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었다.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①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②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③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④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을 명시하고, 이를 금지한 것이다.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역동적이었다. 대형병원의 선정적 장기자랑 논란은 ‘직장 갑질 폭로’의 신호탄이었다. 직장인들은 끊임없이 본인들이 경험한 ‘갑질’을 말하기 시작했고, 연일 황당하면서도 엽기적인 갑질 사례들이 폭로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민적 공감대가 부족하다.”라며 입법 논의조치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던 이 법은 평범한 직장인들의 용기를 발판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법이 제정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의미 있는 변화들이 있었다. 2020년 6월,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법 시행 이후 괴롭힘이 줄어들었다는 응답은 53.5%에 달했다. 물론 괴롭힘 경험이 대폭 감소한 것은 아니다.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직장인은 45.4%에 달한다. 제대로 된 처벌조항이 없다 보니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을 때 회사나 노동청에 신고했다는 응답도 3.0%에 불과했다. 법 시행 1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집은 의미 있게 지었지만, 창문도 없고, 가구도 없는” 상황이다.

법이 가장 먼저 적용되어야 할 약자들에게 법이 멀다는 것도 문제다. 직장 내 괴롭힘이 줄었다는 질문에 대해 정규직(상용직)은 56.2%가 줄었다고 응답했지만 비정규직(비상용직)은 49.5%만이 줄었다고 응답했다. 월 급여 150만 원 미만을 받는 직장인의 경우 45.5%가 괴롭힘이 줄어들었다고 응답했지만, 월 500만 원 이상 받는 직장인들은 65.2%가 괴롭힘이 줄었다고 응답했다. 성별로는 남자가 58.9%로 여자(46.4%)보다 12.5% 높게 나타났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더 열악한 직장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으려면 ▲가해자 처벌조항(최소한 사업주가 가해자인 경우 처벌조항 마련) ▲조치의무 불이행에 대한 처벌 ▲5인 미만 사업장, 간접고용, 프리랜서 등에 대한 적용범위 확대 ▲예방교육 의무화 등을 통해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

노동조합 조합원과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를 비교해보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응답은 조합원이 79.4%로 노동조합 없는 노동자(58.9%)에 비해 1.35배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예방교육을 받았다고 응답한 조합원은 54.2%에 불과했다. 노동조합 없는 노동자(29.5%)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높지만, 노동조합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보니 직장 내 괴롭힘이 줄었다는 다는 응답은 조합원(57.9%)과 노동조합 없는 노동자(51.9%)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노력이 아쉽다.

법의 실효성을 높인다고 하여 직장 내 괴롭힘은 사라지지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뿌리 깊게 박혀있는 상명하복, 집단주의적 직장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돈만 주면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노동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바뀌고, 노동자의 권리가 강화되어야 괴롭힘을 근절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개인의 고통이나 갈등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문제, 문화의 문제임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체 교육, 사내 처리절차 마련 및 점검, 조직문화 진단 등을 통해 회사의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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