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50주기 기념 사진전 인터뷰]
학습지교사 노동자, 여민희
2020년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기를 맞았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고 산화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였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고발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악한,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지키고자 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불평등 속에서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는 오는 11월, 지금의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현재를 사진전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지금, 우리는’. 사진전에 앞서 민주노총이 만난 여성노동자들을 〈노동과세계〉에서 소개한다. [편집자주]
“노조는 자기 목소리를 지킬 힘”
학습지교사 노동자, 여민희
여민희입니다. 서비스연맹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지부에서 지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학습지교사는 1998년 2월부터 시작했어요. 올해로 23년차가 됐습니다.
처음에는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두고 시작했습니다. 마침 공부하던 것도 아동교육 관련 분야였고, 아이들을 가르치니 일찍 끝날 거란 생각이 들었죠. 그러면 저녁에 대학원에 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대학원을 갈 현실이 아니었어요. 보통 어떤 일을 시작하면 3개월, 6개월에 고비가 온다잖아요? 6개월쯤 됐을 때 그만둘 생각을 했어요. 처음 입사한 목적이 있는데 현실이 너무 다르니까. 그런데 학습지교사란 일이 저와 잘 맞는 거예요. 함께 일하던 동료 선생님들과도 잘 지냈고요. 수업 다 끝나고 밤 9~10시가 되면 사무실에 모여서 맥주 한 캔씩 마시고 퇴근하곤 그랬죠. 그래서 목표를 바꿨어요. ‘빨리 관리자가 돼서 대학원을 가야겠다.’ 정시에 퇴근할 수 있으니 대학원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랬는데, 입사 1년8개월여 만에 노동조합이 생겼어요. 1999년 11월이죠. 당시 4월에 재능교육 정사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어요. 그러고 파업에 나간다는 거예요. 우리 교사들에게 왜 파업을 하는지 설명하는 거예요. 그 말이 참 맞다고 생각했어요. 난 이 사람을 지지할 수 있으니까, 함께 집회에 나갔죠. 다른 교사들도 그랬어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집회를 했는데, 학습지교사들이 꽤 많이 모였더라구요. 그중에는 파업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교사도 있었죠. 그게 문제가 됐나봐요. 그 교사를 잘랐대요. 회사가. 그게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그때 교사 9명을 발기인으로 노조를 만들었어요. 우리가 노조에 가입한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고요. 한번은 재능교육 본사에 가보자고 했는데, 본사가 셔터를 내리고 우리에게 물을 뿌리는 거예요. 우리, 오후에 수업 가야 하는데. ‘이 건물 누구 돈으로 세운 건데 우리에게 물을 뿌려?’ 그날 수업 쨌어요. 다른 선생님 통해서 결근소식을 전하고 시위에 참가했어요. 그게 계기가 돼서 나중에는 간부 역할 맡으면서, 그렇게 지금까지 왔네요.
당시에는 정사원노조, 학습지교사노조가 따로 있었어요. 정사원노조 규약에 학습지교사 조합을 인정한다는 규약이 없어서 따로 만들었죠. 나중에 통합을 추진했는데, 그건 잘 안 됐어요. 지금 정사원노조는 거의 없어진 걸로 알아요.
노동조합이 아니었으면 벌써 학습지교사 일을 그만뒀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우리 노조는 시련이 많았거든요. 점점 오기가 생겼죠. 그러니 그만둘 수 없었어요. 그러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계속 남게 됐죠.
재능교육 싸움은 다들 많이 아실 거예요. 2007년 12월에 시작해서 2,076일만에 끝났어요. 끝난 날이 2013년 8월 26일이었어요. 처음 노조를 만들었을 때 3,800여 명이었던 조합원이 농성에 들어갈 때는 100명도 안 됐어요. 그만큼 사측 탄압이 심했죠. (회사를) 그만 둔 사람도 늘었고요. 그나마 100명도 농성 중에 12명으로 줄었어요.
그때 참 힘들었어요. ‘너희는 인원도 적고 법적으로 인정도 못 받으니 전망도 없다. 적당히 타협하고 현장 돌아가서 조직해라’라는 이야기도 참 많이 들었어요. 그걸 버텼어요. 싸움도 이겼죠. 우리가 요구했던 두 가지를 받아냈어요. 농성 중 세상을 떠난 이지현 조합원의 원직복직과 사과, 그리고 단체협약 원상회복이에요. 2018년 6월 25일에는 대법원에서 노동자성 인정한다는 판결도 받았고요. 저도 농성 중에 해고됐거든요. 사측과의 싸움에서 이기며 다시 복직했어요.
우리가 처음 노조를 만들 때만 해도 특수고용노동자 최초로 노동조합을 만든데다 단체협약을 쟁취해서 이슈가 많이 됐어요. 2,000일 넘게 농성을 해서 이기기도 했고요. 그러니 학습지교사는 특수고용노동자 중에서도 많이 알려진 편이죠. 목소리도 많이 내는 편이지만, 다른 특수고용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아요. 방과후교사는 아직 노조설립 신고필증도 주지 않잖아요. 그래서 노조법 2조 개정이 시급해요. 모든 노동자가 노조할 권리를 가져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고용보험법안은 2017년부터 계속 국회에 계류 중이에요. 실질적으로 적용아 안되고 있죠. 특히나 요새처럼 코로나19로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 겹쳤는데, 이럴 때 고용보험 적용이 되면 여러 지원금도 받을 수 있잖아요.
정부가 풀어야 하는 문제에요. 그리고 더 많은 정규직 노동조합이 지원하고 연대하면 좋겠어요. 민주노총은 취약노동자 계층에 대한 목소리를 더 많이 담아내야 하고요.
얼마 전 〈전태일 평전〉을 읽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전태일 열사도 노동조합으로 뭉쳐 싸워야한다고 생각했잖아요. 그래서 삼동회를 만들고 그걸 통해서 사람을 조직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똑같다는 생각을 해요. 열사의 행동을 되짚으면 노동조합으로 뭉쳐 함께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사내 게시판에 코로나19 관련 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는 글을 올린 적이 있거든요. 그리고 조합원은 물론 일반 선생님들에게도 홍보를 했죠. 그런데 사측에서 일일이 전화해 ‘댓글 내리라’라고 하더라구요. ‘내가 불편해진다’라고. 조합원들이야 당연히 100% 버텨내지만, 일반 교사들은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어떤 선생님이 댓글 지우지 않고 버텼어요. 그러다 회사가 코로나19 관련 지원금을 10만 원씩 지급했어요. 그때 댓글 지우지 않고 버틴 선생님 기분이 어땠을까 싶어요.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그친 게 아니라, 그 목소리를 지켜낸 것이 얼마나 큰 성취감으로 와닿았을까 싶은 거예요.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 목소리를 지키는 데는 더 큰 힘과 용기가 필요해요. 저는 그게 노동조합이고 또 사람(조합원)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사진 송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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