

이 상황에서 현재 민주노총 집행부는 코로나 위기 속에서 고용 문제만을 위한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를 제안했고 그 공간이 열렸다. 그러나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 역시 거시적, 정치적, 역사적 사회적 대화라는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그대로 노정됐다. 현 집행부 들어서 두 차례 대의원대회에서도 경사노위 참가는 부결됐고,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고용 문제만을 다룬다 하더라도 합의 이행과 대표성, 정치적 조건이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를 제안한 것이 긍정적이었는지를 이 글에서 다루지 않겠다. 다만,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고용 문제를 다루는 사회적 대화 구성에 자본즉, 사측이 필요했는지는 진실로 의문이다. 이번에 나온 노사정 합의문 초안에서 주요 의제는 특수고용 노동자와 자영업자를 포함하는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과 비정규직 해고금지 방안 및 이와 연결된 고용유지지원금의 해고금지(고용유지 조건) 의무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전국민고용보험제도의 도입은 특수고용,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까지 전체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들까지 실업보험의 안전망으로 포괄하는 문제다. 현재의 고용보험은 노동자와 자본가가 반반씩 부담하고 실업 시에 낸 것에 비례해 받아 가는 사회보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특수고용노동자와 자영업자가 들어오게 되면 이들의 기금을 별도로 구성할지 통합할지 여부, 보험료 기준을 임금으로 할지 소득으로 할지 아니면 구분할지 여부, 누가 얼마나 더 낼지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핵심은 늘 그렇듯 고용보험의 재원이며 누가 얼마를 낼지에 대한 문제다.

그런데, 이 논의에서 사용자 측은 경제위기를 핑계로 고용보험료를 현재보다 더 부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테니 새로 들어오는 특수고용노동자, 자영업자 또는 정부가 더 내야 한다. 이들이 일정한 부담을 더 한다 하더라도 현재 임금노동자의 두 배를 낼 수는 없으므로 추가분의 상당 부분은 정부 지출로 집행될 수밖에 없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전국민고용보험제 실현에 필요한 세금 기여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다. 덴마크가 2017년 실업보험을 전체 취업자로 확대하면서 세금기여분을 70%로 한 것이 그 현실적인 조건을 보여준다. 이러한 세금기여분은 주로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따른 문제다. 세금 기여 외에 현재의 고용보험료 인상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면 임금노동자가 보험료를 올리면 사용자 측 부담은 따라서 올라간다. 이런 논의에 사용자 측이 왜 필요한가?

또한 비정규직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의 해고금지와 고용유지를 논의하는데, 자본과 대화한다고 해결될 문제일까?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도 줄이는 마당에 방패막이로 삼았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해고는 자본의 입장에서 비용 절감을 위한 필사적인 이유다. 결국 현재 상황에서 비정규직 해고금지는 노사 간에 뭔가 주고받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행정적인 강제나 금융적 지원, 소유권의 변경을 통해 이뤄진다.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그 주요한 수단이 고용유지 지원금의 의무 부과 조건이고 기간산업안정 기금의 해고금지 및 고용유지 조건의 강화이며, 기간산업의 사회화다.

그런데, 이것을 지원받아야 할 대상인 사용자 측과 이 조건을 대화해야 하는가? 이런 논의구조가 되다 보니 해고금지 의무 조건은 계속 약화할 수밖에 없고, 항공, 자동차, 조선, 해운, 철강, 유화는 물론이고 일부 유통 대기업 등 기간산업안정 기금을 받아야 하는 대기업의 국유화, 사회화와 국가 고용보장(job guaranteeing)은 의제로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들 산업의 위기는 개별자본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특히 항공산업의 경우 현재까지 직접 투여된 공적자금만 3조 원이 넘는데 위기는 심각한 수준에서 계속되고 있고 비정규직은 물론 정규직의 해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임금 격차 해소와 관련해 일각에서 주장하는 연대임금제도 마찬가지다. 임금상승분이 있을지 없을지 모를 상황에서 이를 기금으로 모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지원을 한다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지난해 임금상승분을 계산해 자본가에게 청구하거나 사회적 대화로 논의하면 내어 줄 것이라는 순진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물론 대기업 공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투쟁이 일종의 낙수효과처럼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으로 나타나는 그런 시기도 아니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조합으로 더 많이 조직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인상 투쟁이 가속하기까지 기다릴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때문에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별도의 방안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어떤 임금제도를 통해서도 지금과 같은 임금 격차를 풀어나갈 방법은 없다.

따라서 비정규직, 여성, 중소 영세, 이주 노동자의 임금인상 투쟁은 계속되어야 하고 지지받아야 하지만 현실적인 임금 격차는 임금제도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바로 국가의 소득재분배 정책과 세금이다. 오늘날의 임금 격차는 소득세와 자본이득세 등의 누진적, 급진적 확대와 국가의 소득재분배 정책을 통해 해결하는 수단 이외에는 없다. 즉, 개별 임금제도가 아닌 국가 세금 제도의 급진적 개혁을 통해 풀어가야 하는 상황이며, 이것이 차별적인 임금제도를 극복해 나가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다(국가독점자본주의 아래에서 임금제도의 한계이자 임금제도 철폐를 위한 하나의 조건이 된다).

<21세기 자본>에서 피케티의 지적과 같이 세금 제도의 유의미한 개혁은 전쟁, 혁명과 같이 급격한 사회변화의 시기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코로나 위기가 전쟁과 같은 긴급한 대응이 이뤄지는 시기이고 특히 고용과 일자리,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사회적 긴장이 걸려 있다. 누구는 부동산, 주식, 채권으로 망했어야 할 상황에서 양적완화와 재정지출로 떼돈을 벌고, 누구는 일자리가 없어져 당장 거리에 나앉아야 할 상황을 목적에 두고 있다. 평시에는 결코 바꿀 수 없는 세금 제도를 유의미하게 개조할 수 있는 매우 드문 정치적 시공간이 조금 열려 있다. 이 틈을 더 벌리는 역할을 민주노총이 해야 한다.

(다른 한편, 코로나 위기 대응을 위해 재정통화정책의 확대로 정부 지출은 물론 중앙은행의 본원통화도 대폭 확대됐다. 위기가 확대하면 지금보다 적자 규모가 더 커질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이 빚을 줄이기 위해 복지삭감과 같은 긴축정책이나 부가세 등 세금인상이 동반될 수 있다. 이 경우 복지삭감과 간접세 인상은 코로나 대응 비용을 국민 전체 특히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라 세금 개혁은 이에 선제 대응한다는 의미도 존재한다. 코로나 대응을 위한 재정 및 통화정책은 국민 개개인에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 12조 원, 중소기업 및 자영업 등 고용안정 지원 10조 원 등 국민, 자영업, 중소기업 지원은 22조 원 수준에 불과하다. 주로 대기업 회사채 융통과 유동성 지원을 위한 금융시장 안정화에 135조 원(일부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포함), 기간산업지원기금 40조 원 등 현재 최소 150조 원 이상 들이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 기업 특히 대기업에 대한 직접 지원과 회사채 시장 붕괴 방지 등 기업 유동성 공급 안정에 치우쳐 있는 만큼 대부분의 비용은 이들이 부담해야 한다. 또한 재정지출과 양적 완화의 결과로 주식, 채권, 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인플레가 가속되고 그 결과 자산소유자의 부만 더 키워놓은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따라서 지금은 노사정 대화가 필요한 시기가 아니라 특히 고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노정 대화, 노정 협상, 대정부 투쟁이 필요한 시기다. 자영업, 서비스업, 제조업 비정규직부터 해고되고 있는데, 이를 막을 적절한 수단이 없다. 대부분의 구조조정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이든, 사측이든 최후에는 산업은행 앞에서 구제기금을 내놓으라고 압박하는 것이 현실이고, 구제기금의 집행 이전에 이미 비정규직 사업장 노동자들의 해고가 이루어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노사정 합의문 승인 여부가 아니라 코로나 위기 투쟁 방향을 다시 점검하고 전체 노동자들을 대표해 위기 극복을 위한 대정부 투쟁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민주적 계급적 노동진영은 (임금삭감 하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와 같은 공공부문 연대고용제나, 임금동결을 통한 기금형성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와 임금 나누기 하는 연대임금제와 같은 주장을 할 것이 아니라, 소득세 등의 급진적인 누진제 실현(앞서 케인스주의 경제학자인 피케티는 소득세율을 최고 80%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한 임금(소득) 격차 해소 및 실업수당 지원(소극적 노동시장 정책), 그리고 해고금지, 기간산업의 사회화, 국가 고용보장제도의 전면적 실현(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하냐고? 노사정 대화나 연대임금제보다 지금 이게 더 가능하고 빠른 수단이라는 게 올바른 정세 인식 아닐까? 코로나 위기 속에서 처음부터 고양이를 그리려다 망치는 것보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잘못되면 고양이라도 나올 수 있는 법이다.

[참고자료]
김영두 2002. “노사정위원회, 평가와 전망”, 노동사회 통권62호
김영수 2012.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둘러싼 민주노총의 전략적 대응: 정파 간 내부정치를 중심으로”. 『사회과학연구』 제51집 1호, 81-104.
김혜진 2019. “사회적 대화의 평가와 전망”
손영우 2018. “사회 양극화 개선과 ‘을’간의 사회적 대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계층별위원회 중심으로”. 『경제와 사회』 제119호(가을), 73-100.
이주호 2019. “민주노총과 사회적 대화”
장귀연 2019.“사회적 대화와 비정규직”, 비정규직 권리연구소(준),
장지연·홍민기 2020. “전국민 고용안전망을 위한 취업자 고용보험”
Baccaro, Lucio 2016. “유럽의 노동시장 조정: 사회적 협의의 종말인가?” 『국제노동브리프』 1월호. 한국노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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