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의 99%를 위한 노동안전보건
김정수의 99%를 위한 노동안전보건

지난 10월 28일 고용노동부는 17개 광역자치단체 및 행정안전부 등과 ‘지자체 산재예방 협의회’를 개최했다. 지금까지 산재예방 관련 행정은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몇 년 전부터 일부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산재예방을 위한 몇 가지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있으나 명확한 법률적 근거가 없었다. 그런데 올해 5월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어 지방자치단체도 관할 지역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시행해야 하고,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자체 계획 수립, 교육, 홍보 및 사업장 지도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게 됐다(산업안전보건법 제4조의 2, 제4조의 3).

지자체가 산재예방에 앞장서야 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지자체 스스로 사용자이며 발주처기 때문이다. 지자체에는 공무원 노동자를 비롯하여 지자체가 직접 고용, 위탁 도급 고용을 한 노동자, 지자체 산하 출연기관의 노동자들이 있다. 또한 지자체는 수많은 건설공사, 각종 서비스 용역을 발주하고 있다. 과거 지자체는 산안안전보건법 준수라는 사용자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그래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근래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지자체가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사용자 의무를 준수해야 함을 점점 더 명확히 하고 있다. 또한 최근 몇 년 사이 산업안전보건법은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수많은 건설공사, 각종 서비스 용역을 발주하는 지자체의 책임이 커질 수밖에 없다.

법을 집행하는 공공기관으로서 지자체가 법을 잘 준수하여 민간에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그렇지 못하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전국 모든 지자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조사한 결과, 지난 3년간 전국 지자체 144곳이 799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저질러 고용노동부로부터 과태료 30억 4천만원을 부과받고 시정명령 13건의 행정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공공기관이 제대로 지키지 않는 법을 민간에게 잘 지키라고 할 수 있을까?

내년에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안전보건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노동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중대재해법의 ‘경영책임자’에는 민간기업의 경영책임자만이 아니라 중앙행정기관의 장, 지방자치단체의 장, 지방공기업법에 따른 지방공기업의 장,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정된 공공기관의 장이 포함된다. 앞서 언급한 ‘지자체 산재예방 협의회’ 관련 보도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지자체가 발주한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는 232건으로 전체 건설업 사망사고의 약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지자체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매년 수십명의 ‘장’들이 형사처벌을 받고 직을 상실하는 사태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고용노동부의 산재예방 관련 행정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지자체가 나서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산업안전보건법이 선진국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제도적 장치라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수 천 명의 산재 사망자가 발생하고, 대통령의 공약에도 불구하고 줄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는 법을 집행할 행정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실제로 산재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소규모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법상의 몇몇 사업주 의무조치들도 제외되어 그야말로 완전히 방치되어 있다.

행정 인력 부족으로 고용노동부의 관리 감독이 미치지 못하는 이런 부분에서 지자체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이는 산재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발의한 근로감독권 지방공유를 위한 ‘근로기준법’과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은 상당히 주목된다. 이 두 법안이 모두 통과된다면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들도 근로감독, 노사협력, 산업안전 등의 업무에 있어서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기 이전부터 산재예방에 앞장 서 온 일부 지자체들이 있다. 고 박원순 시장 재임시절 서울시는 ‘노동존중 특별시’를 주요한 정책과 사업 방향 중 하나로 삼았다. 공사장 안전검검 확대를 위한 안전 어사대 점검반을 편성하여 서울시 관내 건설 공사장을 점검하였고, 서울형 노동안전보건 우수기업 선정하여 작업환경개선 자금 지원을 하기도 했다. 경기도는 올해 초 경기도 산업재해 예방 추진 전략을 수립하여 5개 분야(지방정부 노동분권 강화, 선재적 산업재해 예방활동 강화, 안전한 노동일터 조성, 촘촘한 산업재해 예방 구현, 노동 거버넌스 활성화)의 종합대책을 추진하기로 하고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산재예방을 위한 지자체의 의무와 역할이 확대되어 가는 것은 시대적인 흐름으로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다만 이것이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시민사회가 지자체를 견인하고 촉구하고 참여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할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