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청소년 약 4명 중 1명은 일주일에 3번 이상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고 있다는 기사가 나온 지가 벌써 4년 전이다. 대학생이나 청년들이라고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 지갑 사정이 좀 나은 직장인들은 버젓이 식당 밥을 먹을 수 있지만, 조미료 듬뿍 들어간 ‘단짠’ 식단으로 한 끼를 때우기는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 앞에 TV 프로그램이나 1인 방송에서 과장된 감동을 연출하며 흔히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엄마 밥’이다. 유튜브에서 ‘엄마 밥’을 검색하면 스크롤을 아무리 내려도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방송 제목들이 이어진다. 요리 프로그램이든 식당 이름이든 ‘엄마의 손맛’을 내세우는 경우도 흔하다. 확실히 엄마 밥은 많은 이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일까? 그러한 ‘엄마 밥’이 정작 그 밥을 해왔던 엄마들에겐 어떤 의미일까?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경험’을 엄마라면 누구나 하기도 하지만, 365일 최소 하루 두 번 이상 해야 하는 그 노동으로 매번 배가 부른 엄마가 과연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엄마 밥’이라는 상징은 매우 문제가 있다.

첫째, 그 밥에 갈아 넣은 엄마의 노동을 이 사회는 어떻게 취급하고 있나? 엄마의 밥 짓는 노동엔 대가가 없을뿐더러 몇십 년의 노하우도 경력이 되지 않는다. ‘솥뚜껑 운전’으로 비하되는 밥 짓기는 오히려 경력 ‘단절’의 이유가 된다.

둘째, ‘엄마 밥’에 대한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엄마는 불을 다루기엔 아직 어린 자식들이 혹시 국이라도 데우다 사고라도 당할까 두려워 마른반찬만으로 밥상을 차려놓고, 정작 본인은 마른반찬을 집어 먹을 새도 없이 찬물에 만 밥을 후루룩 한술 뜨고 서둘러 일을 나간다. 그런 자식들에게 유년의 밥상은 ‘엄마 밥’이 아니라 시렸던 어린 시절의 윗목일 테다. 엄마의 음식 솜씨가 별로라서, 혹은 어릴 때 엄마가 없었기 때문에 ‘엄마 밥’이 호출되는 시점에 ‘할머니 밥’을 떠올리거나 그마저도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셋째, ‘아빠 밥’, ‘할아버지 밥’, ‘오빠 밥’을 그리워한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러니 결국, 성별 간 역차별에 대한 불평이 하늘을 찌르는 요즘도 여전히 시시때때로 ‘엄마 밥’을 호출하는 것은 과거의 엄마뿐 아니라 현재의 엄마들을 압박하는 메시지다. 그래서 밥은, 성차별적인 정치경제학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영혼의 허기마저 달래줄 수 있는 따뜻하고 풍성한 밥상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줄 수 있는 것은 때때로 울컥하는 ‘엄마 밥’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정치적인 상상력이 아닐까?

첫째, 우리에겐 적어도 소박한 밥상을 차릴 수 있을 만큼은 먹는 것에 아끼지 않을 수 있는 돈이 필요하다. 흔히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고 하던가? 그런데 우리의 일이 과연 그러한가?

둘째, 우리에겐 식재료를 사서 다듬고 끼니마다 조리해 먹을 수 있을 만큼 소분하여 보관하며 인터넷에 널려있는 레시피를 참조해서라도 스스로 조리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누구나, 엄마나 타인의 노동에 무임 승차하지 않고도 자기를 돌볼 수 있는 역량 말이다.

셋째, 우리에겐 재래시장에서 싸고 싱싱한 식재료를 사고 덤까지 한 줌 받아올 수 있는 단골집이 필요하고, 식구가 적은 집에서 해 먹기엔 너무 많은 식재료를 필요한 만큼씩 나눌 수 있는 이웃이 필요하다.

넷째, 우리에겐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시간이 필요하다. 식재료를 사는 일부터 이웃과 관계 맺고, 끼니마다 정성을 들여 준비하고, 자기 자신을 먹이면서 때로는 환대의 마음으로 남을 먹일 수 있는 시간.

이 모든 것은 적정한 임금과 노동시간 단축으로만 가능해진다. 그래서 노동시간 단축은 ‘저녁이 있는 삶’ 따위의 추상적인 차원이 아니라, 매일 우리가 먹는 ‘밥’의 문제다. 그래서 결국 밥은 노동문제다. 따뜻한 밥상이 그리워질 때, 우리는 ‘엄마 밥’을 떠올릴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을 어떻게 의제화할 것인가를 열렬히 고민하고 상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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