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50주기 기념 사진전 인터뷰]
결핵담당간호사, 서기정

2020년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기를 맞았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고 산화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였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고발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악한,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지키고자 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불평등 속에서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는 오는 11월, 지금의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현재를 사진전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지금, 우리는’. 사진전에 앞서 민주노총이 만난 여성노동자들을 〈노동과세계〉에서 소개한다. [편집자주]

 

“똑같은 재난에도 공무직은 위험수당이 없어요”

결핵담당간호사, 서기정

 

서기정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조 광주지부 지부장. ⓒ 변백선 기자
서기정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조 광주지부 지부장. ⓒ 변백선 기자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조 광주지부장을 맡은 서기정입니다. 지금은 광주 동구보건소 감염관리계에서 결핵환자를 보는 업무를 해요. 코로나19가 터진 뒤에는 검체 업무도 하고 있죠.

보건소 업무 15년 차예요. 간호대를 졸업하고 종합병원에서 10년을 일했어요. 응급실에 오래 있었어요. 병원이 문 닫으면서 잠시 쉬다가, 보건소 자리가 나 응시해서 들어왔어요.

보건소 입사할 때는 기간제로 들어왔어요. 그런데 우리 업무는 상시지속업무니까, 정규직 전환이 당연했죠. 대정부 투쟁을 벌였어요. 2012년도 일이예요. 당시 해고 싸움도 잦았죠. 우리는 그 투쟁을 잘 마무리했고, 지금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상황이에요. 전국 최초로 광주광역시 5개 구가 먼저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공무직 신분입니다. 보건소 공무직은 대부분 기간제에서 전환한 경우예요. 처음부터 공무직으로 들어온 경우는 드물어요. 아니면 전환 후에 새로 들어온 분들이죠.

보건소에 와서 방문간호사 업무를 했어요. 14년 정도 하다가 이번에 결핵관리 업무로 바뀌었어요.

방문간호는 연령에 관계없이 지역 취약계층이 대상이에요. 모든 취약계층을 방문해서 스스로 건강관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수치를 조절할 수 있도록 간호서비스도 하고요. 주로 노인들이 대상이예요. 방문 우선순위이기도 하고요.

방문간호 업무에서 가장 힘든 건 날씨였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대상자를 만나러 가야 해요. 그리고 취약계층은 집 사정이 열악한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처음에는 그런 부분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죠. 그래서 방문간호 담당자들은 알러지나 천식, 비염이 많아요. 저도 천식이 생겼거든요. 또 남의 집을 방문하는 일이다 보니 위험한 경우도 있었고요. 특히 혼자 지내는 남성분들의 경우거든요. 인간 본성 중에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게 성 욕구잖아요. 늙고 힘이 없어 누워만 있어도 성 본능은 잊지 않는다잖아요.

물론 미리 방지를 하려고도 하지만 쉽지는 않아요. 혹 문제가 생기면 관공서에서 조치하는 편이고요. 그 집을 방문하지 않도록 보호자에게 알린다거나 2인1조로 방문한다거나. 동사무소 공무원들이 개입하기도 하죠.

방문간호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이 부분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어요. 그래도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2인1조로 다니면 그만큼 많은 환자를 돌볼 수 없거든요. 그러니 담당자들은 지금도 혼자 방문간호 업무를 다녀요. 해결해야 하는 문제임에도 아직 해결을 못 하고 있어요.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나 요양보호사 선생님들도 이런 어려움은 같을 거예요.

제가 알기로 방문간호는 김대중 정권 때 준비해서 노무현 정권 때 생긴 것으로 기억해요. 처음에는 방문간호 인력을 5천 명까지 늘릴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MB와 근혜 정권은 취약계층에게 공을 들이지 않았어요. 태가 안 나거든요. 취약계층이 인터넷에 후기를 쓰거나 칭찬을 올리는 경우가 아주 드물거든요. 2007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사업이 커질 거로 생각했는데, 정권이 바뀌니 지자체도 신경을 쓰지 않았죠. 지금은 아마 2,300명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또 다른 문제는 지자체 비용 부담 때문이에요. 이제는 방문간호사가 공무직이 됐잖아요. 보건복지부에서 인원을 더 늘리라며 일부 사업비를 부담해도 지자체가 하지 않으려고 해요. 국비, 시비가 매칭되는 사업의 맹점이 여기에 있어요. 국가가 전액을 부담하지 않으면 지자체는 효용성 없는 사업을 받지 않으려고 해요. 방문간호사업이 그중 하나죠.

내부적으로 순환 근무를 하기로 했어요. 한 분야에만 오래 있으면 지치기도 하고 힘드니까요. 그래서 감염관리계로 왔는데, 마침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네요. 여기 온 지 1년 6개월인데, 절반은 코로나19 사태로 보냈어요. 게다가 보건소는 예방 접종 등 일반 진료 다 멈추고 코로나19 응대만 하고 있거든요. 제가 일복이 많은가봐요.

코로나19 검체 업무를 할 수 있는 직종이 의사와 간호사뿐이에요. 그래서 전국 의사, 간호사가 업무 부하에 걸린 거예요. 게다가 간호사는 전국적으로 유휴인력도 많고요. 저희는 끊임없이 불특정 다수를 만나요. 누가 양성 반응 나올지도 모르고, 음성이 나와도 다시 양성 반응을 낼 수 있어요. 그래서 정상적으로 살지 못해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검체 업무를 하거나 보건소 간호업무 담당자들은 가족 외 다른 사람들을 일절 만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는 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번 5월까지만 이렇게 지내고 6월부터는 정상일 거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태원이 터졌네요.

저는 2월부터 지부장을 직무대행으로 바꾸고 노동조합 일을 멈춘 상태예요. 저로 인해서 혹시나 다른 조합원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안 되니까요. 민주노총 간부들이 온다고 해도 말려요. 오지 말라고. 공무원 담당자들이 4개월 동안 하루도 못 쉬고 있다잖아요? 우리 의료 1선에 있는 사람들도 이렇게 지내요. 일반인들이 조금만 더 신경 써서 마스크도 쓰고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노조 활동은 1993년부터 시작했어요. 처음 병원에 입사할 때 노동조합이 생겼거든요. 그때는 병원에서 일했으니 보건의료노조 소속이었죠. 선배 손에 이끌려서 가입한 것 같아요. 노조 필요성을 알고는 있으니 그게 두렵지는 않았어요. 단지 파업이 많아서 힘든 건 있었죠. 병원이 워낙 노조 탄압을 많이 하는 조직이니까요. 그래서 보건의료노조도 파업이 많잖아요.

지금은 보건소 공무직이라서 민주일반연맹 소속이예요. 보건소에 처음 왔을 때는 ‘눈 감고 살아야지…’ 그렇게 생각했어요. 보건의료노조 시절에 좀 힘들었던 것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당시 공공 비정규직노동조합을 맡았던 이성일 위원장님이 찾아왔어요. “방문간호사 업무, 이렇게 두면 안 된다”라면서요.

2012년에 기간제 계약 문제제기를 시작했어요. ‘상시 지속업무인데 왜 정규직이 될 수 없느냐’라고요. 방문간호 업무를 맡은 모든 전국 방문간호사를 모았어요. 정규직 전환의 필요성을 얘기했고, 광주가 그걸 잘 따라줬죠. 정규직 전환을 마무리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광주를 책임지게 돼 지금 광주지부장을 맡았어요.

우리는 상설위원회로 공무직위원회를 꾸렸어요. 공무직의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국가비상사태를 맞으면 공무원은 위험수당이란 걸 받잖아요. 이게 간호직공무원과 공무직간호사가 똑같이 검체를 나가도, 우리는 위험수당을 못 받아요. 왜냐면 공무원과 달리 공무직은 공무직보수규정이란 게 없거든요. 지자체마다 규정이 다 달라요.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제도적으로 차별을 받게 되죠.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다음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달라져야 한다는 거죠. 특수고용노동자며 공공의료 확충 등의 이야기들이 그렇죠. 전태일 열사를 생각해봐도 그래요. 노동운동을 한참 한 것도 아니고, 이제 막 불합리를 느꼈을 때 몸을 던진 거잖아요. 우리가 지금 코로나19를 일종의 변곡점으로 바라보듯이 노동운동사에서는 전태일 열사가 변곡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진심으로 이 땅의 비정규직이 없어지면 좋겠어요. 다음 세대가 어디를 가도 적절한 급여를 받고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해요. 그게 전태일 열사가 갖는 의미가 아닐까요?

인터뷰 송승현 / 사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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