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의 99%를 위한 노동안전보건
김정수의 99%를 위한 노동안전보건

지난 12월 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건설 현장 등에서 폭염, 혹한으로 인해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는 경우도 노동자 스스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작업중지권은 안전보건과 관련한 노동자의 권리 중 하나로 이미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에 명시되어 있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만 권리 행사를 보다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관련 법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정부 여당의 유력 대선 후보가 이를 언급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작업중지권은 법률상에는 이미 수 십 년 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실효성이 없어 사문화되어 있던 대표적인 조항 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2019년 1월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제52조(근로자의 작업중지)를 별도로 구성하여 노동자의 작업중지를 구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명확히 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작업중지권을 적극 도입하겠다는 기업들의 선언이 유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포스코건설, 삼성물산, 태영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등 건설 업종 대기업을 필두로 확산 중이다. 지난 11월 서울시 교육청은 현장 실습생의 작업중지권을 조례에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고, 얼마 전 서울시설공단은 공공기관 최초로 현장 노동자에게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수 십 년 동안 사문화되어 있던 작업중지권이 이제 와서 이렇게 화려하게 부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9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으로 인한 원청 책임성 강화, 내년 시행 예정인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이라는 것을 누구나 쉽게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업들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에 씁쓸함이 없지 않지만 어찌됐든 작업중지권이 기업들의 산재 예방 대책으로 급부상한 점은 매우 환영할만한 일이다. 아직 시행하지도 않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삼 확인하게 된다.

작업중지권이 화려하게 부활했다고는 하나 실제 노동자들이 작업 현장에서 이를 활용하여 산재를 예방하기에는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 우선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 중지할 수 있다고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대부분의 산업재해는 누구나 인지할 수 있는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발생하기 보다는 안전과 보건에 대한 조치가 미흡하고, 산재 예방에 대한 조치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데 모두가 이를 무시할 때(“안전 불감증”) 발생한다. 그러므로 작업중지권의 행사 요건을 그런 경우로 확대해야 한다.

둘째,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근로자의 작업 중지를 행사할 수 있는 주체는 노동자 개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업주에게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가 개인적인 판단과 결정으로 작업 중지를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노동자의 대표가 개별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임받아 사업주와의 임금 협상, 단체 협약 체결 등에 임하는 것처럼 노동자의 대표가 작업중지를 할 수 있도록 관련 법 규정을 신설하여 이를 명확히 해야 한다.

셋째,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은 사업주가 작업중지의 해제를 요청한 경우에는 작업중지의 해제에 관한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작업중지를 해제하게끔 되어 있다. 법 개정을 통해 노동자가 작업중지를 할 수 있음을 명확히 했지만, 작업중지의 해제에 있어서 노동자의 참여를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다시 한번 작업중지권이 유명무실화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작업중지 해제 심의 과정에 해당 노동자 혹은 노동자 대표, 최소한 해당 노동자 혹은 노동자 대표가 추천한 전문가가 포함될 수 있도록 관련 법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

넷째, 현형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사업주는 …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하여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사업주들은 징계, 해고, 고소, 고발을 남발하고 있다. 게다가 과거 GM대우에서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노동자에게 징계를 한 사용자의 징계가 정당하다고 하여 간접적으로 작업중지권의 행사 요건을 부정한 대법원의 판결도 있었다. 사법부에서 이런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관련 법규정을 훨씬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 변화한 시대 상황에 부응하여 법해석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어떤 권리든 이를 적절하게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으면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이를 행사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다 보면 어느 순간 더 이상 후퇴할 수 없는 보편적인 권리가 된다. 이제 작업중지권은 모든 노동자들의 보편적인 권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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