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4일, 구미의 한 공장에 불이 났다. 150여 명이 일하던 공장에 난 화재로 회사는 화재보험금 1,300억을 받았다. 안 그래도 일본 기업을 구미에 유치하기 위해 20년간 1만2천 평 땅을 무료로 임대하던 구미시의 제도로 혜택을 받고 들어온 일본 기업이었다. Nitto의 계열사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다. 불이 난 지 한 달 만에 회사는 화재보상금만 받고 공장을 청산하겠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문자로 통보받았다. 약 130명의 노동자는 희망퇴직하고 떠났지만 13명의 노동자는 남았다. 공장을 지키며 '고용안정 쟁취' 외치고 있다.
집회 한번 안 해봤다는 노동조합, 노동조합 사무실엔 명절 선물 받으러만 와봤다는 조합원들이 약 10개월간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엔 쭈뼛대고 창피해했으나 지금은 사측의 강도 높은 압박을 견디며 싸우고 있다. 이들을 한 명씩 만나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편집자주]

이지영 교선1부장은 조합원 중 나이가 가장 어리다. 연차도 가장 낮다. 입사와 퇴사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럼에도 공장을 계속 지키며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싸우고 있다. ‘나이도 어린데’, ‘연차도 낮은데’를 가볍게 무시하며 활동하고 있다.

2017년 9월, 지영 씨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 입사했다. 입사 전 지영 씨가 친구 직장에 놀러갔는데, 그게 옵티칼이었다. 이전에 여러 공장에 다녀봤던 지영 씨는 옵티칼을 보고 조금 놀랐다. 세련되고 크고 깨끗했다. ‘우와. 여기 뭐가 이렇게 좋아. 여기 사람 안 뽑나?’ 당시 지영 씨는 이미 여러 공장, 택배, 경리 일을 해봤는데 옵티칼은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시설을 갖고 있었다.

입사 후 지영 씨는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기숙사비는 한 달에 1만원이었고 수도 세, 난방비, 식사가 모두 포함된 금액이었다. 시설도 깨끗하고 편했다. 좋았다. 그러나 장점 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이다. 일이 복잡했다. 지영 씨가 맨 처음 배정받은 공정은 크린/ 포장 공정이었다. 필름에 맞춰 기계를 조정하고 틀을 조절하고 다 잘린 필름을 옮기는 작업이다. 다른 공장에서 일할 때는 아주 단순한 작업만 했는데, 이번엔 일이 꽤 복잡 해서 정신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옵티칼엔 신입 텃세가 꽤 있었다. 지영 씨와 같이 입사한 동기는 3개월 내내 일이 어렵고 사람들이 힘들게 한다며 밤마다 전화기를 붙들고 울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퇴사했으나, 지영 씨는 다른 공정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 면서 일에 재미를 붙였다. 새로 배정받은 곳은 포장 공정이었는데 원하는 사이즈로 잘린 필름의 이물질을 조심스레 제거하고 비닐 포장, 진공 포장을 하는 곳이었다. 재밌었다. 지영 씨는 원래 손으로 만들고 작업하는 건 다 잘하는 편이었다. 일이 재밌으니 점점 더 잘했고 사람들과 관계도 점차 나 아졌다. 그러나 입사하고 1년 밖에 안 된 2019년, 회사는 희망퇴직을 받았다. 당시 사내 커플이었던 지영 씨는 애인과 어떻게 할지 고민을 나눴다.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지영 씨는 ‘20대 후반 여자가 여기보다 좋은 직장을 찾긴 힘들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희망퇴직서에 서명했다. 월례 조회 때마다 부사장이 ‘이번에도 적자다. 품질에 신경써야 한다. 우린 항상 적자니까 더 열심히 잘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던 탓이었다. 매번 회사가 망해버릴 것처럼 말하니, 불안정한 회사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망할 것 같은 회사를 다니느니 희망퇴직을 권할 때 해버리는 게 나을 거란 판단을 한 것이다. 희망퇴직 후 지영 씨는 미용 공부를 했다. 메이크업 샵에서 큰 돈을 주고 속눈썹 연장과 펌 기술을 배웠다. 지영 씨는 자신의 가게를 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초기 자본금이 너무 컸다. 고민하던 중 마침 옵티칼이 다시 계약직으로 직원을 뽑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2020년 7월, 지영 씨는 1년 계약직으로 다시 옵티칼에 입사했다. 맡은 공정도 똑같이 포장이었고 업무량도 크게 바뀐 건 없었다. 소소하게 달라진 것들은 있었지만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지영 씨가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바뀌었다는 거였다. 그렇게 9개월쯤 일했을 무렵, 지영 씨에게 다시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메이크업 샵에서 직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본 것이다. 고민했으나 지영 씨는 미용으로 마음이 끌렸다. 어차피 계약직이기도 하니, 지영 씨는 옵티칼을 다시 퇴사하고 메이크업 샵으로 들어갔다. 일하면서 원장에게 기술을 더 배우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원장의 실력이 별로였고 지영 씨는 1년만 딱 채운 후 그만뒀다.

2022년 5월 2일, 지영 씨는 옵티칼에 세 번째로 입사했다. 옵티칼은 희망 퇴직했던 인원을 대상으로 다시 정규직 입사를 권했다. 100명이나 뽑는다고 했다. 퇴사와 입사를 반복하던 시기에 옵티칼 사내 커플은 결혼해서 아내와 남편 사이가 되었다. 지영 씨와 남편은 처음 퇴사했을 때처럼 재입사도 같이 했다. 5개월쯤 일했던 2022년 10월 4일, 두 사람은 야간 조였다. 오후 5시 30분, 소방관인 남편 친구가 전화를 했다. “너희 회사에 불났다!”

이전에도 작은 화재가 있었던 터라 그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지영 씨는 ‘오 그럼 오늘 출근 안 하고 노나?’하고 장난스런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단톡방에 올 라오는 사진과 영상을 처참했다. 공장의 가운데에서 불길이 솟구치는 게 보였다. 예전 작은 화재 이후로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화재 예방 교육을 철저히 시켰다. 지영 씨와 남편은 공장이 샌드위치 판넬이라서 한 번 불이 나면 절대로 끌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공장이 심각하게 훼손되거나 전소될 거란 걸 알고 있는 두 사람은 멍해졌다. 자꾸 한숨이 나왔다. 부부가 한 번에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현실은 무거웠다. 회사는 일단 오늘 출근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기다렸다. 회사는 일단 기본급은 지급할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기다렸다. ‘분명히 재건 못 할 거다’, ‘절대 다시 못 짓는다’, ‘회사가 아예 그만둘 거 같다’며 이런저런 소문이 돌았다. 그래도 기다렸다. 지영 씨와 남편은 회사를 믿고 계속 기다렸다. 기다리라고 하니 계속 기다렸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자, 회사는 청산 하겠다는 통보 문자를 보냈다. 17개월치 기본급을 줄 테니 나가라고 했다. ‘기다리래서 부족 한 주머니 사정에도 계속 기다렸는데 이렇게 가버린다고? 우린 어떡하라고’ 싶었다.

지영 씨는 처음으로 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았다. 노조 간부들이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교육하는 것도 들었다. 지영 씨는 그때 최현환 지회장을 처음 봤다. 한눈에 봐도 열기와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부부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둘 중 한 명은 희망퇴직한 뒤 다른 곳에 취업 하고 다른 한 명은 남아서 싸워보자는 게 두 사람의 결정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남을 것인가. 남편이 취직할 수 있는 곳은 지영 씨가 미용 일을 할 때보다 비교적 많은 돈을 주는 곳 이었다. 그렇게 지영 씨가 노동조합의 투쟁에 합류했다.

약 10개월간 투쟁해오면서 지영 씨는 회사와 경찰이 태풍을 핑계 삼아 농성장을 침탈하려는 것도, 조합원들 집 보증금(혹은 집 자체)에 가압류가 들어오는 것도, 굴삭기가 노조 사무실을 부수겠다고 쳐들어오는 것도 겪었다. 그때마다 두려웠다. 너무 큰 일이 날 거 같았다.

그런데 막상 겪어보니 별거 아니었다. 지나고 보니 괜히 겁먹었던 거 같았다. 집에서 쫓겨나는 것도 아니고 경찰과 굴삭기를 막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탄압을 겪어보니 어떠냐는 질문에 지영 씨는 ‘생각보다 별거 없던데요’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지영 씨를 인터뷰하며 ‘기세’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흔히 투쟁은 기세로 하는 거라고 한다. 강렬히 눈빛을 쏘고 깜짝 놀랄만큼 크게 구호를 외치면 일단 절반은 이겼다고 한다. 지영 씨 의 기세는 ‘반드시 승리하고 말겠다’는 강렬한 투사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탄압이 별거 아니고 그때마다 잘 넘어가고 있다는 ‘근자감’이 주는 기세가 있다. 그 기세가 허세로 보이지 않은 이유는 강도 높은 탄압을 겪어본 ‘경험에서 나오는 분위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앞으로 회사가 할 탄압이 오히려 기대된다. 지영 씨가 어떻게 극복해낼지 궁금하다. 투쟁 승리의 날, 지영 씨가 ‘탄압한다고 겁내지 마세요. 별거 아니니까’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그 말을 들을 동지들 표정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