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충북본부 건국대 충주병원지부 이재은 조합원

2024년 3.8여성의 날을 맞아 충북지역 여성조합원들의 삶과 일터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여성노동자들이 원하는 일터의 모습, 노동조합의 역할을 생각하며 3.8 세계여성의날 정신을 새겨 보고자 합니다.

 

# 할머니는 꿈을, 아버지는 들끓는 피를

안녕하세요, 저는 건국대충주병원에서 7년째 근무 중인 이재은 수석부지부장이라고 합니다. 2014년에 건대충주병원에 입사 후 3년간 일하다가 서울의 로컬병원으로 이직해서 4년 동안 있었어요. 그리고 다시 건대충주병원으로 돌아와 4년째 재직중입니다. 병동에서 일하다가 중환자실로 부서 이동한 지 2년 되었어요.

제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할머니께서 만성 신부전이었거든요. 그래서 투석하느라 병원에 다니셨는데 그 때마다 제가 따라다녔어요. 투석하는 과정에서 의료인의 전문적인 처치 모습을 보며 간호사의 꿈을 키우게 됐죠. 할머니께서 자주 입원하시니까 간호사가 되어서 뭐라도 도움드리고 싶은 마음도 컸고요.

아버지께서 노동조합 활동을 굉장히 열성으로 하셨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통해 노동조합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그 개념과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이해는 하고 있었죠. 그렇지만 제가 맨 처음에 노동조합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 반대가 심하셨어요. 왜냐하면 얼마나 힘든지 몸소 알고 계시니까요. 더군다나 여성의 목소리는 잘 반영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제가 다치고 상처받을까봐, 그것을 가장 걱정하셨어요.

건대병원을 3년 다니다가 사직했죠. 까닭은 불공정한 부서 이동 때문이었어요. 당시에 우리 병원이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막 시작할 때였거든요. 간호사 3명 중에 1명이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병동으로 가야했는데 그게 제가 된 거에요. 세 명 모두 강제적인 부서 이동에 동의하지 못한다고 의견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수간호사 선생님이 그 세 명에게 무작위로 작은 쪽지를 나누어주었어요. 별표가 되어있는 쪽지를 받으면 부서를 이동해야 하는데 제가 당첨이더라고요. 너무 억울해서 엉엉 울며 노동조합 사무실로 달려갔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이라면 부서 이동 결정 방식이 불공정하다고 문제를 제기 했을텐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쉽죠. 아버지께선 이 얘기를 듣더니 병원을 당장 고발하자며 분노하시더라고요. 저는 어차피 서울에 가고 싶었는데 이 기회에 가면 된다고, 차라리 잘됐다며 아버지를 애써 말렸죠. 그렇게 저는 건대병원을 나오게 되었어요. 4년 후에 다시 들어갈 운명이었지만요.

 

# 눈에 띈 조합원

2022년이었어요. 부서별 간담회 혹은 로비 집회를 마치면 노동조합에서 가끔 뒤풀이를 했거든요. 그래서 지부장님과(당시 사무장) 병원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어요. 저에게 병동 상황은 어떤지, 조합원 여론은 어떤지 등 여러 가지를 물어봤죠. 저도 당연히 제 직장이기 때문에 관심이 많으니까 적극적으로 대답하고 의견을 말했어요. 그 모습이 눈에 띄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저에게 “여성부장을 맡아달라.”며 간부가 될 것을 제안하시더라고요. 저는 당시 대의원 하나가 공석이어서 대의원을 하려고 했는데 지부장님의(당시 사무장) 제안에 여성부장이 됐죠.

조합원이었을 때는 지부장님이(당시 사무장) 묻는 말에 적극적으로 답변은 했지만 사실 이렇다 할 활동은 없었어요. 그런데 여성부장을 맡고 대의원 회의와 간부 회의에 배석하면서 시야가 넓어졌어요. 다양한 간부의 의견을 들으며 생각지 못한 문제점을 많이 찾아낼 수 있었죠. 무언가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사건의 경위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됐고요. 듣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됐죠.

 

# 천상 간호사, 천상 간부

간호사는 제 꿈이기도 했지만 성격상 일이 잘 맞아요. 병원 스케줄 근무가 길어야 5일이거든요. 연속으로 출근하는 날이 길면 5일이고, 대부분 3일 일하고 하루 쉬는 방식이에요. 스케줄 순서도 항상 다르죠. 또 간호사는 계속 움직여야 하잖아요, 활동적이고 유동적인 루틴이 저에게 잘 맞아요. 매번 일상이 똑같으면 지루할 것 같아요. 그래서 한 자리에 오랫동안 앉아있어야 하는 영화도 잘 못본답니다.

덕분에 역동적인 노동조합과도 잘 맞죠. 작년 보건의료노조 파업 때 서울에서 행진 발언을 했거든요. 그 후에 지부장님이(당시 사무장) “당시에 떨리지 않았냐?”고 물었는데 저는 너무 좋았어요. 다 저를 쳐다보고 있잖아요, 짜릿하죠. 작년 12월 건대 투쟁 때도 결의문을 낭독하는데 매우 설레고 두근댔어요.

단지 3교대를 해야해서 노동조합 활동할 때 바로 참여를 못하는 게 아쉬워요. 특히 우리 병원은 시시각각으로 변화가 많으니까 갑작스럽게 잡히는 일정이 많거든요. 그 때마다 저는 근무여서 회의든 무엇이든 참여하지 못했죠. 작년 로비 집회도 현장 발언을 하고 싶었지만 항상 나이트였어요. 아쉬움이 많이 남아있죠.

 

# 여전한 고질병, 고루한 호칭

구시대적인 호칭은 2024년에도 여전해요. ‘아가씨’가 제일 많고 그 다음이 ‘언니’죠. 10년 동안 그 호칭을 듣다 보니 약간 편견이 생기기도 해요. 주로 50~60대 남성분이 많이 부르시거든요. 그래서 환자 응대할 때 그런 호칭을 들으면 제 스스로도 환자에게 부정적인 인식이 먼저 생겨버려요. 옛날에는 어리고 연차가 낮아서 말을 못했죠. 지금은 “그렇게 부르시면 안돼요. 간호사라고 불러주세요.”라고 말씀드리죠.

호칭을 정정하면 죄송하다며 “간호사님.”이라고 바로 바꿔서 부르시더라고요. 아마 ‘아가씨’나 ‘언니’라고 부르는 것에 문제가 있는지 정말 모르셨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니까 발생하는 일일 거에요. 그렇지만 정정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적절한 호칭을 고수하는 분도 계세요.

 

# 이건 성추행인가요?

환자가 의도적으로 하는 불필요한 신체 접촉이 많아요. 간호사가 “혈압 좀 잴게요.” 하며 혈압기기의 천을 환자의 팔에 감싸는데 이 때 환자가 자신의 팔을 간호사의 가슴쪽으로 펼치면서 가슴을 일부러 툭 스쳐요. 저도 몇 번 겪고 이제는 아예 몸을 틀어서 환자가 손을 뻗어도 몸에 닿지 않게 하죠.

혈당을 잰 후에는 알코올 솜으로 닦아주는데 어린 간호사에겐 “내가 언제 이렇게 20대 여자의 손을 만져보겠냐, 언제 아가씨의 손길을 느껴보겠냐.” 하며 성희롱하는 분도 계시죠.

이런 일도 있어요. 백 케어(등 간호)를 위해 욕창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환자를 옆으로 돌려야 했어요. 그래서 몸을 조심히 돌리는데 몸이 제 쪽으로 돌려질 때 환자분이 제 허리를 덜컥 잡으시더라고요. 사실 침대 난간을 잡으며 중심 잡는 게 수월할 텐데요. 허리뿐만 아니라 팔, 어깨 등을 잡는 분도 계시죠.

중환자라고 다 의식이 없는 게 아니거든요. 환자 입장에선 힘들어서 뭐라도 손에 닿는 걸 잡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분명 다른 걸 잡을 수 있는 환경이었거든요. 핑계라고 생각해요. 혈압 잴 때 발생하는 신체접촉도 마찬가지죠. 환자가 “난 그냥 팔을 폈더니 가슴에 닿은 것뿐이다. 내가 의도적으로 한 게 아니지 않냐.” 라고 하면 할 말이 없어요. 힘들어서 잡았다는데, 의도한 게 아니라는데, 이런 일이 무수하지만 하나 하나 지적하면 저만 예민한 사람이 돼버리죠. 그래서 다들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는 식으로 넘어가요. 스스로 조심할 뿐이죠. 하지만 당한 사람은 다 알거든요. 상대방이 내 몸을 의도적으로 만졌다는 것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사사롭다고 생각되어 공론화하려는 병원이 많지 않을거에요. 이슈화했을 경우, 불미스런 일이 발생한 병원이라고 소문나기 때문에 병원 이미지만 나빠지니까요. 병원에 피해를 호소해도 ‘나를 보호해줄까? 내 편에서 같이 싸워줄까?’ 하는 의구심이 들죠.

그래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은 성희롱’이라는 인식을 갖게 해야해요.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경각심을 주는 분위기가 형성돼야하죠. 그래야 환자들도 자신이 하는 행동을 검열하고 간호사들도 “아, 내가 겪었던 일이 그냥 넘어가선 안되는 일이었구나.” 하며 깨닫고 피해 사실을 편하게 말할 수 있죠.

 

# 건국대충주병원지부의 지난한 1년

작년 5월에 제기됐던 성희롱 사건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어요. 징계위 회부, 기자회견 개최, 노동부에 진정서 제출 등 외에도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는데 변한 게 없어요. TV에 보도되어 여론화가 크게 되어도 병원은 꼼짝하지 않죠. 가해자는 여전히 병원에서 일하고 피해자는 사직했어요. 이를 보며 우리끼리 종종 이야기해요. “우리가 당했어도 결과는 똑같겠지.”

사실 성희롱 피해가 있어도 문제 제기 자체가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피해자들이 모든 불이익을 무릅쓰고 성희롱 피해를 고발해서 병원에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했는데 해가 넘어간 지금까지도 변한 게 없는 걸 보면 “병원은 역시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구나.” 하며 실망감과 무력감을 많이 느끼죠. 이러한 큰 사건조차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데 앞으로 부당한 일이 발생했을 때 또 누가 용기내서 말할 수 있겠어요.

환자가 가하는 성희롱 뿐만 아니라 위계질서에 의한 성희롱도 마찬가지에요. 교육 목적으로 신체 접촉을 했다는데 상대방의 몸을 만질거면 사전에 “내가 수술 부위를 알려주려는데 여기 잠깐 만져도 될까?” 하며 의견을 물어야 하는 것이 먼저잖아요. 아니면 태블릿에 사진을 띄우고 설명했어도 됐을텐데요, 징계위에서 성추행이 성립되지 않은 게 이해가 안돼요.

▶ 사건 관련 참고 기사: https://www.youtube.com/watch?v=N3UspzQMVLE

건국대충주병원지부 집중투쟁에서 결의문 낭독하는 이재은 수석부지부장(우)
건국대충주병원지부 집중투쟁에서 결의문 낭독하는 이재은 수석부지부장(우)

 

# 고난한 하루를 버티는 힘

중환자실 식구들이죠. 사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나와 같은 일을 하지 않으면 그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하루의 대부분을 중환자실에서 보내는데 그 시간 동안 함께 땀 흘리며 서로 북돋아주니 의지가 안될 수 없어요. 남편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이 있거든요.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 인과관계를 다 설명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사실 지치거든요. 동료들에게 이야기하면 고충을 조금만 토로해도 모든 걸 알고 이해하죠. 또 오랜 시간 간호사로 일을 했으니 가치관도 비슷해졌어요. 서로 닮아가나봐요.

 

# 대표 여초직업, 간호사

간호사는 대부분이 여성이어서 전문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경시되는 경향이 있어요. 만약에 간호사 대부분이 남성이었으면 간호사 1명당 담당하는 환자 수도 법적으로 진작 제정되었을 거에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우리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못할 때 착잡하면서도 매우 화가 나요.

정규직화 순서만 봐도 그래요. 의료 분야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정규직화 과정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그 순서가 밀리거나 배제되죠. 제 주위도 예외는 아니에요.

회사 입장도 이해해요. “얘네는(여성) 정규직 시켜서 키워봤자 어차피 육아휴직 들어가면 공백 생기잖아. 그럴 바에 남성을 먼저 정규직화하는 게 나아.” 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렇지만 우리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잖아요, 육아를 여성의 영역으로 정해놓고 이를 수행하지 않으면 나쁜 여성, 나쁜 엄마가 돼버리게 만들었잖아요.

그러니까 여성이든 남성이든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해요. 육아휴직이 자유로워지면 「얘를 뽑나, 쟤를 뽑나 똑같이 육아휴직 사용 예정자들」이기 때문에 모두 눈치 볼 일도 없고 서로 편하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있는데 임신하고 출산하면 육아휴직을 사용하게 되겠죠.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어요, 아이를 낳고 처음 6개월은 내가 출산·육아휴직을 사용할테니 그 후 6개월은 당신(남편)이 쓰라고. 그런데 남편이 섣불리 대답을 못하더라고요. 그 까닭을 알아요. 일 욕심도 있겠지만 남성도 육아휴직 쓸 때 눈치 보이기 때문이죠. 육아를 여성의 영역으로 한정 짓고 남성은 도와주는 역할이라는 인식을 버려야 해요. 육아는 여성과 남성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제는 고착화돼야 하죠.

 

# 간호사에게

다들 부당한 일을 겪어도 이를 지적하지 않고 참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어요. 아까도 말했듯이 “말해봤자 변하는 게 없잖아. 똥 밟았다고 생각해.” 라며 생각하고 마는 거죠. 그런데 작은 목소리가 모여서 하나의 변화를 일으키는 거잖아요. 간호사는 입사와 동시에 정규직이기도 하고 다른 직종에 비해 이직이 어렵지 않아서 다들 소극적이에요. 꼭 여기 아니어도 어렵지 않게 다른 데 갈 수 있죠. 하지만 그 곳도 간호사의 일터거든요. 여기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어딜 가서도 목소리를 낼 수 없을 거에요. 이 곳을 평생 직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불리한 일이 있으면 말했으면 좋겠어요. 병원을 떠나 간호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냥 말하길 바라요.

 

# 건국대충주병원이 다시 돌아오길

오늘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제가 가장 바라는 건 단 하나에요. 건대충주병원 정상화뿐. 병원이 더 커지거나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전혀 없어요. 단지 제가 처음에 입사했을 때 그 건대병원 정도만 유지돼도 자부심을 가질 것 같아요. 그 땐 건대병원 다닌다고 하면 부모님께서 사람들에게 자랑할 정도였거든요. 우리 병원이 다시 충주 시민 곁으로 돌아와 믿고 갈 수 있는 병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진정으로 바라는 건 그거밖에 없어요.

 

* 인터뷰 당일, 프리셉터 첫날인데도 불구하고 귀한 시간 내주신 이재은 수석부지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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