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이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할 것은 규모가 작은 회사의 직장인이다

 

"주유소에서 일 합니다. 일하는 사람은 저, 소장, 사장 세 명입니다. 마감 시간 이후까지 주유는 물론 주유소 사무실 관리 청소를 시킵니다. 주유소 내 아이스크림 전문점 운영 및 판매, 주유소 내 텃밭 가꾸기도 하고 있습니다. 사장이 원룸 사업을 하는데 원룸 청소 관리, 사업주가 새로 구입한 땅에서 막노동도 합니다."

"직원이 4명인 학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원장이 갑자기 '오늘까지만 일하고 그만두라'고 해서 되물으니 저한테 '뭘 쳐다보고 지랄이야 씨X'이라고 욕설을  하며 짐 싸서 나가라는 식으로 말하길래 가방을 들고 와서 짐을 싸는데 저를 따라다니면서 '조용히 싸라고 씨X! 좀 조용히 해 씨X!'이라고 욕설을 했습니다. 원장에게 욕하지 말라고 '씨X이라니요?' 라고  물으니 꺼지라고 했습니다."

회사 규모가 작을수록 ‘갑질’은 더 노골적이다. 규모가 큰 회사에 왕따나 업무배제와 같은 교묘한 방식의 갑질이 많다면, 규모가 작은 회사에는 폭행과 폭언, 성희롱, 잡무지시 같은 ‘조폭형 갑질’이 많다. 직장갑질119로 접수되는 이메일 제보 사연을 읽다보면 “2020년에 이런 일이?”싶을 정도의 황당갑질 근원지는 대부분 규모가 작은 회사다.

작은 회사에서 벌어진 갑질은 상담하기 난감하다. 첫 번째, 가해자가 임원 또는 경영진인 경우가 많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7월 전문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괴롭힘 행위를 한 사람은 누구였는가?”를 물었을 때 5인 미만 사업장 종사자의 39.2%는 가해자가 ‘임원 또는 경영진’라고 응답했다. 전체 평균(21.8%)의 1.5배다. 상사의 갑질을 문제제기 하기도 어려운데 이보다 더 우위에 있는 임원 또는 경영진의 갑질을 문제제기 하는 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설사 용기를 내더라도 회사가 임원 또는 경영진에게 실효성 있는 조치를 내릴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두 번째, 직장에서 벌어지는 괴롭힘을 규율할 수 있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7조의 [별표1]’에서는 “상시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하는 법 규정”을 정해놓고 있어 이들에게는 근로기준법 일부 규정만 해당된다. 적용규정과 적용제외 규정이 혼재되어 있다 보니 사장님들은 ‘법을 안 지켜도 된다.’는 의식이 팽배하고, 직장인들은 자신의 법적권리가 어디까지인지 혼란스럽다. 고민 끝에 직장갑질119의 문을 두드렸지만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에 좌절만 하고 돌아간다.

세 번째, 근로기준법의 일부만 적용되기에 직장에서 본인을 지킬 수 있는 보호막이 없다. 사장 마음대로 해고해도 되고, 연차유급휴가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고, 휴업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5인 미만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은 사장(이나 상사) 괴롭힘에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내기 어렵다. 문제제기 했다가는 해고되거나, 코로나19를 핑계로 무급휴업을 지시받기일수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7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을 때 대응 방법”을 물어본 결과 5인 미만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은 46.7%가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응답했다. 300인 이상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22.5%)의 2배가 넘는 수치다. 반면 회사 동료들과 집단대응을 했다는 응답은 5인 미만 회사가 12.5%로 300인 미만 회사 응답(21.7%)에 비해 훨씬 적었다.

‘노동법’은 직장인들을 지키는 최소한의 법적 보호막이다. 노동법이 최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할 것은 열악한 직장인, 특히 규모가 작은 회사의 직장인이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5인 미만 사업장이 영세하여 지불능력이 부족한 것과 사장이 직원에게 욕을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한다고 영세사업장 비용부담이 늘지 않는다. 이제 거꾸로 뒤집힌 노동법을 바로 세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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