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서 일한 이희은 조합원의 삶을 돌아보다

2022년 10월 4일, 구미의 한 공장에 불이 났다. 150여 명이 일하던 공장에 난 화재로 회사는 화재보험금 1,300억을 받았다. 안 그래도 일본 기업을 구미에 유치하기 위해 20년간 1만2천 평 땅을 무료로 임대하던 구미시의 제도로 혜택을 받고 들어온 일본 기업이었다. Nitto의 계열사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다. 불이 난 지 한 달 만에 회사는 화재보상금만 받고 공장을 청산하겠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문자로 통보받았다. 약 130명의 노동자는 희망퇴직하고 떠났지만 13명의 노동자는 남았다. 공장을 지키며 '고용안정 쟁취' 외치고 있다. 집회 한번 안 해봤다는 노동조합, 노동조합 사무실엔 명절 선물 받으러만 와봤다는 조합원들이 약 10개월간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엔 쭈뼛대고 창피해했으나 지금은 사측의 강도 높은 압박을 견디며 싸우고 있다. 이들을 한 명씩 만나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편집자주]

2006년 3월 27일, 희은 씨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 입사했다. 일찍 결혼한 희은 씨는 직장 생활을 거의 안 했는데, 10년 만에 취직한 곳이었다. 오랜만에 다니게 된 직장은 신세계였다. 또래 여직원이 엄청 많았고 다들 잘해주어서 재밌게 일했다. 희은 씨는 ‘외관 검사’와 ‘품질’ 공정을 차례로 배정받았는데 모두 불량 검사를 하는 곳이었다. 하루 12시간씩 암실에서 형광등 하나만 두고 필름을 이리저리 보며 불량을 찾았다. 자신이 실수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희은 씨의 성격이 불량 검사와 잘 맞았다. 일은 물론 힘들었지만 잘했다. 희은 씨는 옵티칼에 다니는 게 즐거웠다. 

2013년, 희은 씨한테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끊었다. 다시 전화가 울렸다. 또 아무 소리 안 들렸다. 한 번 더 울렸다. 이번엔 잘 들렸다. 뭔가 이상했다. 전화기를 왼쪽 귀에 갖다 대면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오른쪽 귀에 대면 잘 들렸다. 왼쪽 귀가 이상했다. 병원에 가보니 스트레스로 인해 심한 난청이 생긴 거라고 했다. 입원하고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희은 씨는 그때부터 왼쪽 귀가 잘 안 들린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했지만 크게 나아진 건 없었다.

“선생님 그럼 이제 보청기를 껴야 하나요?”
“보청기도 잘 안될 거에요. 뇌를 열어보지 않는 한 그냥 사셔야 합니다.”

분명 일 때문이었다. 절대로 불량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항상 희은 씨를 힘들게 했고 12시간씩 암실에서 한 노동은 몸을 혹사시켰다. 그 스트레스가 쌓여 몸 어딘가에서 터질 거였는데 귀로 간 게 분명했다. 그러나 희은 씨는 고작 일주일 입원하고도 얼른 복귀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자기 때문에 회사가 일주일이나 손해를 보는 게 미안했다. 대신해서 일하고 있을 동료들에게도 미안했다. 산재도 신청하지 않았다. 산재를 신청하면 잘린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거였다. 희은 씨는 복귀 후 아무 일도 없던 거처럼 열심히 일했다. 

2019년, 옵티칼은 희망퇴직을 받았고 희은 씨는 신청했다. 희은 씨는 여전히 애사심이 강했다. 회사가 자신을 받아주고 14년 동안 일자리를 줘서 먹고살게 해준 것이 진심으로 감사했다. 회사가 어렵다는 말에 기꺼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그런데 배재구 대표이사가 찾아왔다. “희은 씨 왜 신청했어?”

“회사가 어렵다니까 당연히 신청해야죠. 저는 오래 일했잖아요. 후배들은 일해야 하고요.”

일 잘하는 희은 씨를 붙잡으려 배재구 대표이사가 직접 온 거였다. 그 후로도 배재구 대표이사는 2-3번 더 찾아와서 희망퇴직 신청을 취소하라고 설득했다. 희은 씨는 고민 끝에 신청을 취소했다. 그러나 희망퇴직으로 동료 중 절반 이상이 나갔으니 온갖 일을 다 해야 했고 마음도 불편했다. 일이 점점 힘들어지니, 동료들끼리 싸우는 일도 많아졌다. 2020년, 회사는 또 희망퇴직을 받았다. 희은 씨는 이번에도 신청했다. 이번에도 배재구 대표이사가 직접 말리러 왔으나 ‘대표이사님, 이번엔 말리지 마세요’라고 선을 그었다. 그렇게 희은 씨는 희망퇴직했다.

희은 씨는 퇴직하고도 두 곳의 공장에서 일했다. 두 번째 공장은 환경도 좋고 사람들도 좋았다. 즐겁게 일하고 있는데, 옵티칼에서 문자가 왔다. 희망퇴직한 사람을 상대로 다시 채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희은 씨는 지금 있는 공장이 좋지만 옵티칼에서의 추억도 좋았다. 옵티칼 사람들도 보고 싶었다. 옵티칼은 다시 돌아오려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간담회를 했다. 희은 씨도 참석했다. 배재구가 직접 나와서 설명했다. 그러나 간담회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은 다들 비슷했다. ‘이러다가 회사 또 어려워지면 또 희망퇴직 시키는 거 아냐?’ 희은 씨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손을 번쩍 들더니 “혹시 회사가 다시 어려워지면 또 희망퇴직 시킬 겁니까?”라며 배재구 대표이사에게 대놓고 물었다. 배재구 대표이사는 “만약 회사가 다시 한번 여러분을 내보내야 할 일이 생기면 저부터 나가겠습니다.”라고 했다. 그 말을 믿었다.

2022년 4월 25일, 희은 씨가 옵티칼에 재입사했다. 노사 간에 갈등이 커지는 요즘, 자기가 먼저 나가겠다던 배재구씨는 150여명의 노동자를 희망퇴직, 정리해고하고도 아직 청산인의 위치를 지키고 있고 조합원 13명에게 도끼눈을 뜨고 ‘공장에서 꺼지라’며 화를 낸다.

희은 씨가 입사한 지 반년이 지났을 무렵, 공장엔 불이 났고 회사는 청산을 선언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겐 이를 문자로 통보했다. 희은 씨는 회사 사무실 노동자에게 노동조합과 상의를 했냐고 물었으나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회사 방침이에요’라는 대답만 들었다. 울분이 몰려왔다. 희은 씨는 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았다. 당시 노조는 뒤통수 맞아 얼떨떨한 옵티칼 노동자를 상대로 간담회와 교육을 줄줄이 잡아주었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진 희은 씨는 거의 모든 간담회에 참석했다. 싸우고 싶었다. 회사에 대한 배신감이 머리끝까지 차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걱정이 들었다. 어릴 때 희은 씨는 하도 조용해서 별명이 ‘꿔다놓은 보릿자루’일 정도였다. 조용한 성격인 자신이 노조와 잘 맞지 않을 거 같았다. 싸우곤 싶은데 노조와 안 맞을 거 같다는 건 또 다른 고민거리였다.

노조 회의중인 정나영 조합원(왼쪽)과 이희은 조합원(오른쪽)
노조 회의중인 정나영 조합원(왼쪽)과 이희은 조합원(오른쪽)

희망퇴직을 신청받는 마지막 날, 희은 씨와 정나영 조합원은 손을 잡고 말했다. “그래, 우리 같이 희망퇴직 신청하자” 둘이 같이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다가 ‘그래도 마지막인데’ 싶은 생각에 두 사람은 발길을 돌려 노조 사무실로 들어갔다. 인사만 하고 나오려 했으나 진행 중이던 간담회에 자연스레 앉게 되었다. 여러 이야기를 듣던 중 희은 씨 마음속에서 한 생각이 정말 간절하게 들었다. ‘우리는 회사한테 받은 것들을 고마워해. 그런데 우리가 회사한테 해준 것도 있는 거야. 그런데 회사는 왜 우리가 해준 걸 감사해하지 않는 거야.’ 그렇게 희은 씨는 투쟁에 합류했다.

희은 씨는 투쟁 초반엔 연대자가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연대를 받으면 또 연대하러 가야 하는데, 옵티칼 현장만 지키기도 바빠서 어떻게 가나 싶었다. 그러나 지난 8월을 기점으로 희은 씨는 생각이 바뀌었다. 태풍을 핑계로 경찰과 시청까지 합세해서 사측은 공장부지로 진입하려 했다. 그때 희은 씨와 다른 조합원들만 있었다면 침탈을 막아내지 못했을 거다. 연대자들이 함께 기세등등하게 싸웠기 때문에 막을 수 있었다. 그 후로 보름도 지나지 않아서 연대자가 100명이나 찾아왔다. 전국에서 찾아온 이들의 대부분은 금속노조 조합원도 아니었다. 한명 한명 돌아가면서 자신이 누구이고 여긴 왜 왔는지 말하는데, 희은 씨는 감동했다. 조합원보다도 결의에 찬 듯 발언하는 사람도 많았다. 희은 씨는 그날 100명의 이야기를 녹음하지 않은 게 아쉽다. 두 번의 커다란 연대를 받으면서 자신이 뭔가 바뀌었음을 느꼈다. 어떤 선을 하나 넘었다고 느꼈다.

2023년 9월, 조합원들을 압박하기 위해 가압류가 들어왔다. 노조 사무실을 부수겠다며 굴삭기도 왔다. 알아서 나가라며 단수(斷水)도 됐고 단전(斷電) 시도도 있었다. 이 모든 게 열흘 안에 이어졌다. 그러나 노동조합원들은 상근활동가와 연대자 덕에 이런 압박이 들어올 걸 다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면 단전단수가 들어올 수 있어요’, ‘굴삭기가 오긴 할 텐데 진짜 들어오려는 건 아닐 거예요. 그냥 쇼하면서 압박하는 거예요.’ 미리 알았기 때문에, 사측이 의도한 타격 강도에 비해 조합원들은 미미하게 신경 쓰는 정도에 그쳤다. 희은 씨에게 예상한 타격이 그대로 들어오니까 어떤 생각이 드냐고 묻자, 희은 씨는 상상도 못한 답변을 했다. 

“우리가 공격을 다 예상하잖아요. 그런데 왜 우린 그 순서대로 공격을 막기만 해요? 회사의 예상을 뛰어넘는 투쟁을 하고 싶어요. 이젠 방어 말고 공격하고 싶어요.”

희은 씨에게 투쟁의 결과는 오히려 덜 중요하다. 미래의 자신이 ‘아, 그때 더 열심히 싸울걸’하고 후회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희은 씨는 미련 없이, 후회 없이, 아쉬움 없이 최선을 다해 싸우고 싶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에게 최고의 학교다. 투쟁은 최고의 현장체험학습이다.

시청에서 피켓팅중인 이희은 조합원
시청에서 피켓팅중인 이희은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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